활동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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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이야기] 한국과 인도네시아, 닮은 꼴 찾기
2006.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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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인도네시아, 닮은 꼴 찾기


국제연대 김도혜


<사과문> 죄송합니다. 또 나갔다 왔습니다.

고작 3년 5개월 경실련 상근 활동기간 동안 레바논, 일본, 태국, 캄보디아 등지를 회의 핑계(?) 삼아 나가는 바람에 사무실 내에 나름대로 안티 세력이 있으리라 감히 미루어 짐작해봅니다.

한 상자에 1000원 정도하는 현지 과자류를 선물이랍시고 한 두어 개 들고 와서는 ‘힘들었어요, 나가면 고생이에요’를 연발하는 뻔뻔한 작태를 두고 보기 힘드셨겠지요.

그런 제가 이번에는 무려 한 달 동안이나 사무실을 비우고야 말았습니다. 아시아재단(The Asia Foundation: http://www.asiafoundation.org- 박스 참조) 인도네시아 사무실에서 한 달간 일하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일을 했는지, 열심히 놀았는지, 발리에서 생긴 일을 찍고 왔는지 확인할 바가 없기에 더욱 더 의심이 가는 한 달이었겠지만, 이제 고백합니다. 저 나름대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아래 글은 여러 안티 세력들의 의심어린 눈초리를 무마시켜보고자 적어 본 인도네시아 활동기입니다. 믿거나 말거나! 

인도네시아, 너는 누구니

세계에서 4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
끊임없이 자연재해가 일어나는 나라.
인구의 50%가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사는 나라.
가끔 이슬람 근본주의 단체에 의해 테러가 일어나는 나라.

인도네시아의 한 단면이다. 실제로 자카르타(인도네시아 수도)에 가보면 수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난개발로 인한 공해가 거리를 시커멓게 만들고 있으며, 치안 상태도 좋지 않아서 해가 지고 나면 길거리를 걸어 다니는 것조차 위험한 것이 사실이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3분이면 나올 음식이 10분이 되도록 나오지 않는다든가, 도로 사정이 척박하고 공공 교통수단이 열악해 출근길이 2시간 이상 소요될 때, 나 역시 이 나라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른 단면을 보자. 인구의 80% 이상이 이슬람 교도이지만, 타 문화나 종교에 대해서 대단히 관대하다. 물론 17세기부터 1949년 8월 17일까지 네델란드의 식민지였으며 포르투갈과 일본에 의해 그 가운데 짧게 식민 지배를 당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 나라 사람들이 다른 나라의 문화를 쉽게 받아들인다는 이론을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관대하다.

그리고 1998년, 30년 이상 장기 집권해 온 수하르토 정권이 시민혁명으로 붕괴한 뒤 인도네시아는 격변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에 놓여 있다. 40년 만에 처음으로 직접 민주 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선출되고, 지방선거가 실시되었으며 지방분권적인 정치제도를 정착시키고자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인도네시아의 굿 거버넌스, 부패 추방 운동을 추진하는 지역 NGO들을 지원하는 아시아재단에서 일하면서 현지의 NGO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한국과 인도네시아, 어떻게 닮았나

1998년 수하르토 정권을 무너뜨린 시민혁명은 그해 5월, 평화집회 도중 군부의 총에 맞아 사망한 4명의 대학생 시체가 발견되면서 촉발되었다 한다.

수하르토 정권이 물러난 뒤 무려 48개의 정치 정당이 등록하여 활동하였으며 직접 민주 선거가 99년부터 도입되어 정치 민주화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여기까지 들었을 때 어, 이거 한국의 과거와 좀 비슷한데. 싶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인도네시아에서 활동하는 NGO들이 어떤 활동을 하는지 들어보자. 그들은 98년 수하르토 정권 붕괴 이후부터 적극적으로 선거 감시활동을 하고, 부정부패 추방운동을 펼치며, 공정거래 시스템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물론 이 외에도 양성평등 캠페인, 대법원 개혁 운동, 예산 감시 활동 등을 하고 있다. 이거 비슷해도 너무 비슷한 거 아닌가.

자,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정확하게 두 가지를 지적하고 싶다.

첫 번째, 나와 그들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

내가 만난 인도네시아 NGO들은 한국 NGO들의 활약상에 대해 상세히 알고 있었으며 우리의 활동을 변형하여 적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국회의원들의 신상 정보를 취합하고 그들의 활동 정보를 모아서 언론에 공개하여 부패한 정치인들에게 안녕을 고하도록 하는 활동이 그러한 예였다.

그런데 정작 나는 인도네시아와 한국이 닮아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그들은 내게서 과거의 우리 활동을 듣고 싶어 했으며, 어떻게 활동 하는지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싶어 했다. 과연 어떻게 사업을 만들어 내면 양자에게 이득이 될 수 있는지, 어디서 예산을 충당할 수 있을지 등 내게 남겨진 숙제는 무궁무진했다. 기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두 번째, 인도네시아 NGO들은 국제기구나 다른 나라 정부, 국제 NGO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아직 시민들의 회비로 운영되는 NGO는 없는 것으로 알려진 인도네시아에서는 주로 UNDP를 비롯한 국제기구를 통하거나 영국, 네델란드, 호주 정부 등에서 지원되는 공적개발원조금으로 활동비를 마련하고 있었다. 여기에 옥스팜이나 세이브더칠드런과 같은 큰 국제 NGO들 역시 지역 NGO들을 지원하거나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물론 인도네시아에서 WTO 반대운동을 하는 시민단체는 단체의 정체성 상 선진국 정부로부터 나오는 지원금은 받지 않지만 대신 옥스팜이나 UN 기구의 지원으로 모든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내가 인터뷰를 했던 인도네시아 주재 국제 NGO와 국제기구, 그리고 지역 NGO는 모두 서로의 필요성에 대해 절실히 깨닫고 있었으며, 특히 국제 NGO와 국제기구, 더 나아가 심지어 선진국 정부에서는 지역 NGO와 연계되지 않은 독자적인 사업은 점차 줄여 나가고 있는 실정이었다.

우리나라 정부의 개발도상국 지원사업은 아직도 독자적으로 다리를 건설하거나 학교를 건설하는 등 ‘하드웨어(hardware)’ 지원사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 사실인 반면, 실제 인도네시아에서 원하는 것은 한국 NGO와의 교류, 지역 NGO 역량 강화 등 ’소프트웨어(software)’ 지원사업이 아닌가 싶었다.

이것 역시 내게 숙제로 남아 있다. 어떻게 우리나라의 대 개도국 지원사업에 점차 소프트웨어 사업을 적용하도록 촉구할 것인가 하는 문제 말이다.




<인도네시아의 예산감시 시민단체 'FITRA'의 사무실 간판과 직원들의 회의 모습>


“넌 뭘 믿고 사니?”

여담(餘談)이지만, 나는 대개 ‘머리’들과 친하지 않은 편이다. 멀리한다고 해야 옳은 표현일지도 모른다. 머리들, 다른 말로 수뇌부, 한 조직의 우두머리 집단. 오히려 나를 위해 차를 운전해 주는 운전수 아저씨, 발리행 티켓을 싸게 구해준 비서 언니, 인간성 더러운 과거 남자친구 이야기를 서슴지 않고 해 준 프로그램 어시스턴트 언니랑 훨씬 친하게 지냈다.

기억에 남는 한 마디. 얼마 전에 불의의 사고로 아들을 잃은 ‘나낭’이라는 운전수 아저씨가 내게 물어 보았다. 종교가 무엇이냐고. 물론 없다고 말했다. 어차피 인생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거 아니냐고 덧붙이기까지.

나낭 아저씨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참 대단하면서도 불쌍하다고 했다. 다 키워놓은 18살 아들을 교통사고로 가슴에 묻고도 내게 웃음을 지으며 아들 이야기를 하는 나낭 아저씨를 보면서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이 꼭 종교일 필요는 없지만, 힘이 되어 주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 그 무엇인가 덕분에 이 사람들이 이렇게 너그럽고 여유로울 수 있구나 싶었다. 이건 나의 늙은 생각일 뿐일까?



<아시아재단 사무실 직원과 함께 한 기념촬영>


아시아재단(The Asia Foundation)은?

50년 전 설립된 아시아재단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현재 한국을 포함한 18개 아시아국가에서 지부를 운영하며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현지 시민단체나 지역 커뮤니티 지원을 통해 굿 거버넌스, 법률 제도 개혁, 경제 개혁, 양성평등 등의 주요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지부는 1955년 설립되었으며, 이슬람사회와 경제개발, 지방선거 클린 운동, 지방정부 역량 강화 프로그램 등을 지역 NGO 지원을 통해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