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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시민강좌/현장스케치] [현장스케치] 27기 민족화해아카데미 1강_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다
2015.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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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 27기 민족화해아카데미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다 

추재훈(27기 민족화해아카데미 수강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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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친구 이번에도 입사지원서 전부 떨어졌더라. 열심히 하던데…….”
“안됐네. 걔, 학교는 어디더라?” / “몰라. 지방대 나왔을 걸?” / “아…….”
대한민국 20대라면, 이런 대화가 너무나 익숙할 것이다. 누군가는 지방대 운운하며 그를 대놓고 비하했다고 생각해 불쾌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나저러나 ‘지방대=무능력’라는 공식을 내심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학벌, 각종 성적, 대외활동 경험도 모자라 외모와 부모님의 재력까지, 모든 게 ‘능력’이라는 단 하나의 담론으로 환원되는 방정식은 우리들에게 낯설지 않다.

거의 모든 삶의 요소가 이 방정식의 독립변수로 흡수되는 20대의 현실은, 그 현실이 그만큼 평화롭지 않다는 것을 증명한다. 능력고양과 자기계발을 향한 제도화된 틀에서 이탈하는 것을 끔찍이 두려워하는 우리는, 잘 하고 있다고 안심하기 위해 다름을 틀림으로 인식·비판하고, 뭐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디기가 힘들다. 20대는 떳떳한 사회 구성원도 아니라서, 청춘문제의 책임을 사회구조나 직·간접적 가해자보다도, 이겨내지 못한 스스로에게 전가하고 있다.

왕따는 보편에 고개 숙이고 왕따 당할 짓을 해선 안됐다. 지방대 출신은 재수·편입을 해서라도 상위권 대학에 진학했어야 했다. 비정규직은 애초에 취직하지 말고 정규직으로 취직했어야 했다. 외국인노동자는 한국에 오지 않거나 한국사회에 굴종하고 감사해야 했다. 누구든 제 분수도 모르고 주제넘은 짓을 해선 안됐다. 모든 건 네 책임이다. 다시 말해, 모든 건 내 책임이다. 그래서 다른 누군가를 이겨내야만 한다. 인권은 보편적인 게 아니라 쟁취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우리는 평화를 말하지 않는다.

사실 내 또래 중 어느 누구도 이런 문제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래서 어쩌라고?” 사회가 원래 그렇다는 기성의 가르침에 평화나 정의가 이론놀음이 되었고, 싸구려 힐링 담론만이 우리를 위로하며, 문제라고 말해봐야 아무도 밥줄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똑똑한 척, 잘난 척 하지마라고 눈총받기 싫어서, 문제를 말하는 것도 힘들다.

하지만 다시, 우리 모두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안다. 명확한 대안은 없다, 하지만, 대안이 없다고 문제를 당연한 것으로 만들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분명히 문제가 있다는 것만이라도 공감하고, 문제의식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퍽퍽한 하루하루를 송두리째 부정한 채로 함께 대안을 찾아 나서자, 연대해서 이겨내자는 식의 공허한 외침은 필요도 없다. 지금의 우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이라도 평화를 생각해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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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에 머무르는 평화는 공허하다. 평화는 삶 속에 녹아들어야만 다이아몬드처럼 빛난다.”
라고, 강의에서 박경서 전 대사는 말했다. 그래서 다시 평화를 생각한다. 한 번이라도,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비화한 경쟁 속의 우리들이 평화를 생각하고, 서로를 생각할 수 있기를, 그래서 살벌한 삶 속으로 다시 평화가 깃들어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