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EJ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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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 [경제정의] 수도꼭지의 경제학
1999.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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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꼭지의 경제학


 


신영복 성공회대 경제학과 교수


 


C교도서 4동 상층의 세면장에는 수도꼭지가 8개 있었다. 그러나 사용할 수 있는 꼭지는 2개뿐이었다. 나머지 6개는 T자형의 손잡이를 뽑아버리고 스패너로 단단히 조아 놓았기 때문에 먹통이었다. 맨손으로는 그것을 풀 수가 없도록 해 놓았다. 물을 절약하기 위해서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재소자는 너나없이 “물 본 기러기”이기 때문이다.


 


교도소에서 귀하기로 말할 것 같으면 밥과 맞먹는 것이 물이다. 단 한번도 물을 물쓰듯 써보지 못한 우리들로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욕심이다. 하루 세 끼 설거지에서부터 세수 청소 빨래는 물론이고 목욕은 감히 생심을 못한다 하더라도 냉수마찰은 어떻게든 하고 싶기도 하다. 기회만 있으면 방에 있는 주전자나 물통은 물론이고 그릇이란 그릇마다 물을 채워놓는 것이 일이었다. 물을 많이 챙겨 놓은 날은 마음 흐뭇하기가 흡사 그득한 쌀뒤주를 바라보는 심정이었다. 그만큼 물이 귀했다. 여름철은 말할 필요도 없고 겨울이라고 해서 찬물 목욕이나 담요빨래를 시켜만준다면 마다할 사람이 없는 처지이고 보면 물을 가운데에 둔 관과 재소자의 줄다리기가 사철 팽팽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8개의 수도꼭지 중에서 2개만 남기고 나머지 6개를 먹통으로 잠가버리는 것은 어느 교도소건 관례가 되다시피한 통상적인 통제의 방법이었다. 이것은 이를테면 원천을 봉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법이 언뜻 가장 완벽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하였다. 어느새 엄청난 누수가 일어나고 마는 것이다.


 


맨 먼저 일어난 사건은 성하게 남겨둔 수도꼭지의 손잡이가 분실되기 시작하는 사건이었다. 처음 몇 번 동안은 관에서 없어진 손잡이를 다시 갖다가 꽂아놓았다. 그러나 다시 꽂아 놓기가 무섭게 이내 없어지고 말았다. 수도꼭지는 어느 것이나 마찬가지로 윗부분의 나사 한 개만 풀면 손잡이가 쉽게 분해될 수 있는 얼개였으며, 손잡이만 가지면 먹통꼭지를 틀어서 얼마든지 물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손잡이의 분실사건이 계속되자 이제는 아예 나머지 성한 곡지의 손잡이마저 분리하여 담당교도관이 책상서랍에 보관하였다. 이제는 물을 합법적으로 쓰는 절차를 밟아야 했다.


 


숨겨둔 손잡이의 가치는 더욱 커졌다. 다른 출역사동의 세면장에 있는 수도꼭지의 손잡이가 분리되기 시작하였고 공장이건 목욕탕이건 심지어 직원 화장실에 이르기까지 수도꼭지가 분실되지 않는 곳이 없었다.


 


우리 방에도 물론 비밀리에 압수하여 감추어 두고 사용하는 수도꼭지가 한 개 있었다. 그리고 제법 끝발이 센 K군이 자기 혼자만 사용하는 손잡이가 한 개 더 있었다. 4동 상층의 11개 사방 가운데 수도꼭지를 한두 개 감춰 두고 있지 않은 방은 하나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잘 나가는 방’에는 두어개씩 보유하고 있기도 하였다. 심지어는 2개 또는 3개씩의 개인용 꼭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혹시 분실할 수도 있고 검방이나 검신때 발각되어 압수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여벌로 한두개쯤 더 가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수도꼭지는 어느덧 친한친구나 평소 신세를 진 사람에게 귀한 선물이 되기도 하였고 더러는 상품이 되어 다른 물건과 교환되기도 하였다. 수도꼭지는 이제 수도꼭지 이상의 가치를 갖게 되었다. 수도꼭지는 물을 떠나서도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4동 상층에 몰래 감추어 두고 사용하는 수도꼭지가 모두 몇 개인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대충 계산해보더라도 11개 방마다 한두개씩 그리고 끝발있는 재소자가 너댓명이라치면 거진 20여개의 수도꼭지가 있는 셈이 된다. 세면장에 설치되어 있는 8개의 tnehRHr지에 비하면 무려 두어갑절이나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꼭지는 여전히 부족하였다. 우선 그 방에 몰래 감추어 두고 쓰는 것이기 때문에 그 꼭지의 관리자한테 일일이 허락을 받아야 하였고 개인용을 빌리기도 한두번이지 미안하고 속상하는 일이었다.


 


4동 상층의 1백여명의 재소자가 불편이나 불평없이 물을 쓸 수 있기 위해서는 대체 몇 개의 수도꼭지가 있어야 하는지 계산해보았다. 1인당 1개에다 분실이나 압수에 대비한 여벌 1개씩 도합 2백 여개의 수도꼭지가 필요하다는 계산이다. 8개의 수도꼭지에 비하여 무려 2백30배의 수도꼭지가 필요한 셈이다. 이처럼 많은 양이 있더라도 물의 사용은 일단은 불법임에는 변함이 없다. 실제로 담당 교도관에게 적발되어 수도꼭지를 압수당하고 경을 친 사람도 더러 있었다. 대개는 담당교도관에게 밉게 보인 사람이거나 만만하게 보인 약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일컬어 ‘재수 없어’ 걸렸다고 했다.


 


어쨌건 원천을 봉쇄하여 물을 통제하려던 애초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8개의 수도꼭지를 모두 열어 놓는 것보다 더 많은 물이 누수되고 있었다. 스패너로 단단히 묶어 둔 6개의 먹통수도꼭지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맨 손인 사람에게만 철벽일 뿐 수도꼭지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한테는 수청기생처럼 쉽게 몸을 풀었음은 말할 필요가 없다.


 


이처럼 수많은 수도꼭지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물은 여전히 부족하였고 불편하였다. 물의 필요는 수도꼭지에 대한 욕심으로 바뀌어 남들의 비난을 받았고 스스로도 부끄러웠다.이 이야기는 물론 징역살이의 이야기이고 교도소안에나 있는 ‘물 본 기러기’들의 물 욕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서울의 도처에 서 문득문득 그 씁쓸한 수도꼭지의 기억을 상기하게 된다. 수많은 자동차들로 체증을 이룬 도로의 한복판에서 걷는 것보다 더 느리게 꿈틀대는 버스 속에 앉아 있을 때 나는 예의 그 수도꼭지를 생각한다. 분양아파트의 모델하우스에 붐비는 인파 속에서 나는 먹통 수도꼭지 앞에서 마른 침을 삼키던 예의 그 갈증을 생각한다.


 


8개의 수도꼭지로 될 일이 20개 30개의 수도꼭지로도 안되는 일은 교도소가 아닌 바깥세상에도 얼마든지 있다. 자동차도 그렇고 아파트도 그렇고 땅도 그렇고 대학입시도 그렇고 화려한 백화점의 수많은 상품들도 그렇다. 나는 낯선 서울거리를 걸으며 버릇처럼 수도꼭지를 상기한다. 맨 손으로 수도꼭지를 비틀다가 하얗게 핏기가 가신 엄지와 검지의 통증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잘못된 소유, 잘못된 사유가 한편으로 얼마나 엄청난 낭비를 가져오며, 다른 한편으로 얼마나 심한 궁핍을 가져오는가를 생각한다.


망망대해 위를 나는 목마른 기러기를 생각한다.


 


 


(이 글은 경제정의 1991년 7,8월 호에 실린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