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보다 정의롭고 모두가 행복한 미래사회를 위해 달리는 경실련의 최근 이야기를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뉴스레터] 강원도의 힘! 수해를 딛고 일어서다
1999.10.10
4,959

“할머니, 당신의 사랑이 수해 복구의 힘이었습니다”


양세훈 월간 경실련 기자




“전화는 들어왔소?”
“어제오늘 들어온다 해서 기다리고 있는데 아무래도 더 늦을 것 같소. 전화보다 수돗물이 급하오. 빨리 다시 연락해 주오.”
“이곳 사정은 다 잘 알고 있소. 그래도 급한 대로 전긴 그제부터 들어 왔잖소. 아랫마을부터 차례로 복구하고 있으니 며칠만 더 기다려보오”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북동리 5반(고향밭) 사람들의 지금 최대의 관심사는 언제 복구반이 들어 오느냐다. 첩첩산중인 이곳은 여태 수마가 할퀴고 간 상처가 그대로였다. 무너져 내린 산. 마을 앞을 흐르던 개천은 물길이 바뀌었다. 벽이 뚫려 간신히 형체만 남은 집채들. 검은 뻘에 잠긴 벼이삭과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자갈더미에 묻힌 트럭.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현장이 눈앞에 그대로 펼쳐졌다. 맑은 계곡 물이 흐르고 산새 지저귀던 우리들 기억 속의 산골풍경과 오버랩 되자 그 비참함은 가히 재앙으로 다가왔다. 재앙이 있던 날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버티고 살았는지 지금 이곳이 과연 ‘사람 사는 곳이 맞는가’라는 의문을 갖게 했다.  





 “방에서 잠자고 있더랬어. 그런데 아무래도 이 놈의 비가 심상찮아 밖을 내다보니 벌써 물이 차고 올라오는 거야. 그땐 정말 아이고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소. 그래도 죽더라도 방안에서 죽어야지 생각했소”
 박초월 할머니(72)가 쉬엄쉬엄 그 날을 회상했다.
 “사람 안 죽은 것도 다행이오. 그런데 이렇게 수고스럽게 내 집 고쳐주시니 고맙소…. 고맙소….” 
 박 할머니는 자원봉사대에 이렇게 ‘고맙다’는 말을 아끼지 않는다. 박 할머니 집은 이번 호우로 방벽이 허물어졌다. 자원봉사 대원들은 우선 급한 대로 방벽을 쌓고 물길을 돌리는 축대를 쌓기로 했다. 




 
 “지켜보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도 미력하나마 동참해야 한다”는 자연스런 공감대가 조성됐다. 그리고 때마침 강릉경실련에서 긴급히 도움을 구하는 메일이 왔다. 중앙경실련에서 9명. 부천경실련에서 집행위원장을 비롯한 5명이 자원봉사활동에 동참하였다. 물론 함께 동참하지 못한 상근자들은 수해의연금으로 그 뜻을 전했다. 지난 9월 13일 금요일 4시 삽과 곡괭이, 물과 라면 등 지원 장비를 가득 차에 싣고 강릉으로 출발했다. 무엇보다도 봉사정신과 튼튼한 체력을 믿어야 했다. 어둠이 완전히 깔린 저녁 9시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폐교되어 자연학습장이 된 곳이 야전사령실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일손이 급했던지 현지 강릉경실련 상근자와 동네 이장님이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들의 얼굴에 하루의 수고가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수해복구가 일상이 되어버린 사람들 앞에 까닭 모를 숙연함이 감돌았다.
“강릉시내를 제외하곤 시 외각지원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자원봉사자 역시 강릉 시내에는 몇 천명씩 줄을 잇고 있다지만 이곳처럼 외진 곳은 아직도 일손이 달려 계속 늦어지는 형국이지요. 군부대도 이미 철수해 버렸고요.” 강릉 경실련 김재관 정책실장이 이곳 상황을 토로하듯 설명했다.
 상황은 언론매체를 통해 듣던 것보다 더 심각했다.
 “다행히 이곳 옥계면에선 인명피해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집이 완파되거나 반파된 곳이 수없이 많습니다. 위쪽 양어장 두 곳은 터져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지요. 그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농업기반이 무너졌다는 것이죠. 농토가 이미 뻘과 자갈밭으로 변한 터라 다시 농사를 지으려면 몇 년의 시간이 더 필요한지 가늠하기도 힘든 상황입니다.”
 오전 6시 30분.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기상했다. 준비해간 재료로 아침을 먹고 바로 현장에서 삽질을 시작했다. 우선 자연 학습장에 밀려온 토사를 제거하는 일이었다. 장화와 작업복으로 무장했지만 금새 질퍽한 진흙이 퉁겨 올랐다.
 아침에 확인한 결과 하룻밤 묵은 이곳 자연학습관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다. 유일한 통로인 교각은 절반 가량이 유실된 상태였다. 임시로 널판자와 봉으로 가교를 만든 것이 보기만 해도 아슬아슬했다. 기르던 22마리의 강아지 중에 단 두 마리의 풍산개만 살아 남았다고 한다. 그것도 익사 위기에서 구해낸 것이라 애정이 더 간다는 것이 이곳 관리자의 말이다. 
 토사를 리어카에 푸고 싣고 나르는 와중에 긴급히 사람이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여자 간사 4명을 남기고 나머지 남자간사 모두 투입됐다. 블록 200장과 함께 우리를 실은 트럭은 산골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가는 동안의 풍경은 가히 전쟁터와 다를 바 없었다. 아니 물길이 바뀌고 지형이 바뀌었으니 그보다 더했다. 도로 중간 중간은 유실된 도로를 복구하는 작업차량들로 분주했다. 집 잃은 수재민을 위해 컨테이너가 임시 주택으로 보급되고 있었다. 벌써 아침저녁 공기가 싸늘한데 첩첩산중 강원도에서 철제 컨테이너로 올 겨울을 나야 할 이곳 사람들을 생각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비도 멎었으니 우리도 살아야지”
 직접 보고 느낀 심정도 참담한데 이외로 북동리 사람들은 담담했다. 아니 낙담만 하고 있을 수 없던 모양이다. 자원봉사자들을 위해 컵라면을 끓어 주시면서 “힘들 내고 많이 도와주고 가소. 내 드릴 게 컵라면밖에 없지만 먹고 힘들 내주소…”라며 오히려 우리를 격려해 주시는 마을 주민의 모습에서 그들의 까맣게 타들어 간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저 트럭 주인이 누군지 몰라도 볼 때마다 가슴아프겠네. 여태 얼른 치우지 왜 저렇게 놔뒀을까.” 누군가 마을 하천 자갈 더미 위에 뒹군 차량을 보며 말을 꺼냈다.
 “저 놈이 내 것이오. 내 발과 다름 없었다오. 빨리 치워버리고 싶어도 순서가 밀려 뒷전이라오.”
 우리를 할머니 댁으로 인도한 50대 아저씨가 등뒤에서 언제 듣고 있었는지 말을 이었다.
 “할머니 댁은 저기요. 저기 저 집에 구멍이 뻥 뚫렸어…. 잘 부탁하오.”  
 아마도 자원봉사자들이 더욱 힘을 낼 수 있었던 것은 마을 주민들이 보여준 자활 의지 때문일 것이다. 자신보다 이웃을 먼저 배려하는 마을 아저씨의 모습에서 자연 앞에 한없이 작아진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그보다 위대한 인간의 무언가를 느끼게 했다.





 “자자 힘들 냅시다. 우린 블록 옮길 테니 시멘트 잘 좀 괴어보세요.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할머니댁 벽 상태 어떤가 살펴보세요.” 김용철 부장의 말에 따라 일사천리로 척척 작업을 진행됐다. 한참을 아무런 생각 없이 지고 이며 블록을 날랐다.
“이보 젊은 양반들, 시장할 테니 밥먹고 하오.”
 점심시간이 지나 출출함을 느끼고 있던 차에 박 할머니께서 이미 밥을 사람 수대로 차려 놓으셨다. 어디서 구하셨는지 삼겹살까지 굽고 계셨다. 자원봉사 와서 오히려 민폐 끼칠까봐 조심스레 다가섰고 먹을 음식까지 준비해간 터지만 정성들인 할머니의 밥상을 완곡히 물리칠 수는 없었다.
 “내가 너무 고마워서 지켜보고만 있을 수 있어야지. 고기 많이 구웠으니 많이 드시오. 밥은 두 공기씩 먹어야 하오. 그래야 더 힘낼 수 있잖소.”
 삶의 터전은 무너졌어도 시골 인심은 그대로였다. “전기가 엊그제 복구돼서 그래도 이제는 밤에도 환하다오”라는 할머니의 말에 더욱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IMF때의 금모으기가 이랬을까, 지난 월드컵에서 거리응원이 이랬을까, 한 핏줄을 타고난 한민족이라 이런 걸까. 무엇이 우릴 하나로 묶는지 모른다. 수재의연금이 사상초유의 기록을 세우며 모금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흙을 퍼담을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들은 수해지역으로 떠나고 있다. 다 잃었지만 다 자연에 돌려줘서 가진 것이 없지만 삶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박 할머니 댁에서 작업을 마무리하고 우리 일행은 20분 남짓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할머니가 뒤에서 우리 일행을 부르며 뒤쫓아 뛰어 내려오셨다.
“이보소들. 그렇게 가버리면 어떡하오. 내 하도 고마워서 밤 좀 챙기고 있었소만. 줄 건 이것밖에 없소. 서울 올라가거들랑 삶아 드시오.”




 




 








“직접 와보니 잘 왔다고 생각합니다. 필요한 곳에 도움을 줄 수 있어 뿌듯합니다.”
 수해복구 현장에서 한 사람의 아름다운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조상준씨(44)가 주인공이다. 집에서 TV를 시청하다가 강릉 수해 현장을 접했고 가만히 보고만 있기에는 양심에 찔러 차를 몰고 왔다고 한다. 마침 하던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쉬고 있었다. 10월부터 마포재활용센터에 첫 출근한다고 한다.
 조씨는 가전제품 박사다. 척척 못 고치는 것이 없다. 그래서 이번 자원활동도 수해로 고장난 전자제품을 손수 고치는 일이다. 그리고 함께 온 1톤 트럭으로 삽과 곡괭이, 물, 비상식량 등을 수해 지원지역까지 원활히 공급하는 역할까지 도맡아 한다.
“쭉 20일 가량 쉬면서 방에만 있자니 답답했어요. 다른 사람도 많이 왔으면 했는데 친구들이 다들 현업에서 밥 벌어 먹고 사느라 혼자 오게 됐네요. 방송에서 구호품을 시청이나 군 소재지에 떨어뜨리고 가버리는 바람에 운송수단이 모자라 애먹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래서 애마인 이 트럭도 저와 함께 봉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