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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평화] 20030814_[취재]원폭피해자 등 일제 강제연행피해자, 집단적 국적포기







“우리가 국적을 포기하는 것은 우리가 그렇게 하고자 했기 때문이 아니다. 수천만 한국인 중 그 누가 고국의 사람됨을 포기하고 싶겠는가! ‘목숨을 잃었다, 평생을 울며 지냈다’라며 통곡하는 우리들에게 ‘다 필요없는 짓이니 입다물고 살아라 , 전쟁범죄국에게 피해가 간다’라며 우리 정부가 우리를 외면하고 무시하기에, 우리 정부가 우리나라 사람됨을 포기하도록 종용했기 때문인 것이다. … 우리는 한국의 사람됨이 창피하고 서러워서 차라리 국적을 포기하려 한다” <태평양전쟁 희생자 광주유족회 이금주 회장의 '왜 우리가 국적포기서를 제출해야만 하는가!' 중에서>

일제강제동원진상규명특별법제정추진위원회(이하 진상규명법제정추진위)는 8월 13일 오전 10시 청와대 앞 엘림부페에서 ‘일제 강제연행피해자들의 집단적 국적포기 사태’에 대한 기자회견을 갖고 일본 과거사에 무책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한국정부와 국회를 규탄하고 국적포기를 통해 일본정부와 기업에게 공개사과와 손해배상을 받아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일본군 위안부, 강제징용, 원폭피해자, 전쟁피해자 유족 등 일제 강제연행 피해자들이 대한민국 국적을 집단적으로 포기한 것은 한국정부가 일본정부의 공개사과와 배상 요구나 ‘일제강제동원진상규명특별법 제정’에도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결국 일제 강제연행 피해자들이 직접 나서서 일본정부를 상대로 법적 대응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일본정부를 상대로 한 피해자들의 소송은 패소로 귀결되고 있는데 이는 한국정부가 1965년 한일협정에서 ‘손해배상청구권’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일본정부는 이것을 근거로 일제 과거사 문제는 종결되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한일협정으로 총 9억달러(5억달러 무상지원, 3억 달러 채권)를 받았으나 피해자들에게 배분된 보상금은 거의 없었다.

일본정부를 상대로한 법적 소송에서 ’65년 한일협정’으로 인해 패소를 거듭하게 되자 피해자들은 ‘한일 청구권 협정문서 공개 청구’를 요구했지만 거부당했고 현재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한 상태다.

일제 강제연행 피해자들, 대한국민 국적 포기

 
이날 기자회견에서 최봉태(변호사) 집행위원장은 ‘일제 강제연행 피해자들이 집단적 국적포기 사태에 이른 책임은 정부와 국회에 있음을 밝히며 정부와 국회는 이에 대한 책임감 있는 자세를 즉각적이고 분명하게 보여야 한다’는 요지의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통일연대 민정우 사무처장은 연대사를 통해 “일본 내부에서 심각한 우경화와 군국화가 발로하고 있는 것은 일제로부터 과거사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와 청산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라면서 “이번 국적포기는 삐뚤어진 한일관계를 바로잡고 일본의 군국주의화를 막는데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날 국적포기 사태 기자회견에는 일제 강제연행 피해자와 유가족 100여명이 참석했으며 취재나온 기자들에게 자신이 일본, 러시아, 만주 등지에서 겪었던 인간이하의 삶을 꺼내며 울분을 토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2003년 정신문화연구원에서 자체 조사한 결과 일제 강제연행자는 총 794만1천여명(북한 840만명)이고 이들 중 희생자는 25만 6천여명이고 생존자는 4만 1여명으로 나타났고 매년 1만5천명이 사망하고 있고 이 추세라면 3년이 지나면 생존자가 없어지는 상황이 도래하게 된다.

태평양전쟁 피해자들은 지난 7월 31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국적포기 의사를 밝혔지만 정부는 공식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12일 외교통상부 정상기 아태국장이 외교통상부 출입기자단 브리핑을 통해 “이 건은 이미 96년 헌법재판소에서 한일 청구권 협정과 국내 보상입법조치에 따라 종료된 상황으로 판결났다”면서 “(그들은) 정부를 못 믿어서 자기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외통부 정상기 아태국장의 발언에 대해 진상규명법제정추진위 관계자는 “외교부의 입장은 한일 청구권 협정문서를 공개하지 못하겠다고 했고 일본정부도 조일수교상황에서 일본정부의 국익에 위험하기 때문에 한일협정 문서를 공개할 수 없지 말아달라고 공식 요청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전했다.

일제 강제연행 피해자들의 국적포기는 무책임한 한국정부에 항의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며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게 되면 65년 한일협약의 ‘손해배상청구권 포기’가 인정되지 않아 일본정부와의 법적 대응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된다. 아울러 북한과 일본의 피해자들과의 민족적 역량을 결집할 수 있다는 잇점도 존재한다.

한국정부와 일본정부 양측이 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문서 공개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도 국적 포기에 한몫을 담당한 것으로 보인다.


일제 강제연행 피해자들 , “국가가 먼저 우리를 버렸다”

국적포기 의사를 밝힌 일제 강제연행 피해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국가가 먼저 우리를 버렸다’고 강조했다.

처음으로 국적 포기 사유를 밝힌 태평양전쟁 희생자 광주유족회 이금주 회장은 “우리가 한반도에 태어나 한반도를 우리의 조국을 어머니의 품처럼 따스하게 느낄 수 있었던 적이 한번이라도 있는가! 나라를 잃으면서 우리는 적의 손에 속수무책으로 내동댕이쳐졌고 나라를 되찾은 후에는 적의 손에서 입었던 칼부림, 살육의 진한 고통을 내 어머니인 나라가 적의 편에 서서 외면하고 있다”면서 “적국·조국 어느쪽에서도 우리를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다”고 비통했다.

일본군 위안부로 ‘나눔의 집’에 거처하는 이옥선 할머니도 “해방된 지 60년이 다 되도록 우리 정부는 일제 강제연행 피해자에 대한 어떤 배려도 안했을뿐더러 강제연행의 역사적 사실만으로도 밝혀줄 것을 요청했으나 어떤 응답도 없었다”며 “일제도 ’65년 협정을 통해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면서 배상과 문서공개를 거부했다”고 비난했다.

태평양전쟁 한국인희생자유족회 김경석 회장도 “우리는 나라가 없는 설움을 뼈저리게 느끼는 사람들이다. 국가가 우리를 저버릴 때 물러설 곳도 없고 더 이상 연장할 생명도 없다”면서 “현재 일본에서 70개의 일제 강제연행 피해자 소송이 진행되는데 대부분이 65년 한일협정으로 인해 패소하고 있다. 한 맺힌 한일협정에서 벗어나야 새로운 보상판로가 생긴다. 국가가 먼저 우리를 저버렸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날 국적 포기서를 작성한 피해자들은 1백여명정도였으며 광주, 대구, 충북 등지에서 상경하고 있는 피해자들도 있어 국적포기자들의 총수는 정확히 파악하기 힘든 상황이었이지만 이후에도 국적포기 의사를 밝히는 피해자들이 있다면 접수해 지속적으로 진행된다는 게 주최측의 입장이었다.

한국정부, 국적포기서 접수 못해…문제 해결도 못해

기자회견 후 ‘만약 청와대에서 국적포기서를 접수하지 않을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최봉태 집행위원장은 “한일협정에서 벗어나 북한 피해자와 재일 피해자들이 힘을 모아 일본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배상을 받으려 노력할 것”이라며 “국적 포기서를 받지 않는다면 진상규명법 제정 등 한국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답했다.

향후 위원회는 평양에서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하고 헌법상 국적포기가 불가능한 조항에 대한 위헌소송 제기도 검토하고 있다.

국적포기서를 청와대로 전달하기 위해 나선 피해자들은 청와대는 민원실이 없어서 받을 수 없다는 것이 경찰측의 주장으로 갈길이 막혔고 종로서 관계자는 국적포기서를 처리하기 어렵고 국적포기 의견서는 접수할 수 있다는 것이 청와대의 공식입장이라고 귀뜸했다.

한편 지난 2001년 10월 개혁국민정당 김원웅(당시 한나라당)의원이 입법발의한 ‘일제강제동원진상규명특별법’은 3년이 지나고 있는 현재에도 국회에서 잠을 자고 있다.

2003년 8월14일

<월간 경실련 객원 기자 박신용철 (http://www.with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