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EJ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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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 2004 갑신정변


 










홍종학 교수(경원대 경제학과)


 



 





필자는 중증 개혁병 환자다. 개혁피로증에 개혁무용론이 판치며 개혁은 그저 정치적 수사에 불과한 현실속에서 혼자만 소리높이 개혁을 외치고 있다. 필자에게만 한국경제의 신음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는 탓일까? 과거의 개혁은 잘못된 개혁이며, 그 개혁이 성과도 없이 좌초한 것은 파괴적 개혁의 결과라는 것이 필자의 진단이다. 필자는 새로운 창조적 개혁을 주장한다.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 작은 것이라도 좋으니 하나라도(!) 새로운 방식을 보여주고 성공적으로 정착시키는 개혁을 요구해온 이론적 근거이다. 그런 이야기들을 나눠보려 한다.


 


  누구는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라 했다. 순간적인 충격과 슬픔을 표현한 것이었겠지만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믿는 필자에게는 그리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막강한 침략세력 앞에 기력을 상실하고 그저 목 놓아 울 수밖에 없었던 애국자의 설움은 지금 어울리지 않는다. 필자에게는 ‘2004 갑신정변’이 더 적합해 보였다.




  개혁세력이여, 당당하라




  연초부터 갑신년은 원래 변화무쌍한 해라 했던가? 120년 전 소수의 지식인들이 근대적 개혁을 꿈꾸며 꾀한 정변은 3일천하로 막을 내렸다. 실패한 정변을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최소한 그들에게는 무너져 가는 조국을 하루 속히 개혁해야 한다는 대의(大義)가 있었다. 그러나 수구세력과 외세의 거대함에 비해 한 줌밖에 되지 않는 그들의 조급함은 오히려 개혁파의 몰락을 가져왔고 조선의 개혁은 곧 종말을 맞게 되었다.


 


  2004 정변세력에게는 대의(大義)가 없다. 그들은 인권유린세력과 부패세력을 대변하고 있다. 그들이 자랑하는 근대화 업적은 이미 IMF사태로 빛을 잃었다. 70년대식 운영방식으로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은 도도히 흘러가는 역사의 준엄한 교훈이다. 스스로 개혁하고 열심히 참신한 인재를 발굴하여 국민의 신망을 되찾기 위해 노력해서 한 달 뒤면 평가받을 수 있음에도, 그들은 가뜩이나 어려운 민생경제에 미칠 충격을 무시한 채 대다수의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거사를 감행하고야 말았다. 미래에까지 영향을 미쳐 한국 민주주의의 건강한 발전을 저해할 수 있는 정변을 자행함으로써 앞으로 한국 정치의 한 축을 담당해 나갈 세력으로서 쉽게 회복하기 어려운 실책을 저지른 것으로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2004 정변세력은 6월 항쟁을 승리로 이끈 민주화세력의 힘을 과소평가했다. 17년 전 서슬이 퍼렇던 군사독재 앞에서 미약하기 그지없었지만 6월 항쟁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그 이후 조용하지만 당당하게 자긍심을 되찾은 국민의 힘, 특히 그 모든 것을 지켜보며 자신감에 넘치게 된 젊은이들의 힘을 모르고 있다. 대법관과 국무총리를 역임한 품위와 자격이 넘치는 후보대신에 좌충우돌 자기 표마저 깎아먹는 ‘이마에 금간’ 후보가 왜 대통령이 되었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경직된 사고는 지금 이 시기 많은 젊은이들이 새로운 눈으로 우리의 역사와 정치를 보고 있는 현실의 의미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고 그저 설익은 편견으로 치부하게 만들고 있다. 그런 인식 능력으로는 ‘시일야방성대곡’이라는 ‘한글’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하는 젊은이들의 의식구조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개혁적 보수세력의 상실을 아쉬워하며




  대의(大義)도 없고 국민의 지지도 받지 못하는 2004 정변세력이 3일천하의 종식과 함께 착각에서 깨어날 때 즈음이면 세상은 다시 한번 혁명을 겪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앙시앙 레짐’이 무너지는 것은 개혁세력의 공격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대착오적인 ‘앙시앙 레짐’의 마지막 발악 때문이었음을 역사는 반복적으로 증언하고 있다. 부패세력이 건전한 보수세력으로 탈바꿈하기를 거부하는 모습을 걱정스럽게 지켜본 필자의 입장에서 ‘2004 갑신정변’은 부패세력의 마지막 단발마에 다름 아니다.


 


 다만 3일천하의 착각에 빠져 애써 지켜온 대의(大義)를 내버리고 부패세력에 동화되어 버린 개혁적 보수세력의 상실이 못내 아쉽다. 195명 중에 최소한 20명은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는 의인(義人)이 있어야 했다. 2명은 너무도 부족하다. 그것이 안 되었다면 최소한 체면을 차려줄 수 있는 국회의장이 있어야 했다. 이제 그들은 그 모든 존재 의의를 상실해 버렸고, 120년전 갑신정변으로 개혁세력이 동반 몰락했듯이 그들도 끝없는 쇠락의 길을 걸을 것이다. 사리사욕에 눈이 먼 게릴라들에게 복종하는 길 외에는 다른 선택이라곤 없어 보이는 그들은 못내 커다란 짐으로 남을 것이다.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되돌릴 수는 없다. 하루속히 개혁적 보수세력이 각성해서 스스로 정변을 종식시키는 것만이 건전한 비판세력으로 살아남아 역사와 민족에 공헌할 수 있는 길이다.




  개혁세력에게 주어진 무거운 책무




  이제 개혁 앞에 놓인 크나큰 장애물은 치워질 것이다. 원하건 원하지 않았건 그 동안 개혁세력이 저지른 실책으로 건전한 보수세력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붕괴되었다. 서투른 국가 운용으로 정변이 발생했고 불가피하게 개혁은 가속도를 받게 될 것이다. 지금은 황망 중에 정신이 없겠지만 정변이 종식되고 나면 어깨를 짓누르는 역사의 책무를 느끼게 될 것이다.




(이 글은 경실련의 공식적인 견해와는 무관한 필자 개인의 견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