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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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이야기] [30주년을 바라보다] 박경서 대한적십자사 회장 인터뷰
2018.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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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주년을 바라보다] 박경서 대한적십자사 회장(통일협회 고문, 前이사장)

정리: 윤은주 회원팀 간사

dongi78@ccej.or.kr

 

경실련 30주년을 준비하며 그동안 경실련에서 활동하시며 시민운동을 빛내주신 분들, 또는 우리사회에서 존경받는 사회적 명사들을 찾아뵙고 삶의 혜안과 시대정신을 담은 소중한 이야기들을 듣고 있습니다. 김성훈 前공동대표님에 이어 두 번째로 경실련이 만난 분은 2006년부터 2009년까지 경실련 통일협회 이사장으로 활동하셨고, 현재는 고문으로 활동중이신 박경서 대한적십자사 회장님입니다.

박 회장님은 WCC 아시아 국장, 초대 UN 인권대사를 지내시며 평화, 통일, 인권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셨습니다. 작년 8월에는 마지막 종착역이라고 여기신다는 대한적십자사 회장으로 취임하셨는데요, 적십자 활동 소개와 판문점 선언에 대한 평가 및 전망 등을 진솔하게 나눠주셨습니다. 

 

 

1. 지난 4월 판문점에서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졌습니다. 4.27 정상회담의 성과와 이번 회담이 동북아와 한반도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11년 만에 이뤄졌던 4.27 남북정상회담은 지금까지 72년 7.4 공동선언, 노태우 대통령의 91년 12월 13일 고위급 합의문서, 김대중 대통령의 2000년 6월 15일 남북공동선언, 2007년 10월 4일 노무현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의 연속성에 있습니다.

첫째는 완전한 비핵화가 있고, 둘째는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라는 준전시상태를 완전히 평화협정으로 되돌릴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선언이었다는 점입니다. 셋째는 지금까지 73년 동안 대치를 극대화 했었던 군사대치 국면을 해소시키고 남북이 서로 협력하는 시대를 열었다는 것이죠. 이 세 가지의 큰 틀에서 선언의 전문과 3항 13개조 원칙들이 발현된 거라고 봅니다. 과거의 선언들보다 남과 북의 양 정상이 세계를 향해서 한 선언이기 때문에 진정성 면에서 세계의 큰 반응을 일으킬 것입니다.

지난 73년 동안 우리 민족에게 큰 고통과 아픔을 주었던 이산가족 문제를 포함해 민족 분단으로 발생된 남과 북의 인도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본격적인 계기를 마련해주었다는 점에서 대한적십자사 회장으로서 감사하고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써보게 되었습니다. 6자 회담의 시대를 마감하고 남북이 평화 번영 통일을 위한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남북이 협의해서 세계평화에 주도권을 잡았다는 점에서 이 회담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2. 남북이 종전선언을 하고, 정전협정에서 평화협정으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종전선언의 의미와 평화체제에 대해 조금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전환된다는 얘기는 73년 동안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있었던 상황을 완전히 180도로 바꾸는 거예요. 군사적 대치라는 것은 이제 없을 거고, 다만 평화체제를 지키는 평화 파수꾼의 역할을 하는 군대는 있겠지요. 내가 살았던 스위스마저도 중립국가지만 군대를 가지고 있었어요. 군대라는 게 원래 남을 공격하려는 게 아니고 자기의 안보를 지키려고 있는 거니까 자기의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군대를 향한 대치국면이 완전히 해소가 될 것이고, 이제 그런 분위기 속에서 비자를 받고 서로 왕래하되 두 개의 체제가 평화스럽게 공존하기 때문에 서로 상호 존경을 하고 상호 인정을 하며 지낼 것입니다.

 

3. 대한적십자사 회장으로 취임하셨습니다. 대한적십자사는 구호활동부터 시작해 헌혈, 병원복지사업, 남북교류활동 등 정말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는데 회장으로 취임하시면서 가장 중점을 두시는 부분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대한적십자사 소개와 현재 활동도 간단히 설명해주세요.)

대한적십자사 회장으로 취임한 지 약 9개월이 지났습니다. 세월이 참 빨라요. 대단한 조직입니다. 적십자정신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봉사원 12만 명, 청소년적십자 단원 19만 명, 직원 3,700명 큰 예산을 가지고 움직이는 113년의 역사를 가진 기관입니다. 1905년 고종황제 칙령으로 설립되었어요.

지난해 터키 안탈리아에서 개최된 국제적십자사연맹 총회에서 191개국의 대표격인 관리이사회 이사국을 뽑는데 대한적십자사가 당선이 됐습니다. 취임사에서 언급했지만 대한적십자사를 `선진국형 적십자사`로 만들고 싶어요. 스위스나 독일에서는 적십자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참 좋습니다. 스위스와 독일에서 각각 18년과 7년씩 아이들을 키우며 느낀 건 그 나라들은 어린아이 때부터 적십자를 누구도 침범하지 않는, 인도주의 정신을 실천하는 기관으로 교육시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대한적십자사는 그렇지 않습니다. 단순히 기타 공공기구 정도로 인식돼 있다 보니 각종 감사의 대상이 되고, 봉사정신과 관련이 없는 외부인들이 적십자 활동에 이의를 제기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어요.

지난해 8월 취임 후 ‘동북아시아/한반도 인도주의 공동체 건설’이라는 새 비전과 목표를 가지고 대한적십자사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남과 북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시대를 열 수 있도록 포괄적인 접근법으로 제 3의 길을 모색하고 있어요. IFRC, ICRC, UN 등 국제기구와의 협력을 통해 지금의 한반도 평화 분위기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입니다.

기관 운영에 있어서도 비효율적이고 관행적인 운영 방식을 지속적으로 개선하여 대내외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적십자사를 구현하는 데 주력하려고 해요. 이를 위해, 대한적십자사는 국내 비영리단체 최초로 국제회계기준(IFRS)을 도입했고, 기부금의 모금, 집행 과정은 물론 기관 운영과 관련한 재무 프로세스를 대폭 개선함으로써 조직 전반의 투명성을 강화해 나갈 것입니다.

남북교류 활동에 대한 계획은 판문점 선언 이후 8.15 전후해서 이산가족 상봉이 있을 거예요. 이와 관련하여 6월에는 남북적십자회담이 개최되리라 보고 있습니다. 6월 북미회담 끝나면 평양에 가서 북한 적십자사하고 가서 이산가족 상봉 준비와 인도주의 원조 등에 대해 논의하고 싶습니다. 특히 인도주의적 지원에 있어 보건 지원에 관심이 많습니다. 북의 건강이 남의 건강이라고 생각합니다. 북의 기초건강상태를 획기적으로 개선시키는 것 등에 중점을 두려고 합니다.

어떻게 튼튼하게 평화 공존을 통한 핵과 전쟁이 없는 한반도 인도주의 공동체 건설을 할 수 있을지 북과 마주 앉아 프로그램을 논의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다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상호 인정과 존중으로 남이 50%, 북이 50% 서로 양보해서 만들어 가야해요.

 

 

4. 경실련도 1994년부터 통일협회를 창립하고, 실사구시(實事求是)적 통일운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습니다. 회장님께서도 2006년~2009년까지 이사장도 역임하시고 같이 활동하셨는데, 경실련 활동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고, 통일협회 활동하시던 때 이야기도 좀 들려주세요.

경실련 통일협회가 참 일찍부터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해서 프로그램을 많이 했어요. 지금도 내가 고문으로 있지요. 특히 이번 적폐청산 촛불 운동의 한 가운데 있었고 큰일을 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어요. 유엔은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평화, 지속가능한 발전, 여성, 아동, 청소년 NGO 단체를 먼저 불러서 의견을 청취합니다. 그런 건전한 NGO 중 하나가 경실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경실련에 대한 굉장한 경의를 가지고 있어요.

경실련 활동은 내가 2001년부터 2007년까지 인권대사 할 때 ‘한반도 평화’라는 주제로 경실련통일협회에서 특강을 했던 게 계기가 됐어요. 인권대사를 그만두려고 하니까 경실련에서 이사장을 해주십시오 해서 함께 하게 됐습니다. 그때 이사장할 때 나를 도왔던 게 김근식 교수, 전 통일부 장관 홍영표 등 젊은 석학들이 나를 많이 도와서 참 좋은 추억도 많습니다. 저도 경실련의 한 식구에요.

30주년이 내년이라고 해서 기념행사에는 가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모금도 쉽지 않은데 어렵게 일하는 경실련 직원들에게 찬사를 보냅니다. 경실련이 지금까지 해왔던 큰일은 우리 민족의 선진화를 이뤄냈어요. 특히 판문점 4.27 선언 이후 국민의 계몽문제라든지 아직도 진영논리에 사로잡혀 냉전 논리에서 있는 국민들을 잘 설득하는 일들도 경실련 통일협회가 잘 해가면 멋있게 될 거라는 희망을 갖습니다.

 

5. 경실련이 내년이면 30주년을 맞습니다. 경실련에 바라는 점, 혹은 한국 시민사회에 바라는 점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내가 관여하는 한국의 시민사회 전부가 정부의 보조금을 안 받아요. 촛불 정부 시대에는 경실련 등 시민사회가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아 재원을 확보하는 방안도 고려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게 다 여러분의 세금이기 때문이에요. 한국 시민사회가 그동안은 ‘권위주의적 정부와 대치하면서 시민운동을 한다‘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정부의 돈을 받을 수 없었지만, 지금 촛불 대통령은 다시 독재로 갈 일이 없으니 고려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부보조금을 받는다고 정부에게 싫은 소리 안 하는 거 아니잖아요. 서양에서는 전부 정부 돈으로 움직이는데 더 소리치고 다녀요. 왜냐하면 “너희들이 준 돈이 우리 세금이다”라는 생각가지고 하는 거라서 그래요.

지금까지도 잘했지만 이제 정말 역사를 다시 쓰는 데 있어 끝까지 순수하게 국민의 편에 서서 건전한 NGO로 큰일을 해주길 기대합니다.

 

6.  ‘통일, 평화, 인권’하면 박경서 회장님이 떠오르는데, 이런 주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언제입니까?

늘 이야기하는데 분단이라는 것이 모든 우리나라의 부조리의 원천입니다. 분단을 극복하지 않고는 절름발이식 발전일 뿐입니다. 분단이라는 것이 우리 5천만, 북의 2,300만 7,300만의 목을 조이고 있는 한 모든 부조리가 분단이라는 이름으로 용납이 돼버리는 시대를 산거에요. 우리를 옥죄고 모든 우리의 악의 세력들이 분단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죄를 다 저지른 것을 이제는 과감하게 털어버린다는 그 가능성을 판문점 선언이 해줬기 때문에 판문점 선언의 의의가 크다고 보는 겁니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여수순천 사건이 터졌어요. 사흘 동안 무릎 끓고 아스팔트에 나가있었습니다. 무고하고 순수한 민간인 4만 5천여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우리나라 전쟁이 터져서 외할머니 집에 피난 갔는데 외할머니, 외삼촌, 외숙모, 조카 셋이 내 눈 앞에서 빨치산에게 대창으로 죽는 것을 봤어요. 그런 것을 보고 어렸을 때부터 전쟁이나 폭력은 안 된다. 평화, 인권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머리와 가슴에 깊이 새겼습니다. 제네바 18년 세월 동안에 르완다, 미얀마 학살, 북한의 굶주림 현장을 내 눈으로 보면서 인권, 평화, 지속가능한 발전, 개인의 안전 등의 이슈에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대한적십자사가 마지막 종착역이라고 생각합니다.

 

7. 마지막으로, 초대 UN인권대사, 세계교회협의회(WCC) 아시아 국장, 대한적십자사 회장까지 다양한 이력과 경험을 쌓아오시며 이제 우리시대의 어른이기도 하시고, 사회적 명사가 되셨는데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나는 이런 날이 올 줄 몰랐어요. 내가 조금 오래 살면 내가 그렸던 한반도의 평화정착이 실현이 되는 구나. 시베리아를 거쳐 북한을 가는 날을 머릿속으로 그려봤는데 조금만 더 오래 살면 정말 그게 가능할 것 같습니다. 1986년 제네바 세계교회협의회(WCC) 아시아국장을 할 때 그리온 남북교회 모임을 통해 남한과 북한 목사님들의 대화를 추진했었습니다. 88년 그리온 2차, 90년 그리온 3차, 4차는 92년 남북교회지도자 모임을 했어요. 89년 모스크바 남북 평화선언 그런 인연으로 인권대사를 하게 된 거죠. 그런 인연으로 7년 동안 국가인권위원회를 여러 사람과 같이 만들고, 지금 대한적십자사 회장까지 왔습니다. 내 꿈은 결국 분단을 극복해서 어깨동무하는 정직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공동체를 남과 북이 만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