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실련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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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실련이야기] [30주년을 바라보다] 김성훈 前공동대표 인터뷰
2018.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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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주년을 바라보다] 김성훈 공동대표

 

정리: 윤은주 회원팀 간사

dongi78@ccej.or.kr

 

경실련이 내년이면 30주년을 맞이합니다. 올해부터 30주년을 준비하며 그간의 경실련 활동을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아가려고 합니다. 30주년을 바라보며 경실련이 만나야 할 분들을 한분씩 찾아뵙고 인터뷰를 통해 그 내용을 담아보려 합니다. 첫 번째 인터뷰로 1989년 창립 당시부터 함께 하셨고 토지공개념, 재벌개혁, 농업개혁, 통일운동을 활발히 하시고 최근에는 소비자정의센터에서 반GMO운동을 열심히 하고 계시는 김성훈 前공동대표를 만났습니다.

 

 

1. 경실련 창립 당시 이야기를 조금 해주신다면?

89년 당시 사람들이 지금은 경실련에 하나도 안 남아있는 거 같아요.

7월에 발족해서 11월에 정식으로 사회적으로 선포하고 선언하고 시작했어요. 저도 7월에는 없었고, 11월부터 함께 했어요. 종로5가 다락방 시절 그때 생각하니 교수였어도 참 순진했었어요. 활동가들하고도 완전히 동지애, 아버지와 아들같은 사이로 지냈지요.

경실련은 크게 토지공개념과 금융실명제라는 두 뼈로 시작했어요. 많은 성과도 있었지만 지금 사회를 보면 후퇴하거나 모자란 부분도 많이 보입니다.

 

2. 말씀 꺼내주신 김에 경실련의 30년을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토지공개념이 안 되는 바람에 농지가 다시 부동산 투기의 대상이 됐어요. 부재의 지주, 도시자본 투기자본의 먹이가 됐어요. 경실련 30년 동안에 금융실명제, 한국은행 독립이 이뤄졌지만 재벌개혁은 이제는 삼성공화국, 현대공화국으로 발전했어요. 더 나빠졌어요. 전형적인 예가 이재용 부회장을 무죄 석방한 부장판사에요. 다 삼성장학생이에요. 삼성장학생이 아닌 정부관리, 삼성장학생이 아닌 사법부 판검사, 삼성장학생이 아닌 교수, 학자들이 없을 정도에요.

그 당시 내세웠던 주택임대차보호법 계약기간 2년으로 늘린 것과 한국은행이 나름대로 그래도 독립성 한 것은 잘했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 외에는 아직 많이 부족해요. 경실련 모토가 일한만큼 대접받자인데 노동자, 농민들은 대접을 못 받고 재벌들 돈 있는 기득권층만 이익을 다 가져가고 있어요.

토지공개념은 오히려 1949년 농지개혁 당시처럼 소작화가 만연해졌어요. 헌법에도 경자유전 원칙으로 하고 소작은 금지했는데 위장된 소작이 지금 지배하고 있고, 농지의 반 이상은 소작이고, 이름이야 임차농, 위탁경영 바뀌어있지만 눈감고 아웅하는 거죠. 경실련이 더 치밀하지 못했다고 봐요.

지금의 대한민국은 민주주의(Democracy)가 아니라, 코포라토크라시(Corporatocracy) 대기업 자본주의 세상이에요. 경실련도 자유롭지 못해요. 코포라토크라시에서 경실련이 살아남은 데는 성공했어도 경실련의 출발인 소위 시대정신을 실현시키는데는 조족지혈(鳥足之血)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요.

 

3. 어떻게 시민운동을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태어나서 앞으로 죽을 때까지 농(農)하고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사람이에요. 중학교 3학년때부터 농촌을 살리고 농민을 살리는 것에 관심을 가졌어요. 농촌을 살린다, 농민을 살린다는 것은 약한 사람을, 취약한 산업을 살리자는 것이에요. 항상 약한 생명이 있는 곳, 농(農)은 바로 생(生)이에요. 생명이 있는 곳, 취약한 곳, 취약한 지역, 취약한 산업, 취약한 사람들을 돕고 그분들에게 새 빛과 새 얼(정신)을 심어주고 하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경실련 참여하기 전에는 우리농업지키기운동을 했었어요.

그 당시 우리나라 농업지키기운동에서 우루과이라운드에 위기감을 느끼고 농촌, 농민운동 살리자고 전국단위로 시작할 때 경실련이 생긴 거예요. 그래서 경실련에서 농업개혁위원회라는 걸 만들어서 반 우루과이라운드 투쟁, 우리농업지키기 운동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남북한 통일은 서로 자주 만나고 서로 주고받아야 한다 해서 경실련에 통일협회가 생겼죠. 통일협회에서 창립을 도와줬던 우리민족서로돕기 차원에서 북한을 12번 갔었어요. 북한에서 농사 실험도 했죠. 그렇게 열정적으로 하다 보니 대표 하라고 해서 공동대표도 했었어요.

 

 

4. 김대중 정부 때 농림부 장관을 26개월 하셨었는데, 시민운동할 때와 어떤 점이 다르셨나요?

시민운동하면서 언론에 매일 나오니까 김대중 대통령이 유심히 봤던 모양이에요. 그때 중앙대학교 안성캠퍼스 총장 할 때인데, 장관으로 임명됐다는 전화 받고 서울로 올라갔어요. 무슨 장관인줄도 모르고 올라가서 임명장 받고 농림부장관인 줄 알았어요.

가서 저는 시민운동을 그대로 했어요. 한 건 똑같지만 훨씬 편해요. 예산 있지, 직원들 무조건 명령 따르지… 경실련에서 할 때는 일일이 설득해야 하고 반대하는 집단들 만나서 설득하고, 돈도 이곳 저곳 얻으러 다녀야 하는데, 악만 제대로 쓰면 기재부에서 예산 따다 하니까 경실련 대표보다 몇 배 쉽더라고요.

가서 협동조합 개혁, 농조개혁(수세폐지), 유기농 원년 선포, 농촌 정보화 등 네 가지 일을 끝내고 나서는 사직서 내고 나왔어요. 벼슬자리에 나아갈 때는 그만둘 때를 대비해야 한다고 하잖아요. 저는 제 할 일 하고 끝났다 생각해서 물러나고 바로 캐나다로 갔었지요. 2년 6개월간 경실련에서 파견한 장관이라고 생각하고 일했어요.

 

5. 북한 다녀오신 이야기와 통일운동 이야기 조금 더 듣고 싶습니다.

북한도 우리랑 똑같은 사람이에요. 같은 역사, 같은 문화, 같은 언어를 가지고 있어요. 나라마다 자기나라 체제가 있고, 다름은 인정해야죠. 왜 꼭 대한민국같은 신자유주의 자본가가 지배하는 이런 자본주의가 돼야 한다는 법이 없거든요. 자본주의도 결함투성인데, 체제의 다름만 인정해주자는 거예요.

체제의 다름만 인정하고, 서로 교류와 협력을 하면 우리에게 이익이 되고, 북에도 이익이 되는 일부터 하자는 거예요. 예컨대, 북한의 바닷가들이 우리보다 덜 오염 됐거든요. 거기에 우리 자본과 기술로 양식장 만들어서 해외나가서 팔건 우리 시장에 팔건 해서 이익금을 반반 나눠 갖는 거죠. 우리나라 메밀 부족해서 수입해 먹거든요, 북한에 메밀 심어주고 수확해서 이익 나눠갖자는 거예요. 우리나라 돼지새끼들 가져가서 거기서 키워서 나눈다든지 먼저 서로 이익이 되는 일부터 하자는 것이고, 두 번째는 북에 이익이 되고 우리는 손해가 없는 것을 해서 신뢰를 쌓아야 해요. 우리는 남아도는 식량과 비료, 부족한 북한에 나눠주면 됩니다.

금강산에 내가 심은 나무, 개성공단에 심은 나무들, 지금쯤 많이 자랐을텐데 죽기 전에 그거 보는 게 소원이에요. 금강산 열리기만 하면 첫 번째로 갈려고 해요.

 

6. 최근 근황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책을 쓰고 있어요. ‘밥이 민주주의다’ 우리가 삼시세끼 먹는 밥이 완전히 다국적 상업자본의 먹이가 돼가지고 안전한 먹거리가 아니라 유전자를 조작한 GMO라든가 유해색소나 유해첨가물이 들어간 입에 달콤한 눈에 보기 좋은 음식이 우리의 신체를 좀 먹고 있어가지고 병들어가게 하고 있어요.

우리나라 기업이 식품산업협회라는 데가 식약처가 GMO보급의 선봉에 서서 GMO보급의 앞잡이가 되어 있어요. 생산자가 ‘내 것은 GMO가 아닙니다’ 하는 표시하면 잡아가도록 하고 있어요. 제품이 GMO가 들어있다고 하는 완전표시제를 못하게 하는 것까지 좋은데 ‘내 것은 GMO가 아닙니다’는 표시도 못하게 하는 법이 어디있냐고요. 내가 생산한 콩, 두부, GMO가 안 들어갔습니다 해서 잡혀간 사례가 있어요.

일찍이 세종대왕도 “식위민천(食爲民天)” 밥은 백성의 하늘이라고 했어요. 지금은 먹거리에 뭐가 들어있는가도 모르고 있는데, 이것만 제대로 고쳐도 우리나라가 민주주의다. 따라서 밥이 민주주의라는 거예요.

 

7. 마지막으로 경실련이 앞으로 꼭 해야 할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그리고 경실련 30주년을 바라보며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토지공개념 확립하는 일과, 재벌개혁, 경제민주화를 실천하는 일은 영원히 경실련이 풀어야할 과제라고 생각해요. 경실련이 출범했던 당위성, 이유가 지금도 계속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누가할 것이냐? 점점 돈과 권력의 장학생이 되어가는 전문가들에게 의존하지 말고, 상근활동가들이 전문가가 돼서 이제는 전문가들을 이끌고 나갔으면 좋겠어요.

경실련은 재창립선언을 해야 한다고 봐요. 경실련이 출발했을 때 시대상황이 결코 더 나아지지 않았거든요. 경실련이 초심을 다시 살려서 재창립 선언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어요. 30주년을 맞아 경실련이 재창립한다는 정신으로 재창립 선언이 나오는 그런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