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EJ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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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 시민의 용어, 욕구, 수준에 맞는 운동이어야 – 인명진 경실련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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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명진 목사(갈릴리교회)는 1993년 경실련 시민권익센터 전신인 ‘부정부패추방운동본부’의 본부장을 역임했다. 
Q. 경실련 공동대표로 선출된 소감은?
그간 우리 사회는 시기 시기마다 역사적인 과제가 있었는데, 경실련은 27년전 출범 당시 그 시기에 필요한 역사적 과제, 즉 부동산투기 근절, 경제정의 실현 등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돌이켜 보면 새로운 시민운동의 시작은 상당한 의미가 있었고 업적도 매우 컸다고 봅니다. 당시 경실련은 상아탑에만 갇혀있던 교수 등 지성인들을 이끌어내고, 재야에만 머물렀던 운동세력들을 시민들과 함께 하는 시민운동으로 견인하면서 실질적인 시민사회의 막을 열었죠. 민주주의가 성숙하기 위해선 6월 항쟁을 통해서 얻어낸 제도적인 민주주의 바탕 위에 실질적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고 발전시킬 수 있는 모멘텀이 필요했는데 경실련은 그것을 제공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경실련의 역할이 이전보다 축소된 측면이 있지 않나 싶어요. 시민운동의 과도기적인 측면도 있지만, 시민사회가 정부와 너무 가까워지면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특히 시민사회와 정부와의 긴밀한 관계 형성은 개별적으로는 굉장히 큰 성과가 있었지만 이것이 오히려 시민사회를 약화시키고 후퇴시킨 부분도 많다고 봐요. 그로 인해 시민단체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가 많이 떨어졌는데 그래서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추락한 시민의 신뢰를 찾는 부분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해방둥이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대한민국의 주요한 사건의 한가운데 있게 된 경험이 있어요. 이러한 경험과 최근의 사회적 상황을 고려할 때 시대적 과제가 다시 경제정의, 불평등해소, 통일 등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우리사회가 신자유주의에 너무 경도되어 온 상황에서 이것을 바로잡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와중에 때마침 경실련에서 공동대표 제의도 있었고 나름의 제 역할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맡게 되었네요. 경제정의를 세우고, 불평등 양극화를 극복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우리사회 전체가 주저 않게 될 수도 있다고 봐요. 그래서 제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고요. 그러나 이제 늙고 지치기도 했네요.(웃음) 온 에너지를 다 쏟아 붓지는 못하더라도, 힘 닿는 대로 노력하고 지원하고자 합니다.
Q. 인명진 대표님의 삶의 이력은?
신학교 2학년 때(1970년) 전태일 열사 사건이 났어요. 개인적으로는 부농의 아들로 자라서 크게 어려움을 몰랐었지만, 그 사건으로 굉장히 큰 충격을 받으면서 우리 사회의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3학년 때(1971년) 김진수 사건 1970년 12월 한영섬유 노동조합을 결성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시정을 촉구했으나 1971년 3월 18일 노조를 파괴하려는 구사대에게 피습당해 5월 17일 운명함
이라고 노동자 사건이 있었는데 이 때 서경석, 이미경, 장하진 선생 등과 함께 이야기 나누며 노동자들을 위한 활동을 했습니다. 신학교 졸업 후에는 영등포산업선교회에 몸 담으면서 노동자의 권리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했어요. 긴급조치 1•4호 위반, YH사건,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등으로 4번에 걸쳐서 총 3년 정도 감옥생활도 했고요. 한 번에 오래가 낫지 감옥에 자주 들락날락 하는 것은 별로 좋지 않은 것 같네요(웃음).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때는 중앙정보부에 끌려가서 60일동안 밤낮없이 고문도 받았는데 죽다 살아난 것이죠. 그 사건이 허구로 짜깁기를 하려다 보니까 무리한 수사와 고문을 자행했던 것이고요.
영등포산업선교회 활동과 출소 이후에 호주에서 한 2년 정도 생활하기도 했습니다. 돌아와서 제가 한국공해문제연구소를 만들었어요. 사실 최열 대표가 우리나라 환경운동의 원조라고도 많이들 알고 계시지만 그 당시엔 최열 대표는 실무자였고 제가 환경운동을 처음 시작한 것이라고 볼 수 있죠(웃음). 호주에 있으면서 환경운동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던 겁니다. 아직 환경운동 자체가 생소하던 그 시기에 말이죠. 원자력 발전소가 우후죽순 들어서고, 경제발전한다고 일본에서 공해 산업으로 낙인찍힌 산업들이 뒤늦게 수입되기도 한 것인데, 원진레이온 등이 그 예지요. 그 당시 해외 활동가들이 제게 당신이 진짜 나라를 걱정한다면 환경운동을 해야 한다고 했던 충고들이 매우 주요했던 것입니다.
이후엔 이주노동자인권운동, 인터넷방송도 처음하고, 바른언론시민운동, 행정개혁시민연대 등의 활동도 했습니다. 갈릴리 교회도 세우고 목회활동을 했는데 곧 교회도 30년이 되네요. 교회를 통해서 지구촌나눔운동, 베트남 카우뱅크 사업 등을 지원했고, 사막화 방지 활동을 통해서는 몽골 정부로부터 그 공로를 인정받아 상도 받기도 했네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도 열심히 했는데, 이제 다시 경실련에서 활동하게 되었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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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헬조선, 흙수저. 경제양극화 심화 등… 경실련 운동 방향은?
선택과 집중이 필요합니다. 다 할 수 없으니까요. 예를 들어 외국 환경운동 사례를 보면 정말 조그만 강의 일부분만을 맡아서 오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운동하거든요. 이렇게 하면 그 운동의 영향이 전체적으로 퍼지게 되는 겁니다. 너무 담론적으로 전국, 한국, 하는 것보다는 중요한 것 위주로 선택과 집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하나는 어떻게 하면 시민들이 함께할 수 있을 것인가 고민이 필요합니다. 시민들은 위대하기도 하지만 또한 자기이익이 있어야 함께 할 수 있는 것이거든요. 그렇기에 시민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늘 고민해야 합니다. 결국, 자기이익과 공익이 함께 어우러져야 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런 차원에서 시민들과 함께 생각하고 활동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시민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해야겠지요.
경실련과 함께 하고 계신 교수님들을 통해서 거대 담론 등이 논의되면 그에 맞는 운동의 전술 전략도 중요하지요. 시민운동 자체도 박사학위 받는 것처럼 어려운 것입니다. 경실련이 과거와 달리 싸울 수 있는 운동의 전략 전술을 잃어버린 것 아닌가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실무자들이 활동가들이 중심에 서서, 경실련이 추구하는 바가 실천이 될 수 있도록, 시민과 함께 실천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어려운 말을 시민의 용어, 욕구, 수준에 맞게 바꾸어 낼 수 있어야 해요. 운동가들이 가야할 방향을 발런티어 분들의 도움을 받아 설정하고나면, 현실적인 방법으로 그 방향으로 움직이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시민운동가들이 운동력을 전달하는 축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겠다, 움직일 수 있게 운동이 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Q. 경실련 회원님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경실련 운동은 정말로 이 시대의 역사적인 과제를 감당하는 운동이다. 그런 길에 함께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주시면 어떨까 합니다. 이 시대의 독립운동과 비슷한 것 같아요. 후에 자손들에게 “내가 경실련 회원이었다.” 이렇게 자랑할 만한, 역사적이고 중요한 경실련운동에 함께 했다는 사명감이나 자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습니다.
정리 : 오세형 기획총무팀 간사
이 글은 월간경실련 2016년 06월호에 게재된 글을 일부 인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