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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 [칼럼] 8·25 합의와 우리 정부에 대한 신뢰_김영윤 남북물류포럼 회장
「8·25 합의」와 우리 정부에 대한 신뢰

김영윤 남북물류포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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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고위급 접촉의 결과로 얻어낸 2015년 8월 25일 새벽 두시의 공동보도문은 전쟁을 불사하는 일촉즉발의 남북관계를 대화로 풀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만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번 합의를 마냥 칭찬으로만 일관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 이유는 이번 합의가 지나쳐서는 안 될 중요한 것을 그냥 덮어두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어떻게 하면 남북이 다시는 전쟁불사의 상황에까지는 오지 않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금번 합의는 남북한이 파국을 막는 일회용 미봉책에 지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당장 오는 10월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 70주년만 해도 그렇다. 한미 정보당국은 북한이 이 날을 맞아 위성 발사라는 명분으로 장거리 로켓을 발사할 것으로 거의 확신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정부가 이를 북한의 도발로 보고 대북한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는가 말이다. 이번 공동보도문에도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이라는 표현을 두고 있어 남한의 판단에 따라 방송을 재개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고 있는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어디 그 뿐인가? ‘표현의 자유’를 등에 업고 남한의 특정 민간단체가 살포하는 대북 전단지에 북한이 고사총 같은 것을 사용, 격침시킬 경우 다시 조성될 남북한 긴장관계가 「8·25 합의」를 얼마든지 휴지조각으로 만들 가능성이 크다. 물론, 공동보도문 제1항에 당국회담을 열어 여러 분야의 대화와 협상을 진행해 나가기로 했기 때문에 이런 저런 문제가 거론될 것으로는 예상되나, 이번 협상에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마련하는 단초를 마련하지 못한 점은 두고두고 아쉽다고 해야 할 것이다. 절박한 상황에 부딪히면 미래지향적 결단은 더 쉽게 내려질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분명하게 받아내지 못한 이유

그렇다면 왜 그런 중요한 내용이 빠졌을까? 이는 처음부터 이번 회담의 성격을 잘 못 규정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이 번 회담의 최우선적 목표를 북한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명백한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내는 것에 두었다. 이는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박대통령의 가이드라인 제시로 재확인된 사안이기도 했다. 문제는 그렇게까지 하면서도 우리가 원했던 것을 얻지 못했다는데 있다. 북한이 한 “유감”이라는 표현이 외교적으로 ‘사과’를 의미한다고 하나, 국민들에게는 ‘유감은 유감’이요, ‘사과는 사과’다. 북한을 언제부터 그런 외교적 상대로 대우했는지 모르겠으나, 그것이 국민정서와는 상당한 괴리가 있음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유감’은 쉽게 말해 그런 일이 발생해 ‘안 되었다’는 뜻에 더 가깝지 않는가? 북한으로부터 ‘유감’이라는 표현 밖에 달리 얻어내지 못한 것은 우리가 북한이 꼼짝 못할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보다 더 큰 문제라고 할 수 있었던 북한의 포격도발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못했다. 이 또한 명백한 증명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러니 “유감”을 애서 ‘사과’로 덧칠하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협상이 43시간이나 걸렸고 그것이 신기록이라고 언론들은 떠들어 댔지만, 그 대부분의 시간을 십중팔구 “잘못을 인정하라, 못한다,” “사과로 표현하자, 안 된다”를 가지고 다툼하는데 허비했을 것 같다. 정작 중요한 전쟁방지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으면서 말이다.
정부의 변신은 무죄(?)

그런데 그렇게 극한으로 치닫던 남북한이 어떻게 43시간의 협상으로 돌연 ‘교류협력’이라는 관계로 바뀔 수 있었을까. 다양한 분야에서의 남북한 민간교류 활성화는 물론, 아예 이번 추석을 계기로 이산가족상봉까지 하는 합의에 이른 것은 참으로 놀랄만한 일이다. 지금까지 그토록 강경하게 유지했던 우리 정부의 대북한 기조가 그렇게 돌변할 수 있었던 것은 남북이 전쟁을 할 만큼 긴박한 관계였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국면전환을 해야 하는 무슨 절박한 사정이라도 있었던 것 때문이었을까? 그 이유가 어디에 있었던 꼭 묻고 싶은 것은 그럼 그동안 유지했던 대북한 정책기조는 도대체 무엇이었냐는 것이다. 그토록 강하게 견지했던 원칙이 한 번의 협상으로 내던져져도 좋을 만큼 아무런 가치나 의미가 없었느냐는 것이다. 수많은 민간단체들이 대북 정책의 기조를 바꿀 것을 침이 마르도록 애절하게 요구했을 때는 일언반구도 없다가 도대체 무슨 바람이 불었기에 그토록 대변신을 할 수 있었는가 말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천안함과 금강산 관광객 총격사건에 대한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하지 않는 한, 그 어떤 협력도 본격화할 수 없다는 기조를 그렇게 헌신짝처럼 내팽개칠 수 있었던 우리 정부의 결단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 그렇게 쉽게 개선될 수 있는 남북관계라면 왜 지금까지 그러지 못했느냐는 물음에 이르면 분노가 치밀기까지 한다. 지금까지 남북관계 개선은 물론, 북한의 변화를 어느 하나라도 이끌어내지 못한 정부가 전쟁의 위기를 기회로 이용하려고 했던 것인가? 그래서 스스로를 꼼짝 못하게 했던 ‘5·24조치’라는 올가미에서 벗어나기 위한 고도의 정치공학적 계산이 작용했던 때문이었을까? 만약 그랬었다면 다시 말해, 이번 협상과정에서 대북 정책의 기조를 교류협력으로 바꾸기로 했었다면, 그것을 과감하게 나타내는 조치를 취하고 분명히 명시하는 것이 훨씬 더 나았을 뻔 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적어도 5·24조치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밝혔어야 하지 않았는가 하는 이야기다. 5·24조치를 해제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남북교류협력도 불가능한 상태인 것은 우리 정부가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5·24조치에 대한 결단 있었어야

그러나 열 걸음을 양보해 이야기한다고 해도 한 가지 앞으로 지극히 우려되는 점이 있다. 이는 우리 정부가 「8·25 공동보도문」에서 내보인 기조와는 다른 방향으로 남북관계를 가져가지 않겠는가 하는 우려다. 다시 말해 이번 회담에서 우리 정부가 대북 교류협력을 활성화하겠다는 합의를 했으나, 과연 그렇게 할 것인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8·25합의”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우리 정부는 벌써 자신이 뒤집은 원칙을 또 다시 뒤집을 것 같은 기세를 보이고 있다. “북한과의 협상은 이제부터 시작이요, 대북 원칙에는 변한 것이 없으며, 결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 그것이다. ‘5·24조치’를 해제하고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생각은 없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내비치고 있는 것도 다 같은 맥락이다. 이게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우리 정부가 가장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확신 없이 시중의 여론과 시류에 영합한 대북관계를 생각하고 있다면, 우리 국민들은 더 이상 이 정부에 기대를 보내지 않을 것이다. 그저 보수의 눈치만 보는 정부, 자신감을 상실한 정부, 표만 바라보는 정부라고 폄하할 지도 모른다. 남북이 합의한 이산가족상봉이 이루어지면 어떤 일들이 벌어지게 되겠는가? 우리 모두는 남북의 가족이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는 광경을 보게 될 것이다. 북한의 가족들을 안고 포옹하는 몸짓을 보일 것이다. 눈물로 뒤범벅된 이 몸짓이 행사를 위해 그저 하는 몸짓은 아니지 않겠는가? 이산가족이기 때문에 단지 상봉해야 하는 의무적인 것은 결코 아니지 않겠는가? 그 몸짓을 표출되는 분단극복의 목마른 절규를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산가족상봉을 통해 더 이상 남북이 전쟁의 불안 속에 살지 않고, 보고 싶은 사람을 보며 살 수 있는 확신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일. 그 일을 과연 누가해야 할 것인지를 묻고 싶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교류협력의 진정성 

그래서 43시간 협상의 반전이 왠지 불안스럽다. 정부는 이번 협상에서 전쟁을 막으면서 평화를 공고히 하는 일을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했어야 했다. 적어도 그런 발판이라도 먼저 마련해 놓았어야 했다. 항구적 평화를 어떻게 공고히 할 것인가를 궁리하고 궁리해도 모자랄 판에 이산가족상봉을 받아내는 데만 급급했다면 이는 본말이 전도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산가족상봉을 이끌어낸 것이 정부의 자랑거리로 친다면 이는 국민의 마음을 잘 못 읽어도 한참 잘못 읽은 것이 된다. 

현재로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이겠는가? 다름 아닌 8·25 협상을 통해 도출한 긍정적 남북관계를 지속적으로 이어 가는 일일 것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일까? 한 마디로 말해 우리 정부가 진정으로 남북관계를 개선하려는 마음과 의지를 가지는 것이다. ‘정치·군사적인 대북관계를 중요시하는 남한이 북한이 원하는 경제교류와 협력에 얼마나, 어느 정도의 진정성을 가지느냐가 현 시점은 물론, 앞으로의 남북관계를 가름하는 핵심이 될 것이다. 만약, 우리 정부가 지금까지 견지했던 생각, 다시 말해 북한의 소행 때문에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생각을 고수한 채, 기껏 해야 이산가족상봉만을 염두에 두고 대북관계를 가지고 간다면 한 두어 번의 이산가족상봉은 가능하겠지만 지속적으로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견지했던 조건부 대북협력방식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북한이 들어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안 된다”는 식으로 가지 않아야 한다. 남북협력사업이 서로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가져갈 수 있어야 한다. 정치·군사적인 문제는 정치·군사적으로, 교류협력의 문제와는 연계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우리 정부는 교류협력에 정치적인 조건을 달지 않는 결단의 용기를 가지기 바란다. 급 치솟는 박대통령의 인기를 결코 착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은 단지 전쟁을 억제한 것에 대한 박수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