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EJ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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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 [경실련-오마이뉴스] 남북교류협력 사용설명서⑧ 박근혜 대통령에겐 아직 ‘절호의 기회’가 있다

박근혜에겐 아직 ‘절호의 기회’가 있다

[남북교류협력 사용설명서] 심상진 경기대 관광경영학과 교수 인터뷰

경실련통일협회는 오마이뉴스와 공동으로 남북경협 재개와 남북교류협력 정상화를 위해 ‘남북교류협력 사용설명서’라는 타이틀 아래 남북교류협력-개성공단-사회문화교류-금강산관광-인도적 지원-대북정책 등에 대한 기사와 심층 인터뷰를 12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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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해항을 출발하는 금강호 1998년 11월 18일 금강산으로 출발하는 금강호가 동해항을 출발하면서 역사적인 금강산관광이 시작되었다.

오는 7월 11일은 금강산관광이 중단된 지 7년째 되는 날이다. 1998년 11월 설레는 뱃고동 소리와 통일의 꿈을 가득 안고 출발했던 금강산관광은 2008년 7월까지 약 200만 명의 남한 관광객이 북한을 방문한, 분단 이후 최대 규모의 남북 인적왕래 사업이었다. 
금강산관광이 시작되면서 민간차원에서 남북의 길이 열렸다. 이후 남북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통해 정치·군사적 대립과 긴장완화를 이루어냈고, 이어 개성공단 설립을 통한 경제적 교류협력을 시작했다. 금강산관광은 남북관계의 획기적 전환을 이룬 시작점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박왕자씨 피살사건 이후 금강산관광은 7년째 중단되어있다. 이로 인해 남북관계에 대화와 소통은 막혀있고, 갈등과 분열이 거듭되고 있다. 또한 금강산관광 중단은 금강산에 투자한 애꿎은 경협기업들과 관광객을 대상으로 영업하던 강원도 주민들 등 금강산관광 사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 
현대의 경우 금강산관광과 개성관광 중단으로 지난 7년간 약 1조 353억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사)경실련통일협회는 금강산관광 중단 7년을 앞두고, 금강산관광의 시작부터 중단까지 함께했던 전 현대아산 금강산사업소 심상진 총소장(현 경기대 관광경영학과 교수)을 만나보았다.

금강산관광 유람선 출항 위해 18개 기관에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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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산관광의 물꼬를 열은 소떼방북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1,001마리 소를 북한으로 보내면서 금강산관광의 물꼬를 열었다.

– 금강산관광이 처음 시작 된 게 1998년 11월 18일입니다. 심상진 교수님께서는 금강산관광이 시작되기 전부터 중단된 이후까지 쭉 현장에 직접 관계하셨는데요. 아마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을 듯 싶습니다. 먼저 금강산관광이 시작될 당시 이야기부터 듣고 싶습니다.

“1998년 6월 정주영 회장의 소떼방북으로 열린 금강산관광은 여러 가지 면에서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해낸 사업이었습니다. 우선 시간부터 무척 부족했습니다. 정주영 회장의 소떼 방북이 6월이었고, 관광이 시작된 날짜가 11월이었으니 반년도 채 안되는 기간에 관광을 준비한 셈입니다. 모든 일이 숨 가쁘게 진행되어야 했습니다. 당장 유람선을 못 구해서 난리였고요. 간신히 외국에서 유람선을 구해왔지만 개조하는 작업도 한참 걸렸습니다.
또한 반세기 넘게 막혀있던 군사분계선을 이렇게 대규모 인원이 통과한 것도 전례가 없던 일이었습니다. 남북 모두를 설득해 하나하나 새롭게 사례를 만들어 가야했습니다. 당시 현대는 금강산관광 유람선이 출발할 때마다 통일부, 국방부, 해군사령부, 국정원, 검찰, 기무사, 법무부, 관세청 등 남한 당국에만 무려 18개 기관에 보고를 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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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금강산 육로관광 복귀행렬 2004년 2월 육로를 통한 금강산관광이 가능해졌다.

북한 입장에서는 상황이 더 복잡했습니다. 금강산으로 향하는 유람선이 도착하는 장전항은 북측 최남단에 위치한 천혜의 군사항으로 당시 북한 동해함대의 잠수함 기지와 군 병력이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북한 군부의 반대가 극심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금강산관광은 시작되었고 북한 동해함대는 후방으로 물러났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문제도 있었습니다. 통상적으로 배 앞쪽에는 기항지 국가의 깃발을 달고 뒤쪽에는 자국의 깃발을 다는 것이 관례입니다. 그러다 보니 남한 내에서 북한 인공기를 다는 것도, 북한 내에서 태극기를 다는 것도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고심 끝에 생각해 낸 해법은 바로 한반도기였습니다. 기억 남는 게 한반도기를 북한에 보여주었더니 북한에서는 한반도기에 독도도 집어넣자고 역제안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금강산으로 향하는 배에는 한반도기가 달렸고 그 한반도기에는 우리의 독도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금강산관광의 출발부터 중단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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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98년 10월 30일 백화원초대소에서 첫 번째 면담을 가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 금강산관광은 시작부터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던 거 같습니다. 그래도 분단 이후 최초이자 최대규모의 인적왕래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은데요. 지난 1998년부터 2008년까지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금강산관광이 어떻게 진행되었고, 어떤 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요?

“지금이야 금강산관광의 토대가 마련되어 현대도 금강산관광이 재개만 된다면 2개월 이내에 실질적인 관광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시로써는 남북은 반세기동안 적대적 관계를 유지해왔었기 때문에 법·제도적 뒷받침이 미비했습니다. 현대는 일을 벌이고 남북의 법과 제도가 뒤를 쫓아왔습니다. 남북의 여러 불만이 터져 나왔고 현대는 남북 모두를 다 설득시켜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특히 금강산관광을 시작될 당시에는 IMF 경제위기 시절이었습니다. 모든 기업들이 사업을 다 축소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당연히 현대 내부에서도 불확실성이 큰 대북사업에 대한 반대가 많았고, 투자가치도 크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 부지에 부두를 건설하고, 호텔을 만들겠다는 구상은 당시에는 너무나 막연하기 짝이 없는 구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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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산에서 2002 한일월드컵을 응원하는 모습 2002년 6월 4일 북한 온정각에서 현대아산과 관광객들이 폴란드전 승리에 기뻐하고 있다.


그렇게 어렵사리 금강산관광이 시작되었지만, 수익성도 문제였습니다. 2000명이 정원인 유람선에 승무원이 700명이었고 승객은 1300명이 탈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날은 예약인원이 단 한명도 없는 날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탑승객이 52명밖에 없던 날도 있었습니다. 
남북관계 경색에 따른 위기도 있었습니다. 대북송금사건에 따른 검찰수사, 연평해전, 북한 미사일 발사, 북핵실험 등이 대표적인 사례였습니다. 그래도 기존합의에 따른 정경분리 원칙으로 금강산관광은 꾸준히 확대·발전 되어갔습니다.
2003년 9월부터는 육로관광이 시작되었으며, 2004년 7월에는 금강산 당일관광, 1박 2일 관광을 시작하였고, 2008년 3월부터는 개인 승용차 관광도 가능해졌습니다. 관광객 200만 명 돌파가 목전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2008년 7월 11일 고 박왕자씨 피살사건으로 금강산관광은 잠정 중단되었습니다. 당시에는 통일부는 물론 저희 역시 한두 달 또는 늦어도 두세 달이면 관광이 재개될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관광 중단은 하염없이 미뤄지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금강산관광 중단, 퍼주기라는 인식부터 버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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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산 토지이용증 북한이 현대에 발행해준 금강산 토지이용증


– 일부에서는 금강산관광을 두고 퍼주기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서독은 통일과정에 있어 동독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지원했습니다. 동서독의 경제교류 규모는 연평균 2219억 마르크(약 75억 달러)에 달했으며, 이 과정에서 동독이 얻은 이익은 공식거래(연 8억 달러)와 비공식지원(연 15억 달러)을 합쳐 연평균 52억 마르크(23억 달러)였습니다. 

동독 입장에서는 서독과의 교류협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동독 국민총생산(GNP)의 3%, 서방과의 교류협력에 40~50%를 차지할 정도로 막대했습니다. 이처럼 서독은 동독에 막대한 금액을 지원했지만 독일 통일 과정에서 ‘퍼주기’라는 비판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교류협력이 동서독 관계를 이어주는 중요한 연결고리의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대북지원 및 남북교류협력, 경협사업은 퍼주기가 아니라 통일준비비용으로 바라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금강산관광은 남한에서 북한의 금강산으로 가는 도로포장, 항만시설, 숙박과 상업시설 등의 사회간접자본시설 투자는 물론 관광을 통해 남북의 이질감을 줄이는 실질적인 통일준비를 앞당기는 효과도 있습니다. 금강산관광이 중단되기까지 백두산 관광을 위한 도로포장과 공항공사도 마무리 단계였습니다. 그러나 남북관계 악화로 우리는 여전히 중국을 통해 돌아서 백두산을 갈 수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더 큰 문제는 금강산관광이 7년째 중단되어 민간왕래가 전무한 상황에서, 5.24조치로 남북교류협력마저 전면 중단되면서 북한의 경제·사회가 중국에 급속히 예속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실제 작년 북한의 대외무역량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이중 약 90%가 중국과의 대외무역에 치중되어 었습니다. 반면 박근혜 정부는 통일준비위원회를 만들어 실질적 통일준비를 논의하고 있지만 남북관계에 남은 것은 개성공단 단 하나뿐입니다.”
정권의 변화에 따른 왔다갔다하는 대북정책, 독일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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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 농업, 수산물 사업을 위한 사업단의 벼배기 금강산관광은 단순 관광 사업이 아니었다. 통일준비를 위한 기반시설 조성은 물론 사회문화교류, 이산가족 상봉의 장이기도 했다. 사진은 통일농수산사업단이 2005년 10월 삼일포 통일 벼베기를 하는 모습이다.


– 어느덧 금강산관광이 중단된 지 7년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금강산관광이 재개 되지 않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요?

“박왕자씨 피살사건은 명백하고 불행한 일이었습니다. 다시는 이런 불미스러운 사고가 발생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남북관계 전체가 이렇게 장기간 파국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고민해봐야 합니다.  

금강산관광은 단순 관광 사업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정치·군사적으로는 남북의 대립과 긴장을 완화시키고 남북대화의 창틀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경제적으로도 남측의 시장경제를 북한에 전파하고, 북한에 개혁·개방의 학습효과를 전파하는 동시에 사회간접자본 개발로 통일비용을 줄이는 효과도 있었습니다. 사회·문화적으로도 일반 주민들의 왕래로 남북의 편견과 이질감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또한 이산가족 상봉 개최 장소로 사용되면서 인도적 지원의 장으로서 역할도 했습니다. 
금강산관광이 장기간 중단되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바뀌는 일관성 없는 대북정책 때문입니다. 독일의 경우 정권에 상관없이 일관된 통일정책을 펼쳐왔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74년부터 1992년까지 약 18년간 ‘한스 디트리히 겐셔’라는 단 한 명의 장관이 통일정책을 담당한 경우입니다. 독일은 정권이 교체되어도, 통일 정책만큼 거시적이고 항구적인 틀 안에서 정책적 기조를 일관되게 진행해 왔습니다. 
반면 같은 기간 동안 우리 정부는 3대-17대까지 무려 15명의 통일부장관이 바뀌었습니다. 사람만 바뀐 것이 아닙니다. 정권교체에 따라 대북정책은 심각한 부침현상을 겪어왔습니다. 이로 인해 민간지원, 남북교류협력, 남북경협, 인도적 지원, 민관협력 등 애꿎은 민간차원의 피해만 늘어났고, 남북관계 역시 지속적·장기적 안정적 관리에 심각한 악영향을 주었습니다.”
광복 70주년, 염원을 실천으로 옮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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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산을 찾은 대학생 평화캠프 2003년 대학생 평화캠프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금강산을 찾은 대학생들.


– 끝으로 금강산관광 재개를 통해 우리가 얻는 이익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금강산관광의 필요성을 설명해주시고 인터뷰를 마칠까 합니다.

“지난달 4일, 제 43차 국제철도협력기구(OSJD) 장관회의에서 한국의 정회원 가입이 좌절되었습니다. 만장일치제인 이 회의에서 북한이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남북관계 악화에 따른 분단비용의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중국-러시아로 이어지는 철도 연결은 물론 박근혜 정부의 핵심 공약인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달성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가입이었습니다. 

사실 역사를 되짚어 보면 1906년 부산-서울-신의주를 이어 시베리아로 가는 철도가 이미 개통해 있었고, 1912년에는 부산-장춘 열차를 비롯해 1927년에는 대륙으로 화물운송도 가능했었습니다. 분단으로 인해 100년 넘게 대륙으로 가는 물류길이 막혀있는 셈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정체중입니다
이제 남한의 성장동력은 북한을 포용하면서 찾을 수 있습니다. 북한과의 관계가 개선 되면, 인구 2배(남한의 입장에서는 1.5배), 국토 2배 등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국가 브랜드 가치 역시 크게 제고 할 수 있습니다. 전 세계 200여개 국가가 중 이러한 기회를 가진 국가는 사실상 한국이 유일합니다. 
금강산관광은 그래서 필요합니다, 사람이 가야 길이 열리고 길이 열려야 그 길로 물류가 통하고 통일이 열릴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 총칼만 맞대고 있는 한반도에 통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만나야 합니다. 소 1001마리를 끌고 북한으로 간 정주영 회장의 실천처럼 통일의 염원을 실천으로 옮겨야 합니다. 다시 한 번 금강산관광 재개를 촉구합니다.”

출처 : http://omn.kr/ehh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