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EJ 칼럼

보다 정의롭고 모두가 행복한 미래사회를 위해 달리는 경실련의 최근 이야기를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CCEJ 칼럼] [경실련-오마이뉴스] 남북교류협력 사용설명서⑦ 관광객 피살 사건, 이명박 대통령과 달랐다

경실련통일협회는 남북경협 재개와 남북교류협력 정상화를 위해 ‘남북교류협력 사용설명서’라는 타이틀 아래 남북교류협력-개성공단-사회문화교류-금강산관광-인도적지원-대북정책 등에 대한 기사와 심층 인터뷰를 12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편집자말] 

“20세기 최후의 전위예술.” 

프랑스 석학 기 소르망은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1001마리 소떼 방북’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1998년은 남북교류협력의 중대한 전환점이 되는 해다. 분단 이후 반세기 넘게 소모적 대립과 갈등을 거듭해온 남북관계는 민간차원에서는 정주영 회장의 소떼방북과 정부차원에서는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으로 전환기에 접어들었다. 이러한 민·관의 노력은 1998년 11월 18일 금강산관광이라는 결과물을 낳는다. 

금강산관광은 남북의 일반 주민들이 직접 만나는 ‘소통의 장’이라는 점에서 남북관계에 획기적 전환을 이뤘다. 금강산관광을 시작으로 2000년 6월,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되었으며 같은 해 8월, 남북은 개성공단 건립에 합의했다. 이후 10여 년간 남북교류협력은 비약적으로 성장한다. 

금강산관광 중단으로 통일의 꿈이 사라지다

1.jpg

▲ 가을의 금강산 ‘풍악산’ 금강산은 계절마다 이름을 가진다. 봄에는 금강산, 여름에는 봉래산, 가을에는 풍악산, 겨울에는 개골산이라고 불린다.

물론 금강산관광도 여러 번 부침을 겪었다. 2003년 대북송금 사건으로 정몽헌 회장이 투신자살하는 일이 있었고, 핵실험, 연평해전 등 정치·군사적 요인에 따른 위기도 있었다. 그러나 금강산관광은 남북의 기존합의에 따른 틀 안에서 정경분리 원칙에 따라 지속적으로 확대·발전되어 갔다. 

2003년 9월부터는 육로관광이 시작되었으며, 2004년 7월에는 금강산 당일관광, 1박 2일 관광을 시작하였고, 2008년 3월부터는 개인 승용차 관광도 가능해졌다. 그렇게 1998년부터 2008년까지 10여 년간 200여만 명의 관광객이 금강산을 다녀갔다. 분단 이후 최대의 인적·물적 교류였다. 금강산이 열리면서 개성관광, 평양관광도 열렸다. 백두산 관광 개시도 목전에 있었다.

그러나 MB정부 출범 이후 기존합의가 잇따라 파기되면서 남북관계는 뿌리째 흔들리기 시작한다. 급기야 2008년 고 박왕자씨 피살사건 이후 금강산관광은 완전히 중단되었다. 이어 2010년 5.24대북제재조치는 남북관계를 파국으로 이끈다. 

물론 금강산관광 재개를 위한 논의도 있었다. 2009년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직접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으로부터 구두로 신변 안전 보장을 받아오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는 복지부동이었다. 남측 정부가 아닌 현대그룹에 한 사과는 사과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설레는 뱃고동 소리를 안고 통일의 꿈을 활짝 열었던 금강산관광이 이렇게 7년째 중단되어있다. 

금강산관광 중단 이후 남북 정상이 두 손을 맞잡는 모습이나, 남북이 올림픽 등 국제대회에서 공동으로 입장하는 모습, 남북공동행사에서 겨레의 정을 나누는 모습까지 모조리 다 사라졌다. 남은 것은 남북의 증오와 대립, 갈등뿐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무관심, 모르쇠로 일관

2.jpg

▲ [경실련통일협회] 금강산관광 재개 그 해법은 토론회 경실련통일협회 등은 작년 4월 금강산관광 재개를 촉구하는 열린좌담회를 국회에서 개최했다.

“금강산관광은 남북관계의 하위조건이다. 남북관계에서 정경분리 원칙을 적용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현재로서는 금강산관광 재개를 위한 북한과의 실무회담 제의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 

약 1년 전, 경실련통일협회가 주최한 금강산관광 재개 토론회에서 당시 이수영 통일부 교류협력국장이 한 말이다. 금강산관광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무관심, 모르쇠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말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만 해도, 북핵실험과 개성공단 잠정중단 등으로 금강산관광 재개는 요원해 보였다.

그러나 광복 70주년과 6.15남북공동선언 15주년의 의미가 있는 올해는 상황이 달랐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북한은 정상회담도 가능하다며 남북관계 개선에 호의적이었다. 그러나 남북은 소모적 기 싸움으로 대화조차 재개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 6월 15일 북한은 여러 전제조건과 더불어 대화를 제의했으나 우리 정부는 조건 없는 대화를 강조하며 이를 일축했다. 

무엇보다 금강산관광 재개를 위한 정부의 의지나 노력은 전무한 형편이다. 특히 박 대통령은 통일대박·통일준비 등을 누차 강조하였지만 정작 금강산관광은 공식연설, 공개된 회의에서 단 한 차례도 언급조차 한 적이 없다. 

심지어 작년 8월 방한한 미국 재무부 고위당국자가 금강산관광은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와 무관하며, 한국정부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밝혔지만 우리 정부는 기존 입장을 그대로 고수하며 이를 일축했다. 또한 작년 남북경협의 다양한 사업이 망라된 제2차 남북관계발전기본계획에서도 금강산관광 재개와 관련된 부분은 제외되었다.

북한 역시 금강산관광 재개보다는 자체 활로를 모색하는 모양새이다. 2011년부터 2012년 사이 북한은 금강산관광지구를 없애고 금강산국제관광특구를 만드는 법 체제를 개정했다. 이로 인해 남측 개발업자와 관리기관의 기존 권리와 권한이 모두 소멸되고 북한 당국이 결정하는 체계로 변경되었다. 

현대아산에 최장 50년 동안 보장된 토지이용권 역시 동결되었다. 이어 북한은 ‘원산-금강산 관광지구’ 개발 계획을 바탕으로 마식령 스키장 건설 등으로 일대에 관광 사업에 외국인 투자 유치를 모색하였으나 아직 가시적 성과는 미비하다. 

애꿎은 경협기업만 피해봐
“현대아산은 상반기 내 반드시 금강산관광 재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현대그룹의 홈페이지 배너는 금강산관광 재개를 여전히 촉구하고 있다. 하루아침에 금강산관광이 중단되면서 금강산에 투자했던 애꿎은 경협기업들의 피해는 이루 말 할 수 없다. ‘금강산기업인협의회’ 자체 조사에 따르면 2013년 6월 기준으로 49개 업체가 6년간 약 5100억 원의 매출 손실을 입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대그룹의 피해와 경협기업들의 투자비용 등의 손실을 합치면 ‘조’ 단위의 피해가 추정된다.

3.jpg 
▲ 금강산관광 토지리용증 북한이 현대아산에 최장 50년간 보장해준 토지리용증


김희주 금강산기업인협의회 전 대표(레포츠라인)의 한숨 소리는 짙었다. 

“2002년 금강산에서 자전거 대여소를 오픈하고,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자전거, 퀵보드, 배드민턴, 4륜 등을 대여해주는 사업을 했다. 현지 직원도 2명 있었다. 그러나 금강산관광 중단으로 하루아침에 사업이 중단되고 몸만 빠져나왔다. 

일부 기업들은 물건을 빼오기도 했지만 당시 통일부에서는 곧 관광이 재개될 것이라고 했고, 실제 사스 등에 의해 일시적으로 관광이 정지된 적이 있어 금방 관광이 재개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게 7년이 지나버렸다. 이제는 하염없이 금강산관광 재개만 기다리는 것도 지친 상황이다.”

한반도 평화 관리에도 심각한 악영향

4.JPG
▲ 바다의 금강산 ‘해금강’ 사진 해금강 지역은 고작 300여년 전에 발견된 지역이다. 숙종 24년(1698년) 고성 군수로 있던 남택해가 찾아내고 “금강산의 얼굴빛과 같다.” 하여 해금강이라 이름 붙였다.
금강산관광은 단순 관광 사업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정치·군사적으로는 남북의 대립과 긴장을 완화시키고 남북대화의 창과 틀 역할을 했다. 예를 들어 군사항이던 장전항이 금강산관광의 크루즈항으로 이용되면서 주둔하고 있던 북한 동해함대는 후방으로 물러났다. 경제적으로도 남측의 시장경제를 북한에 전파하고, 북한경제의 개혁 개방의 학습효과를 전파하는 동시에 사회간접자본 개발로 통일비용을 줄이는 효과도 있었다. 

사회·문화적으로도 일반 주민들의 왕래로 남북의 편견과 이질감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또한 이산가족 상봉 개최 장소로 사용되면서 인도적 지원의 장으로서의 역할도 했다. 그러나 금강산관광 중단으로 남북의 정치, 경제, 사회적 교류협력은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무엇보다 금강산관광 중단 이후 우리 사회에 통일에 대한 반대와 무관심은 더 커져갔다. 특히 통일의 정서적 감동과 미래비전을 상대적으로 덜 경험하고 느껴본 20대들의 통일인식이 가장 크게 악화되었다. 

예를 들어 KBS통일의식 조사(2013년)에 따르면 “반드시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낸 20대는 15.9%에 불과했으며,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에서 발표한 ‘2014 통일의식조사’ 역시 20대의 북한정권에 대한 신뢰도는 24.8%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낮게 조사됐다. 이들이 향후 미래세대 통일담론을 주도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금강산 관광 “살려야한다”

5.JPG

▲ 금강산관광 재개 촉구 경실련통일협회 기자회견 지난 2014년 11월 14일 경실련통일협회 등 시민단체, 경협기업, 국회, 지방자치단체는 국회에서 공동으로 금강산관광 시작, 16년을 맞아 금강산관광의 조속한 재개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1983년 4월 독일에서는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과 유사한 사건이 일어났다. 서독 관광객이 동독의 국경검문소에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었다. 당시 서독은 보수정당인 기민당이 집권한 지 고작 6개월 밖에 되지 않았을 때였다. 사인을 두고도 동·서독의 주장이 엇갈렸다. 

그러나 당시 서독 수상인 헬무트 콜 총리는 MB정부와는 전혀 다른 결정을 내렸다. 콜 총리는 오히려 동독에 차관을 제공했고 동독은 이에 화답하듯 국경의 무기를 철거했다. 우발적 사고에도 불구하고 동·서독은 교류협력을 확대했고 이는 결국 독일 통일로 이어졌다.

물론 금강산관광 재개를 위해서는 우리 정부의 3대 선결조건(진상 규명, 재발 방지, 신변 안전 보장)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건 사실이다. 게다가 현재로서는 5.24조치, 북한의 관광지구내 재산동결과 몰수조치, 금강산국제관광특구법으로 전환에 따른 법·제도 문제까지 추가되어, 금강산관광 재개를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러나 정부의 의지만 있으면 이러한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 수 있다. 3대 선결조건은 현정은 회장이 북한 김정일 위원장으로부터 받아온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재확인 하는 수준에서 합의를 하고, 재산몰수와 법제도 번경은 남북이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의점을 충분히 찾아낼 수 있다. 특히 북한은 원산-금강산관광 지구의 확대·발전을 위해 금강산관광 재개의 필요성을 간간이 언급하고 있어, 정부의 의지만 있으면 의외로 원만하게 사태가 해결 될 가능성이 크다.

국제연합(UN)은 “관광은 평화로 가는 여권(Tourism is a passport to peace)” 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이제 8.15까지 2개월도 채 남지 않았고 남북관계는 중대한 기로에 서있다. 정부차원의 당국 간 대화통로가 완전히 차단된 지금, 역으로 민간 차원의 해법을 모색해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 내야한다. 광복 70년인 올해, 금강산관광으로 ‘한반도 평화로 가는 여권’이 하루빨리 발행되기를 기대해본다. 

오마이뉴스 출처 : http://omn.kr/ecj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