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이야기

보다 정의롭고 모두가 행복한 미래사회를 위해 달리는 경실련의 최근 이야기를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활동가이야기] 5년의 활동, 그리고 진행형인 고민들
2005.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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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도 비가 많은 여름이었다. 오늘도 끈적한 기운이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낼 듯 하다. 집이 ‘파주’다 보니 아침, 저녁으로 들판을 달려오는데, 벼의 빛깔이 예년 같지 않다. 지금쯤은 황금빛 색깔이 묻어나고, 고개 숙일 준비를 해야 할 때인데 말이다. 아마도 우중충한 빛깔의 하늘이 그렇지 않아도 FTA다, 농업구조조정이다 해서 맘 상한 농민의 심사를 더욱 불편하게 할 요량인 듯하다.


월간경실련의 마지막 페이지를 할애 받고 고민에 빠졌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을까? 그리고 사실 부담스럽기도 했다. 제목한번 일갈하고 커버스토리 잠시 훑고 어딘가 툭 던져지기 일쑤인 잡지, 그런 잡지의 마지막 페이지를 움켜잡고 있는 애독자라고 생각하니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 그러나 이내 곧 부담을 덜어내기로 한다. 고민해도 맛깔스런 글이 써지는 것은 아니니… 그저 5년차 시민운동가가 고민하는 것을 진솔하게 표현하고 그것을 덤덤하게 나누는 것이면 족하다는 생각에 몇 자 적어본다.


사람 냄새 흠씬 나는 시민운동을 해야한다?!


정신 없이 살다보면 자신이 일하는 본래의 목적은 종종 잊고 쳇바퀴 돌 듯 그때그때 주어진 현실에 충실하며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때가 있다. 시민운동도 예외는 아닐게다. 내게 있어 5년의 활동은 운동의 Know-how, 필요한 절차, e-mail을 받고 보내며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일에 스스로를 잘 적응시켜준 반면, 운동의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고, 어려운 이들과 진심 어린 맘으로 고통을 나누는 일에는 소홀케 하게도 했다. 때때로 안타깝고, 답답한 사회적 현실이 박제화된 활자로만 인식되고 거기에 무덤덤 하게 대응하는 내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 한켠이 무겁거나 화가 난다.


기계적으로 나열된 대안, 틀에 박힌 목소리가 아니라 고통받는 이, 소외된 이들의 삶과 고민에 가까이에서 늘 함께 하며, 구체적인 목소리, 실제로 힘이 되는 목소리를 내야 할텐데… 아마도 이것이 우리에게 아니, 적어도 나에게 요구되는 시민운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내 스스로에게 그렇게 할 것을 강요한다. 하지만 요즘,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은 것 같아 괴롭다.


시민운동가는 이슬만 먹고 살수 없다?!


시민운동가라면 누구든지, 방송이나 지면을 통해 기회 있을 때마다 ‘시민운동가는 이슬만 먹고 살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시민운동단체의 재정적인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이다. 더불어 생활인으로서 시민운동가가 겪는 어려움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백만원 안팎의 월급은 시민운동을 직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때때로 활동을 접도록 하는 요인이 된다.


물론 그렇지 않았던 경우도 있지만, 경실련과 인연을 맺은 5년 동안 60여명(중앙경실련의 전체 인원이 40명 정도)이 넘는 이들이 경실련을 떠난 이유 중 상당수가 그러하며, 이것은 결국 운동 결과의 축적, 일관성이란 측면에서 많은 것을 잃게 하였고, 비단 경실련뿐만 아니라 시민운동 전체의 발전을 더디게 하는 심각한 요소가 되어 있기도 하다.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도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시민운동가의 停年이 40대 초·중반이라는 점이다. 시민운동의 역사가 아직 그렇게 길지 않고, 많은 가능성을 가졌다는 면에서 이런 문제는 해결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지금까지 아주 어렵게 시민운동을 개척해온 소중한 인적자산이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운동을 접고 떠나야 했다는 사실이며, 특별한 대안이 마련되지 않는 한 이런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시민운동이 앞으로 내달리는 일에만 매진해오며 좌우를 살피고 뒤를 돌아보는 일에 인색했던 결과다. “자기 밥그릇은 자기가 챙겨야 한다.”라는 시민운동에 대한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했다. 이슬만 먹고 살 수 없다면 이슬이 아닌 다른 것을 마련해야 했다.


앞으로 향후 얼마간 시민운동의 가장 핵심적인 역량을 시민운동 내부로 집중되어야 할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시민운동의 외연을 다시 살피고, 소중한 인적자산이 시민운동과는 전혀 상관없는 곳으로 이탈되는 것을 막고, 보다 더 다양한 영역에서 안정된 활동으로 시민운동, 시민사회의 발전을 위해 복무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


시민운동이 지속적으로 가능하도록 하는 외곽 지원조직의 확대도 필연적이며, 시민운동가에게 실재적인 도움이 되는 재충전, 재교육의 기회도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앞서의 모든 과제는 시민운동가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지점이지만, 특히 시민운동을 하는 선배, 리더들의 집중적인 고민과 대안모색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리고 이 글을 함께 읽고 있는, 시민운동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가진 독자와 회원 분들께도 시민사회의 변화와 위상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따뜻한 충고를 아낌없이 해주실 것을 간절히 부탁, 부탁하는 바이다.


운동을 하는 개인, 아직도 풋내기 시민운동가인 ‘나’의 고민과, 시민운동·시민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커다란 장벽 – 재정 문제 등을 포함한 고민을 풀어봤다. 진행형의 고민이다. 아직 이렇다할 해결책은 없는… 다만, 풀어놓음으로 함께 나누고 대안을 모색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해보며 많은 분들의 의미 있는 반응이 이어지길 바란다.  (2003년 9월15일)


김용철 (정책실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