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EJ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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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 [김성훈 칼럼]이런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권이 또 어디 있는가
2014.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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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 한명의 아이 생명도 구해내지 못한 나라

‘대저 하늘이 땅 위에 재앙(災殃)을 내릴 때는 미리 크고 작은 조짐을 먼저 나타내 보인다.’  이를 일컬어 전조(前兆)라고 한다. 
이 전조는 무엇을 말하려는가!
올해는 새해 벽두부터 이상한 자연현상의 변조가 눈에 띄게 나타났다. 그 첫째가 이 땅의 꽃나무들이 보내온 화신(花信)이다. 지난 수백 수천년 동안 삼천리 금수강산 한반도에서는 개나리 산수유 매화꽃 벚꽃들이 1주일 터울로 피고 지고 해왔었는데 올해는 거짓말 같이 거의 동일 시점, 동일 기간에 그것도 한 열흘쯤 앞당겨 일제히 피어나고 사라졌다. 수천년 동안 수종별 개화시기가 다르고 위도(緯度)의 차이에 따라 지역별로 개화시기가 달랐는데도 올 봄에는 이상하리만치 그 구분이 불분명해졌다. 서울지역에서 더 일찍 꽃이 폈고 거의 사라진 다음에 아랫녘 남쪽 지방에 벚꽃들이 피고 있었다. 지난 4월10일에서 15일까지 필자가 진도, 완도, 담양, 고창, 서산, 양평, 춘천 일대를 여행하며 관찰한 자연변화의 이상 징조현상이다. 그리고 개화시기엔 전국의 꽃밭에 다투어 날아들던 벌들과 나비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산마다 가득 차 있던 소나무들이 확연히 줄어들고 그 빈자리에 15~30% 정도의 나무들이 벚꽃을 피우며 산 위 아래를 듬성듬성 찾아들고 있다. 벚꽃이 만개하니  수종변화의 모습이 선명히 드러났다. 가던 길을 멈추고 곰곰이 살펴보면 칡넝쿨과 외래 덩굴넝쿨들이 무성히 자라나 소나무들을 뒤덮어 고사시키고 있었다. 어떤 곳은 박래(舶來) 재선충으로 소나무들이 떼를 지어 죽어가고 있었다. 노인네들만 남아있는 오늘날의 농촌에선 아무도 산에 가서 칡뿌리를 캐는 이가 없다. 자연히 넝쿨들이 무성히 자라나 생떼 같은 소나무들만 죽이고 있는 것이다. 
해묵은 농정실패, 농업경시, 농촌소외로 급격한 이농 이촌 현상을 유발한 결과 얼토당토않게 주변의 숲, 멀쩡한 소나무들만 말라 죽게 할 줄이야. 그 놈의 WTO, FTA/TPP 등 기업자본 중심의 무방비 무대책 속전속결의 대외개방 신자유주의 정책들이 그동안 인해 농촌피폐와 산과 숲의 변태로 그리고 세월호의 비극으로까지 번져 날 줄은 미처 아무도 몰랐으리라. 
만화방창의 봄이 왔건만, 말 잘듣고 착한 그 많은 어린 꽃망울들이 어른들의 잘못으로 생명의 꽃을 못다 피우고 만인 주시리에 수장되어 갔다. 황금만능 기업 제1주의가 세월호의 침몰을 가져왔고 구조의 소홀을 초래한 것이다. 보름동안 이를 뜬 눈으로 지켜 본 그 부모와 일가친척, 5천만 겨레들은 지금 온통 비통함과 분노에 젖어 제 정신, 제 몰골을 찾지 못하고 총체적 공황상태에 빠져있다.
아아, 어찌 하늘아래 어찌 이러한 “무능한 정부”가 있으랴.
아아, “어찌 단 한명의 아이도 구해내지를 못하는가.” 
광화문 한 복판에 걸려 있는 프랑카드가 통곡하며 울부짖는 소리이다. 
“사랑하는 아들 딸아, 미안해, 정말 미안해” “대한민국이 미워요.”하는 근조(謹弔)의 울음소리들이 사고희생자 합동분향소에도 울려 퍼졌다. 
묻노니, 과연 풀뿌리 민초들에게 “정부란 무엇인가, 국가란 무엇인가.”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권을 한없이 원망하고 불신하고 있는 것이다.
단 한명의 생명도 구하지 못한 정부가 “국가 개조”를 논하다니.
갑오년 새해들어 2월17일(음력 정월 18일), 이름도 화려한 경주의 마우나오션 리조트에서 생떼 같은 대학신입생 10명을 눈덩이 지붕에 깔려 죽게 한 것이 세월호 대 참사의 전조이던가. 하늘이 내린 벌(罰)이던가. 사람들의 욕심이 불러들인 인재(人災)인가 차마 분간을 하지 못한 채, 또다시 진도의 앞바다에서 나이 어린 302명의 고교생들과 승객들의 천금 같은 생명을 바다 속에서 잃어야 했다. 하늘을 원망하랴, 사람을 원망하랴, 제도를 탓하랴 백성들은 할 말을 잃었다. 선주와 선장에게 핑계 돌리기에 요란하다. 아랫사람들에게 책임을 묻기만 하는 이 나라의 지도층들, 과연 이들이 우리나라 우리 정부를 이끌고 있다는 말인가? 
일상사가 되어버린 우리 사회 구석구석의 권력과 자본의 유착행위는 이제 그 병증마저 자각하지 못한 정도로 썩어 문드러졌다. 그것이 세월호 참사의 교훈이다. 무통증 자각증세 없는 행정은 구조작업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보름동안 연일 수백척의 선박과 항공기와 수백명의 잠수요원을 동원했다고 홍보만 무성하고 대통령 총리 장관들이 다녀갔어도 아, 단 한명의 생명도 구해내지 못하다니…
만약 그런데, 이같은 기후·자연변화와 신자유주의 정책의 이상징후가, 또는 경주의 리조트 참사사태가 하늘이 우리 인간에게 미리 나타내 보인 대 재앙에 대한 전조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 재앙의 원천부터 봉쇄할 인적 제도적 쇄신과 총체적 개혁조치들을 감당해 낼 수 있었을까? 도대체 세월호의 참사와 같은 비극을 미리 막아낼 개혁의지라도 우리 사회, 이 정권의 최고지도부 내에 존재하기나 할까.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비슷한 전조들을 제대로 읽을 수만 있었다면 그 앞서의 천안함의 비극, 서해 페리호 사건의 떼죽음을 막아낼 수 있었을까. 생각이 여기에 미칠 때 몸서리가 쳐진다. 진저리가 난다. 왜일까? 
돈과 권력의 끝없는 욕심과 마력 앞에 왜곡되고 뒤틀린 우리 정치·경제·사회구조는 그 자체가 이미 눈이 먼 기득권 지키기 집단이 되어 버렸다. 재벌, 정당, 사법부, 종교, 언론, 대학들 그 자체가 자본과 권력이고 신자유주의 탐욕의 화신이 된지 오래됐다. 외신들마저 한국은 고속 경제성장에만 급급하여 생명 중시, 안전 중시의 기본원칙을 잊어버렸다고 비아냥거리지 않는가. 1%의 많이 가진 자들의 절제 없는 탐욕과 오만, 승자독식의 사회경쟁구조, 반성과 성찰이 없는 정치지도자들, 그들이 과연 제 살을 깎는 개혁을 해낼 수 있을까. 원칙과 기본에 충실하게 사람을 살리는 정치체제로 총체적인 개혁, 이른바 박근혜 대통령이 말한 국가 개조를 해낼 수 있을까. 
시성(詩聖) 괴테는 “국민 위에 국가가 군림하지만, 국가 위에는 인간(사람)이 있다.” 고 말했다. 백성을, 민초들의 삶을 결코 우선 할 수 없는 권력과 자본(기업), 탐욕이 지배하는 이런 세상에선 자연과 인간의 삶의 조화를 이루는 경제사회환경 정의를 기할 수가 없다. 사람 살리기, 환경생태계 살리기 그리고 경제사회 정의 살리기가 잊혀지고 사라진 신자유주의적 경제개발과 성장정책만으로는 민초들의 조기 사망만을 재촉할 뿐이다. 대자연과 정의 진실 앞에 우리 인간들이 한없이 겸허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래서 괴테는 “눈물의 빵을 먹어 보지 않은 사람하고는 더불어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충고를 한다. 애지중지하던 자식을 잃고 통곡하는 부모들을 끌어안고 함께 눈물을 흘리는 그러한 지도자들을 부르고 있다. 사람이 언제나 먼저이고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 그리고 서민 대중과 민초들을 우선하는 정치이기를 원한다. 재벌과 기업 살리기는 그 다음이라는 코페르니쿠스적인 사고의 대 전환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화불단행(禍不單行)의 두려움
예부터 이르기를 화불단행이라고 했다. 재앙은 혼자 오지 않고 다른 재앙들을 끌고 온다라는 뜻이다. 엄청난 세월호의 비극 앞에서 정부와 정치인들, 행정 사법 입법부, 종교, 언론, 학교 그리고 기업 등 예외없이 우리 모두가 겸허히 잘못을 반성하고 참회하며 개혁해내야 한다. 문자 그대로 공선사후(公先私後)의 총체적인 국가 개혁 그리고 풀뿌리 백성(민초) 제1주의로 1% 기득권자 중심의 현행의 비정상을 고쳐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보다도 더 큰 재앙이 오고 또 오더라도 이를 막을 길이 없다. 국민 안전, 식량주권과 먹거리 안전, 환경생태계 보호, 토지의 공개념 실시는 모든 국민의 안전과 행복과 관련되므로 오히려 규제를 더 강화해야 한다. 청와대 국방 안보실의 작전 개념에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대낮에 석유를 활활 태워 만든 전기를 마냥 낭비하면서 에너지 부족타령을 하고 원전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원전숭배자들. 5천만 백성들의 식량창고 생명줄을 77%나  다국적 기업의 마수앞에 다 내주면서도 허황하게 경제영토를 넓혔다고 주장하는 FTA/TPP에 미친 사람들. 국내산 홀대와 저가격 고비용 체제로 해마다 제자리 낮은 농가소득에 빚 투성이로 만들어 놓고 식품산업화와 수출농업을 부르짖는 신자유주의 관료·학자들. 산과 내와 들판을 토건업자와 투기꾼, 사회 지도층들이 독차지하도록 방치하면서도 시장경제 만능주의를 구가하는 저 고귀한 고담준론들. 세금 탈세, 병역기피, 위장전입, 토지투기 등 4대 비리 경력범들이 아니고서는 장관, 법관 국회의원 등 고위 관직에 제대로 선임되지 못하는 “민나 도로보데스(모두 다 도둑놈)” 정부의 인사정책. 원전 마피아, 모피아(경제기획·재무관료 집단), 해피아(해수부·해경 집단), 특정지역 마피아에 끼지 못하면 살기 힘든 나라. 사건이 터지면 그 충격을 상쇄할 기사를 개발하라는 매뉴얼이 사태 수습 사람살리기의 매뉴얼 보다 더 우선시 되고 더 위력을 발휘하는 아아,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권력집단. 지존(至尊)을 보호하기 위해 사직서를 입도선매하는 갸륵한 총리님을 모시는 나라. 자연사랑, 숲사랑, 바다사랑, 농촌사랑 등등 말 따로 정책 따로인 거짓말 투성이 세상. 관료들의 부정부패 비리와 직결된 토건(토목건설) 세력들의 천국인 나라. 기업 살리기라는 미명하에 자행되고 있는 규제완화 일변도의 방향 착오행위들. 그것을 선도하는 허울뿐인 4·7·4 슬로건. 자동차, 전자, 조선업 등 몇몇 대기업의 사업결과에 그 크기가 좌우되는 GNP(국민총생산)라는 공허한 지표를 경제성장 정책의 바로미터(barwmeter)로 삼고 있는 나라. 아버지 정권의 치적 중 제일 잘 한일로 회자되어온 그린벨트를 과감히 풀어 헤쳐 기업하기 좋게 나라를 만들겠다는 따님의 정부 마인드. 조선업 세계 제1위를 자랑하는 나라에서 규제완화 시켜 20년 선령의 폐선 직전의 일본 고물 배를 당당히 사들여와 과적하고 객실 수를 부풀려 장사하는 ‘비지네스 프렌드리(BF)’ 정권. 한해 식용으로 190여만톤의 GMO(유전자조작) 콩과 옥수수 카놀라가 수입되어 안전성 여부를 미처 알지 못한 채 매일 먹고 있는 국민들의 건강보다도 식품대기업들의 이익지키기가 더 중요하다며 GMO 표시제를 마냥 늦추고 있는 신 비지네스 프렌드리 관계당국. 모두 다 뜯어 고쳐야 한다. 
자본과 권력의 탐욕스런 유착이 빚어낸 이 거대한 ‘원칙과 기본이 없는’ 구조적 모순을 고쳐내지 못하면 우리에겐 미래도 없고 국가적 희망도 없다. 화불단행만 초래할 뿐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짝퉁 부품으로 가동되고 있을지 모를 현재 23개의 원자력 발전소이다. 당초의 설계 수명을 넘겨 가동 중인 월성 고리 원전들, 이 지구상에서 밀집도가 가장 높고 인근에 수백만 인구가 둘러싸고 있는 이들 원전들로 인해 대한민국의 선량한 국민들은 오늘밤도 마음 편히 잠을 이루지 못한다.
“임금이 길을 잃고 헤매면, 백성들이 고달프다.”
대자연의 재앙, 사회적 국가적 재난 앞에서는 절대 왕조시대의 최고통치권자 임금님이라 할지라도 한없이 겸손하였다. 자신의 부덕함과 실정의 소치로 어린 백성들이 대신 고통 받고 도탄에 빠져 있다고 차라리 자기를 내치시라고 상제님께 소복하고 빌고 또 빌었다. 큰 가뭄을 맞아 왕의 자리까지 물리고 심지어 목숨까지 바쳐 상제님께 자기 잘못, 자기 탓이라고 빌고 또 빈 임금들이었다. 
영국의 속담에 “임금이 길을 잃고 헤매면 백성들이 고달프다.”라고 하였다. 최고 통치권자가 부하 탓, 선장 탓, 남의 탓, 전정권 탓만 하며 책임을 하방(下放) 시키면 백성들의 고통은 더 늘어나고 계속된다. 하물며 선출직인 대통령직에 이르러서야 더 말해 무엇하랴. 민생 민주 민권의 대장정에서 사람 먼저 생각하고 경제와 문화를 골고루 살리며 환경생태계 대자연과 문명도 함께 살리는, 공생 공영해 나가야할 큰 길에서 최고 통치권자가 아집과 오만, 사적 감정에 빠져 길을 잃으면 그 나라와 민초들의 운명은 불문가지(不問可知)이다. 
최고지도자의 겸허한 반성, 잘못된 정치를 올바로 고쳐나가려는 진솔함과 진정성이 참으로 그립다. 보고 싶다. 함께 동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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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 ⓒ 프레시안> 이 칼럼은 2014년 5월 2일 프레시안에 게재되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