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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 [칼럼] 느낄 수 없는 신뢰: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_김범 콕스 1기
2014.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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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낄 수 없는 신뢰: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김 범 콕스 1기 / 동국대 북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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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은 근대성의 산물이다. 근대의 모든 정치체계는 자신이 생각하는 이념의 틀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본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자유주의-보수주의-민족주의 등 대한민국 헌법은 다양한 사상과 생각을 존중하고 있고, 대다수의 국민 역시 이것을 당연한 권리로써 받아드리고 자신의 생각을 대표하는 정치인에게 투표권을 행사한다. 따라서 ‘이념적’이라는 말은 다소 ‘편향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근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유독 이념이 문제 그 자체로써 인식되고 심지어는 경멸과 싸움에 이르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바로 북한문제이다.

 

문제’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대한민국 사회는 아직까지 북한을 바라보는 시선에서부터 실질적인 행위까지 어떠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해결책은 나왔으나 서로가 제시한 해결책을 보기조차 꺼려한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념은 마치 새벽의 안개처럼 본질을 보지 못하게 하는 거대한 장막과도 같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의 행위와 그 결과를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남북관계 뿐만 아니라 분단과 첨예하게 점철되어 있는 다양한 사안들에 대해 더 나은 발전을 허락하는 유일한 길이다. 따라서 이번 1년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을 평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박근혜 정부의 출범과 동시에 주목받았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원칙과 유연성을 동시에 강조했다. 당시 국제정치 상황도 남북관계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었는데 한반도를 둘러싼 주요 국가들의 정치지형의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모든 기대는 개성공단의 중단과 북한과의 끊임없는 마찰, 그리고 이산가족 상봉 취소와 같은 사건으로 인해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이 지점에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일련의 사태에 대해 과연 적절하게 대응했는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우선 신뢰라는 단어의 어원적 의미에서 본다면, ‘신뢰’는 관계에서 시작한다. 상호 관계가 전제되지 않은 신뢰는 허구에 불과하다. 더욱이 진정한 신뢰는 단순히 경제학에서 말하는 이익의 상호 교환이라는 측면을 넘어서 이익을 초월한 지속적이고 끊임없는 관계형성 속에서 이루어진다. 결국 신뢰는 쌍방향의 대화 속에서만 자리매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신뢰 형성은 사실 말처럼 간명하지도 않으며 직접적인 결과로 나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남과 북은 수많은 사상자를 낸 전쟁을 겪었고, 이는 여전히 증오의 대상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색하면서 다루어야 하며, 불규칙적인 것과 불안전한 것도 감수해야 하고 때로는 부분적인 해답만으로도 스스로 만족해야한다. 이는 분단 60년의 세월이 우리에게 준 쉽게 아물지 않는 상처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과연 박근혜 정부는 적절한 신뢰형성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을까? 대화를 굴욕으로 치환하고 소통을 굴복으로 환언하진 않았는가?

 

그렇다면 상호 신뢰를 위해 박근혜 정부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또한 구체적 방안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우선, 박근혜 정부는 통일을 바라보는 시선을 단순한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성급한 결과주의는 조급함만을 낳는다. ‘신뢰’의 정의(定義)에 입각하여 지속적이고 끊임없는 대화와 소통의 창을 마련해야 한다. 평화를 위한 대화를 굴복과 굴욕으로 깎아내리지 말자. 이는 우리 스스로를 덫에 옭아매는 꼴이 될 수 있다. 오히려 외교 전략에선, 먼저 제시하는 쪽이 주도권을 잡을 확률이 높다고 여긴다. 

 

동시에 통일에 대한 충분한 토론 과정을 거쳐야 한다. 사실 북한 문제는 이념 그 이상의 것이 되어 일반인들이 말하기에 사뭇 꺼려하는 풍토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민주주의 체제에선 국민의 동의를 통해 정당성을 얻기 때문에 동의가 전제되어 있지 않은 정책은 독선으로 여겨지며 궁극적으로 아무런 효과를 낼 수 없다. 이는 대북 정책 기조에 있어서도 충분하고 원만한 합의와 동의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합의의 과정 속에서 통일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은 성숙될 것이며 과정으로서의 통일이 하나의 일반의지가 되었을 때 남북관계의 궁극적인 변화를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