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EJ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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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 [문화산책] 진정 당신의 청춘은 찬란한가?
2014.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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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맥긴리의 ‘청춘, 그 찬란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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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mewhere Place, 2011 ⓒ라이언 맥긴리 공식홈페이지(http://ryanmcginley.com/)

 

박지호 소비자정의센터 간사
jhpark@ccej.or.kr

 

‘청춘’이란 단어가 2012년의 ‘꼼수’라는 단어와 비슷한 느낌이 되어 가고 있다. 식상하고 지겹다. 아파야지만, 흔들려야만 청춘이라고 여러 서적에서 언론에서 청춘을 동정하고 비아냥 댄다. 스스로를 여전히 청춘이라 생각해서인지 이러한 표현에, 눈빛에 상당한 불쾌감을 느낀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청춘이란 단어를 회피하기 시작했다. 청춘은 이렇게 나에게 멀어지고 있다. 하지만 떠나가는 청춘을 잡아주는 사진들을 만나게 되었다. 바로 대림미술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라이언 맥긴리(Ryan McGinley) 사진전이다. ‘청춘, 그 찬란한 기록’이란 제목이 걸린 사진전에서 우리를 위로하고 어루만져주는 청춘은 없다. 그냥 청춘일 뿐이다. 봄이다.

 

어느 따뜻한 겨울날, 아침 일찍 종로구 통의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진전을 보기 위해서는 아니었지만, 식사를 마친 후 자연스레 대림미술관 쪽으로 향했다. 사실 기대하는 작품은 단 하나였다. 바로 ‘Somewhere Place’. 한 언론에 따르면 “미국 전역을 횡단하며 환상적인 풍경과 함께 젊음의 해방과 순수를 표현”했다는 라이언의‘Road Trips’ 시리즈 중 하나이다. 개인적으로는 끓어오르는 사회적 분노대신 사라져버린, 아니 어쩌면 숨어버린 감성을 되찾고 싶었다.

 

막상 사진 앞에 서니 모호해진다. 젊은 남녀가 형언할 수 없는 색상의 하늘을 바라보며 여자는 남자에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들여다보고 있으니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곳이 하늘인지, 그들은 웃고 있는지에 대한 판단이 서질 않는다. 설명할 수 없지만 환상, 신기루가 떠오른다. 오디오가이드에서는 그 혹은 그녀를 ‘바람이 빚어놓고 책임지지 않는 고아’라고 안내한다. 이해를 못하겠다. 하지만 그들은 뒷모습만으로도, 그녀 어깨의 점으로도 즐거움이 느껴진다. 어디를 바라보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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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ghway, 2007 ⓒ라이언 맥긴리 공식홈페이지(http://ryanmcginley.com/)

 

예술을 들여다보는 눈이 비루한지라, 다양한 시리즈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Road Trips’ 시리즈가 좋다. 특히 내 눈을 사로잡은 작품은 ‘Highway’이다.

4명의 젊은 남녀가 고속도로 가드레일을 넘어 뛰고 있다. 고속도로를 뛰는 위험천만한 모습, 갑자기 눈앞에 1996년작 영화 ‘트레인스포팅(Trainspotting)’이 떠오른다. 랜튼(이완 맥그리거 분)이 경찰을 피해 잔뜩 인상을 쓰며 뛰고 있다. 사진 속 4명의 남녀는 어떤 얼굴로 뛰고 있는 걸까?

트레인스포팅에서는 스코틀랜드의 젊은이들이 마약에 쩔어 살아간다. 사는 이유도 없다. 그저 마약을 하고 술을 마시고 싸움을 한다. 1시간 30분이라는 런닝타임동안 그들이 왜 마약을 하고 싸움을 하는지 정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얼굴 속에 즐거움이 없다. 즐거움이 없는 청춘이 트레인스포팅에는 가득하다.

라이언 맥긴리의 사진 속 청춘들은 얼굴이 보이지 않더라도, 부상을 당했더라도, 혹은 불꽃 속을 나신으로 뛰어들 때도 즐거움이 없지 않다. 있다고 확인할 수 없지만 분명 없지는 않다. 모순적이지만 이 말밖에는 할 말이 없다.

우리네 청춘이 동정당하고 무시당하고 억압받는 이유는 어쩌면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즐거움이 없는 청춘이 가득하다. 의도치 않게 놓인 경쟁이라는 상황이 얼굴에서 즐거움을 빼앗아갔다. 노량진 고시촌에서 앉을 짬이 없어 컵밥을 먹으면서 각자의 시험을 준비하는 우리들 얼굴엔 절박함만 있을 뿐, 즐거움이 있지 않다.

좀 더 많은 즐거움이 우리의 얼굴에, 우리의 청춘에 돌아왔으면 좋겠다. 좋은 시절은 오래 가지 못한다. 억지로 좋은 척 하라는 말이 아니라 지금이 좋은 시절임을 빨리 눈치 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전시장 한 켠 유희경 시인의 ‘청춘’이란 시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다음은 없다. 이것이 청춘에 대한 합당하고 유일한 정의이다.”

봄 다음엔 필연적으로 여름이 온다. 오늘날 2030세대, 우리들에게 청춘이 돌아오고 이 청춘이 찬란하다 말할 수 있는 그 날이 올까? 갑자기 방송인 김제동의 유행어가 떠오른다.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