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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 [도시칼럼] 자동차중독증(Car-holic) – 민범기 도시개혁센터 문화분과위원장

<도시칼럼>

 

자동차중독증(Car-holic)

                                                                              민범기 문화분과위원장님 사진.jpg 
                                                                                     민 범기
                                                                (도시개혁센터 문화분과위원장)

 

# 장면 1
최근 수원 화성행궁근처 행궁동 일대에는 오는 9월 한 달 동안 차량출입금지 블록을 만들고 도보로 생활하는 실험을 한다. ‘생태교통페스티벌’이 바로 그것이다. 이 사업의 일환으로 블록 사이 2차선 도로인 화서문로의 보행자 공간을 넓히기 위해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화강석 포장으로 바꾼 뒤 일방통행으로 전환해 차량공간을 다이어트하는 공사를 진행 중인데, 일부 상인과 주민들은 이를 반대 하고 있다. 일방통행으로 바꾸면 차량접근이 힘들어져 손님이 줄 것이란 걱정 때문이다.

 

# 장면 2
청계천 복원사업을 검토하던 시기에 청계고가도로를 철거해서 도로가 줄어들면 도심 교통체증이 극에 달할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고, 또 많은 사람들이 이를 이유로 사업을 반대했다. 그러나 완공 이후 다행이 걱정했던 만큼의 극심한 교통체증은 없었다. 체증을 염려한 차량들이 우회도로를 이용해 교통량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 장면 3
인사동 거리에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보행자우선 도로를 만들고자 했을 때 상점의 상인들은 이를 반대하고 나섰다. 차가 들어오지 못하면 손님이 끊기고 장사가 안 될 것이란 걱정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차량이 다니기 불편해진 그 거리에는 자동차대신 사람이 넘쳐난다.

고종황제의 포드리무진.jpg 

<그림 1> 고종황제의 포드 리무진

 

서울에 들어온 최초의 자동차

 

1903년 고종황제 즉위 40주년을 기념하여 최초의 자동차가 들어온다. 탁지부 대신이 미국 공사 알렌에게 부탁해서 수입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들어온 자동차는 포드사의 4인승 리무진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고종이 이 자동차를 애용한 것 같지는 않다. 특히 궁 밖에서 이 차를 이용했다는 기록은 없다고 한다. 그 이후 고종과 순종을 위해 2대의 자동차가 더 들어오고 1910년대에는 일본인과 고위 관리들이 자동차를 타고 다니기 시작했다. 일반인들이 도시를 달리는 자동차를 목격하는 최초의 시기가 이즈음이 아닌가 싶다.
 

당나귀가 만든 길과 대동맥

 

“당나귀는 갈지자를 그리며 걸어간다. 당나귀는 유럽 도시의 길을 만들었다. 도시에는 대동맥은 없고 모세혈관만 있게 됐다.”
위대한 건축가이자 근대도시계획의 거장 르 코르뷔제(Le Corbusier)가  1925년 발간한 ‘도시계획(Urbanisme)’이란 책에 쓴 말이다. 당나귀가 만든 길과 모세혈관은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말한다.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져 비이성적이고 비효율적이다. 마차나 차량이 들어가기에도 너무 좁다. 종종 목적지까지 도달하는데 쓸데없이 돌아가야 하는 일도 많다. 그에 반해 대동맥은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큰 길이다. 대부분 직선으로 목적지까지 쉽게 도달한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다. 마차나 자동차가 빠른 속도로 다닐 수 있을 만큼 넓고 편리하다. 이 시기에는 도시를 기능적이고 합리적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믿음이 다른 가치보다 우선했다. 새로 등장한 문명의 이기인 자동차는 무척 편리한 이동 수단이었다. 자동차 운행에 적합한 구조로 도시를 개조하는 일은 필연이었는지도 모른다.

 

르 코르뷔제의 이상도시

르 코르뷔제의 이상도시.jpg

<그림 2> 르 코르뷔제 ‘300만명을 위한 도시’ 스케치

1922년 르 코르뷔제는 ‘300만명을 위한 도시’라는 가상도시설계를 발표한다. 위 그림은 그 스케치 중 하나이다. 그가 말한 ‘대동맥’이 격자와 사선으로 서로 교차하며 도시를 가로지른다. 그런데 놀랍지 아니한가? 지금 우리가 사는 도시의 모습과 너무 닮지 않았나? 그의 예지력에 경탄을 금할 길이 없다. 아니 어쩌면 거의 한 세기 동안 대부분의 도시들은 이 그림을 닮기 위해 그토록 애썼나 보다. 이 그림을 보면 길의 주인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다. 길은 목적지까지 가장 빨리, 가장 근거리로 도달하게 하는 수단이며, 그 주인공은 바로 자동차이다.

 

모세혈관의 멸종
그로부터 약 90년이 지난 지금 그가 말했던 당나귀길, 모세혈관이 멸종되고 있다. 대규모 개발로 지워지고 대동맥을 만드느라 넓어졌다. 남아있는 길도 모두 자동차에 공간을 빼앗겼다. 사람이 주인이던 골목은 이제 차량의 눈치를 보며 경적을 울리기 전에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더 이상 아이들은 골목에서 공을 차거나 뛰놀지 않는다. 동네 어른들이 골목어귀에 두런두런 앉아서 식구얘기, 동네예기를 하는 모습도 보기 어렵게 되었다.

 

자동차 중독증
올해는 우리나라에 첫 자동차가 들어온 지 정확하게 110년 되는 해이다. 금년 3월말 자동차 등록대수가 1,900만대를 돌파했고 아직도 매년 2~3%씩 증가중이란다. 이제 우리는 자동차 특히 자가용을 끊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더 이상 우리는 장을 보기위해 장바구니를 들고 동네 앞 상점으로 걸어 나가지 않는다.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고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대형 마트로 간다. 주말 오후에는 마트 주차장 입구에 줄을 서서 10분, 20분 기다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또한 상점 주인은 상점 앞까지 차가 들어오지 않으면 영업에 타격을 줄 것이라 믿는다. 공무원들은 길을 막거나 좁아져서 차량소통이 어려워지면 교통대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불안해한다. 그뿐 아니라 집을 헐고 산을 깎아 없던 자동차 길을 자꾸 만든다. 이러한 증상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감염된 자동차 중독증 때문이라 생각한다.

 

길을 사람에게
자동차에게 길을 내주고 나니, 길은 바쁘고 위험한 공간이 되었다. 우리가 자동차중독증에서 조금 해방된다면 길에서 다시 많은 것을 찾을 수 있게 된다. 길은 어슬렁거리거나 산책하고, 뛰놀고, 쇼핑하고, 앉아서 쉬거나 추억을 만드는 장소가 된다. 사람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길에서 놀고, 이웃과 만나 인사를 나누고, 모여서 얘기하고 사람 사는 동네를 만들게 될 것이다. 길은 목적지까지 도달하는 데 필요한 공간일 뿐 아니라 삶의 장소이고 경험의 장이다.
길이 아름다우면 도시가 아름답다. 길이 편안하면 도시가 편안하다. 생각을 조금 바꾸면 된다. 길의 주인은 자동차가 아니라 사람이다. 차가 달리기보다 사람이 걷기 편하게 만들어주면 된다. 우리가 아는 아름다운 길, 편안한 길은 모두 사람이 주인인 길이 아니던가?

 

 “심오한 영감의 상태, 모든 것이 오랫동안 걷는 길 위에서 떠올랐다. 극단의 육체적 탄력과 충만감이.” 니체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