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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사법] [칼럼] 11살 아이
2019.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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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살 아이

정지웅 시민입법위원회 위원 / 변호사
wisehero@hanmail.net

 

9년 전 성탄전야에 아들이 유도분만으로 태어났다. 원래 출산예정일은 다음 해 1월 초·중순이었으나, 마침 그 즈음 아기 엄마는 의사국가고시에 응시해야 했고, 아빠는 제1회 변호사시험을 봐야 하는 등 접시 3개를 동시에 돌리는 것 같은 아슬아슬한 시기였다. 엄마는 산후조리원에서 누워서 공부하다가 시험장에 들어갔다. 그해 아빠는 변호사가, 엄마는 의사가 되었다. 8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아빠는 변호사로 여러 가지 성과를 거두고 있고, 엄마도 어엿한 대학병원 전문의가 되었다.

그해 변호사시험 합격률과 의사 국시 합격률이 50%도 안 되었더라면, 아빠는 변호사가, 엄마는 의사가 될 수 있었을까? 제1회 변호사시험 합격률(87.2%)이 높아서 변시 출신들이 실력이 부족하여 우리 사회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소식을 나는 아직 듣지 못하고 있다.

1945년 해방 당일, 조선변호사시험 응시자들은 일본의 항복방송으로 시험을 끝마치지 못했다. 이들은 응시사실만 있으면 모두 합격을 인정받았다. 1945년도에 합격증을 받았다고 알려진 106명은 이전에 시행된 전체 조선변호사시험 합격자 총수에 육박하는 규모였다. 이들 중에 판·검사도 많이 나왔고, 나중에 대법원장도 나왔다.(김두식 교수의 ‘법률가들’참고).

제8회 변호사시험 합격자 발표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마 올해도 법무부 변호사시험 관리위원회는 응시자들의 작지만 소중한 사연들을, 그들이 만들어갈 엄청난 가능성을, 우리 사회에 기여할 지대한 공헌을 그 근거도 박약한 ‘입학정원의 75% 이상’이라는 기준으로 잘라낼 것으로 예상된다.

정말로 응시인원의 75% 기준으로 뽑으면 실력 없는 법조인들이 양산되고 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피해로 돌아가는 것일까? 의사 국가고시 합격률은 90%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는데 왜 아무도 실력 없는 의사가 양산된다고 말하지 않을까?

합격률이 낮아지니 재학생 다수가 학원 인강에 몰입하고, 졸업생 200명 이상이 모여 있는 모 사설 학원이 국내 최대의 로스쿨이라는 자조 섞인 한탄이 들려온다. ‘시험에 의한 선발’이 아닌 ‘교육을 통한 법조인 양성’이라는 로스쿨 도입 취지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찾을 길이 없다. 아이를 낳았으면 잘 키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