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EJ 칼럼

보다 정의롭고 모두가 행복한 미래사회를 위해 달리는 경실련의 최근 이야기를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CCEJ 칼럼] ‘어? 데모를 하는데 법을 지켜가면서 하네?’

<경실련은 창립 20주년을 맞이하여, 경실련 역대 임원들의 인터뷰를 기획하였다.
그 다섯번째로 박종규 전 경실련 중앙위원회 의장을  7월 8일 종로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이대영 사무총장, 위정희 기획실장과 함께 만났다.>



 


 ‘어? 데모를 하는데 법을 지켜가면서 하네?’첫 번째 내가 경실련을 눈여겨 본 이유였다.


위정희| 경실련과 인연이 된 계기는 무엇인가? 



박종규| 내가 자진해서 참여 했다. 89년도에 신문을 보니 경실련이란 시민단체가 처음 생겨났고 합법적 운동을 한다고 나와 있었다. 그 점에 감명을 받았다. 당시는 87년부터 노동분쟁, 학생운동 등 길에서 데모 등 거리시위를 많이들 했던 시기였다.


하지만 그 때 경실련은 합법적인 집회를 했다. 그것에 상당히 감명을 받아서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들 모임에서 “요새 경실련이란 시민단체가 있는데, 건전하고 스마트한 단체 같다.”라고 이야기를 했고, 당시 내가 알던 교수 한 분이 서경석 경실련 사무총장을 소개해 주었다.


경실련 사무총장은 경실련을 만든 취지부터 시작해서 미국에서 공부한 얘기, 그 전에 감옥에 들어간 이야기 등을 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회비 수익으로 상근자 월급을 주기 힘들 정도로 경실련 재정이 상당히 어려운 것 같았다. 마침 수중에 가지고 있던 수표 1장이 있기에 바로 기부했다. 그 당시에는 상당히 큰돈이었다. 더구나 경실련은 기업인들한테서 돈이 들어오지도 않았을 뿐더러 기부하는 사람도 없었다.



바른 경제 동인회 – ‘노동조합은 우리의 파트너다’


위정희| 바른 경제 동인회는 어떻게 창립하게 되었나?
박종규| 그 당시, 87년도에 노동분쟁이 크게 벌어졌었다. 88년도, 올림픽 때문에 조금 주춤하다가 올림픽이 끝난 후 또 노동분쟁이 심해졌다. 어떠한 질서도 없이 한 번에 폭발할 때였다. 노,사가 치닫는 이러한 방식이 아닌 기업가가 고민할 수 있는 대안이 없나 고민했었다. 그러다가 과거의 일본도 해방 후 좌파의 노동분쟁이 굉장히 심했었다.

나는 일본이 이를 어떻게 극복해나갔는지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해서 일본의 노동분쟁을 극복한 기록이 있는 자료를 찾아봤다. 자료를 찾던 중 관심이 가는 자료를 봤는데 바로 ‘경제 동호회’라는 것이었다. 경제 동호회는 1945년 가을에 학자들, 은행가, 비누 공장 사장 등 학계와 재계의 경제에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결성된 단체이다.


 이 단체가 출범할 때의 일본은 노동조합이 생산관리 등 경영에 참여할 정도로 사회주의적 색채가 아주 강한 나라였다. 기업인들은 아예 손을 떼라는 분위기였다. 그 당시 일본은 쌀조차도 미국에서 원조 물자로 받았다. 물가도 폭등 했고, 좌익 세력이 굉장히 세져서 기업세력을 다 접수하겠다고 나섰다.


경제인들 2~30명이 모였던 그 모임은 ‘노사 관계는 파트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노동조합은 우리의 파트너다. 남이 아니다.’ 라고 이야기했다. 노사관계를 파트너십을 가지고 서로 상생하는 자세로 임하자는 제안에 노동조합 또한 달라졌다.


나는 한국도 일본의 경제동호회 같은 단체를 만들어야한다고 생각했다. 경제발전이 잘 되려면 노사 간 파트너십이 중요한 기본정신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내가 알고 있는 경제관련 정부기관 사람에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할 만한 사람 좀 추천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담당자는 지금 그런 얘기하면 빨갱이로 몰려서 자기까지 오해 받는다며 거절했다. 그래서 당시 경실련 사무총장과 상의했다. 사무총장은 아주 작은 기업들하고라도 모여서 해보자고 했다. 그렇게 처음에 30명이 모였다. 바른 경제 동인회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신용카드 소득공제 제도는 일종의 작은 혁명이었다


이대영| 회장님이 바른 경제동인회도 만드셨고, 제 기억으로 신용카드 소득공제를 도입하자고 이야기 하셨던 기억도 납니다. 


박종규| 공무원들 내부에서는 자신들이 했다고 한다. 좋은 아이디어를 냈다고 해서 공무원들, 국세청 직원들에게 상도 주었다.


이대영| 그것은 정말 회장님 아이디어로 된 것 이다. 사실 실무자들도 그 때 당시에는 효과가 있을까 했었다.


박종규| 그 제도는 일종의 작은 혁명이었다. 지금 카드 안 쓰는 사람이 어디 있나. 제도라는 게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조그마한 인센티브인데 이렇게 큰 효과를 가져 온다. 그래서 제도를 잘 만들어야 한다. 사람 의식을 변화시키니까. 물론 교육이 근본적으로 제일 중요하지만, 교육이 잘 되고 난 후에 제도를 만들자는 것은 아예 하지 말자는 것과 똑같다.


당시 생각해 보면 가까운 동기였던 국세청관계자도 이런저런 이유로 제도화되기 힘들다는 반응이었다. 여러 사람에게 이야기 해봤지만 국회에서는 통과되기 힘들다는 말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법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행정개혁시민연합 공동대표로 있을 때, 공청회와 관련하여 우연히 당시 김진표 실장과 만난 적이 있는데 내가 약 6년 동안 주장 해 오던 신용 카드 관련 건의 내용을 보여주자 자신이 해보겠다며, 자기가 꼭 해야 하는 일이라고 했다. 물론 본인이 국회의원도 아니고 장관도 아니지만, 최선을 다해서 해보겠다고 하드라. 이것이 계기가 되었고, 운도 따랐는지(웃음) 여야 간의 큰 다툼이 있었고, 그 때 무더기로 법안이 통과 되면서 신용카드 법도 함께 통과 되었다.


 


경실련 해야 할 일 아직 많아, 정부의 부채 증대, 그 빚은 우리 자녀들이 갚아야 하는 죄악이다.


위정희| 20년을 맞는 경실련에 제안하거나 사회적으로 공감대를 살만한 이슈가 있다면?


박종규| 앞으로 특히 경실련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정부 부채 문제이다. 정부 부채가 엄청나게 늘어가고 있다. 미국이 작년도 말에 69%, 일본이 202%고, 한국은 35%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과 일본에 비해서 우리 부채가 훨씬 적다” 고 자랑하듯이 말했다. 하지만 부채가 많고 적은 것이 문제가 아니다. 현재 이것은 죄악이다. 우리가 갚을 돈은 국회에서 통과시켜 버린다. 그것은 빚을 갚는 게 아니다. 하지만 나중에 우리 자손들이  갚아야 한다. 이것은 조금 극단적이긴 하지만 일종의 사기이다.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면서 부채를 늘리는 이유로는 세 가지 경우가 있다. 하나는 전쟁 때문이다. 이럴 경우에는 정부부채가 늘 수 있다. 이것은 불가피 하다. 두 번째는 불황 때문이다. 경기가 나빠지면 경기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 돈을 꿔서라도 풀어버린다.


그러면 우리가 불황을 면하게 된다. 우리가 편하기 위해서, 즉, 우리세대가 편하기 위해서 다음 후손들의 것을 미리 가불해서 쓰는 것이다. 근데 우리가 갚지는 않는다. 어느 정권 이든 다음 정권으로 넘기고, 다음 정권은 그 다음으로 또 넘긴다. 자꾸 넘기기만 하고 갚는 법이 없다. 지금까지 통계를 보면 부채가 계속 늘어나기만 한다.


게다가 지금은 독재정권이 아니다. 민주화 사회라고 해서 세금 올릴 생각을 못한다. 세금을 올려서 갚아야 하는데, 세금을 올리면 지지도가 떨어지니까, 자기 당대 국민들에게 인심 쓰기 위해 자손들의 것을 뺏어먹고 있다. 나중에는 돈 찍어내서 갚아버리고 만다. 돈을 찍어내면 인플레이션이 되고 인플레이션은 소득이 떨어지게 한다. 이것은 세금을 더 내게 만드는 간접적인 방법이다. 고통을 자손들에게 다 떠넘기는 것이다. 아이들이 앞으로 써야 할 소득을 우리가 뺏어먹는 것이다.


이것을 아무도 죄악이라고 생각조차 안 한다. 국회에서만 통과되면 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한 가지이다. 법이라는 것은 같은 세대를 규제하는 것이다. 현재의 법에서 보면 시차를 두고 여러 세대를 걸쳐서 규제하는 법이라는 것은 없었다. 즉, 태어나기 전 사람한테는 해당되지 않는다. 살아있는 사람한테만 적용되는 것이다. 이러한 평면적인 법은 앞으로 자손들이 잘 살든 못 살든 상관없게 만든다.
정부부채를 없애려면 균형 예산을 못 박아버려야 한다. 경실련에서 이 운동을 해야 한다. 균형예산을 헌법에 포함시키는 운동이다.


혜택을 받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법을 통과시키고 합법적이라고 한다. 이것은 합법이고 아니고 하는 법의 문제가 아니다. 균형예산을 헌법에 넣어야 정부가 부채에 대해서 겁을 내고  자손에게 나쁜 유산을 안 남겨준다. 자기 자손들에게만 유산을 남겨주려고 하고 자기 자손이 아니면 전부 가난하게 만들려고 한다. 제도적으로 인류의 도덕, 인륜이 없는 것이다. 이와 관련한 경실련의 연구와 대안제안이 있어야 한다. 
 




경실련, 구조적인 문제를 찾아내는 자세 필요하다.


박종규| 돈을 찍어내고 발행하는 곳(조폐국)은 어느 나라에나 분리되어 있다. 하지만 세계 각국 자본주의가 돈 찍어내는 데에는 룰이 없다. 지금 경제위기가 오는 것도 돈 찍어 내는 것과 관계가 있다. 돈을 작년도 기준으로 경제 성장률에 맞게 찍어내야 하는데 지금은 거래 이상으로 돈을 막 찍어낸다. 그저 ‘경기 활성화를 시켜야 한다.’는 말은 기업 말단 같은 얘기이다.


 돈(화폐)은 예전에 금을 맡겨놓고 얻었던 보관증이었다. 이것이 종이돈의 시발점이다. 닉슨이 1971년도에 ‘화폐를 금하고 관계없이 한다.’는 소위 금본위제를 철폐한 후에는 보관한 금은 없고 보관증만 왔다 갔다 하는 꼴이 되었다. 바로 가짜 보관증으로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된 상황에서는 금 대신 정부의 신용이 밑받침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정부가 신용을 유지하는 기준도 없고, 유지하지도 않는다. 필요할 때 아무 때나 화폐를 막 찍어낸다. 그러다 보니 화폐가치가 계속 떨어지고, 즉, 신용이 계속 떨어지는 것이다. 환율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다른 나라보다 신용이 더 떨어지면 환율은 떨어진다. 화폐 자체가 상품이 되어서 이리 몰렸다 저리 몰렸다 하니까 엄청난 폐해가 생기고 그 폐해가 실물 경기에서도 엄청난 피해를 만들어 낸다.


화폐발행에 대한 기준을 국제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기준을 만들지 않고 찍어 내는 돈은 가짜 돈과 다름없다. 정부가 화폐를 통제하지 않는 한, 앞으로 경제 위기는 계속해서 닥칠 것이다. 카지노장에서 칩이 엄청나게 많은 거랑 똑같다. 칩은 카지노 내에서만 도는 거지만 돈은 물건을 살 수 있으니 더 심각한 것이다.


경제학자들도 모두 주식 시장이 활성화 되어야 경제시장이 활발해진다고 한다. 주가가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에 정부가 왜 그렇게 관심을 가지는가. 왜 불로소득 하는 사람들한테 주가를 올리려고 그렇게 애를 쓰는가. 불로소득인 사람들한테는 그저 세금을 많이 지우면 된다. 한통속이니까 그러는 것 아닌가. 주가는 실물경제랑은 상관없이 돈이 많아서 올라가는 것뿐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실물경제는 안 좋은데 돈은 많이 풀어 놓아서 물가가 자꾸만 올라간다. 증시도 막 올라가니까 경제가 좋아진 것처럼 착각을 한다. 환상을 가지는 것이다. 이렇듯 구조적으로 개선되어야 할 의제들을 발굴, 대안을 찾아야 하는 것이 경실련의 일이다. 



 
관료주의 사회, 경쟁력은 없다


요즈음 내가 고민하는 것 중에 우리사회의 생산성과 경쟁력에 관한 부문이다. 최근 조세연구원에서 발표하는 글을 썼다. 그 내용은 ‘빅 브라더, 다시 관료주의 사회로 커지고 있다.’이다. 우리는 지금 정부 예산이 총 GDP의 25%이다. 국영기업체끼리 다 합하면 35%, 이것을 전부 다 합하면 60%이다. 즉 6할이 정부, 민간은 기껏해야 4할이다. 이것이 자본주의 사회인가. 이것은 민간사회도 아니고 관료주의 사회다. 앞으로 60%가 70% 되면 30%가 세금을 내서 70%를 먹여 살리게 된다. 4할이 6할을 먹여 살려야 하는 것이다. 걱정스럽지만 이게 무슨 시장경제인가? 기업으로 따지면 총무부가 엄청나게 큰 것이다. 이런 사회에 경쟁력이 어디 있겠는가. 우려가 크다.


경실련은 현재 상황을 여러 가지 각도에서 예리하게 분석해야 한다. 지금 물가, 집값 등이 올라가는 단면적인 부분에 있어서만 말하는 건 기업 말단적인 생각이다. 포괄적으로, 구조적으로 봐야 한다.



*약력
1935년생.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였고, 목포해양대학교에서 경영학 명예박사를 수료하였다. 대한해운공사 조선과장, 한국선주협회 부회장을 거쳐 KSS해운 사장이 되었고, 한국케미칼해운 대표이사 사장과 바른경제동인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그 이후 KSS해운 회장이 되었고 서울시 행정개혁시민연합 공동대표와 통일경제연구협회 이사장과 규제개혁위원회 공동위원장을 역임했다. 은탑산업훈장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