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EJ 칼럼

보다 정의롭고 모두가 행복한 미래사회를 위해 달리는 경실련의 최근 이야기를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CCEJ 칼럼] 나는 아직 잊지 않아요. 창립 당시 우리에게 물밀듯이 밀려들었던 소외된 이웃들의 소리를

 


변형윤 경실련 초대 공동대표



<경실련은 창립 20주년을 맞이하여, 경실련 역대 공동대표들의 인터뷰를 기획하였다.
그 첫 번째로 변형윤 경실련 초대 공동대표를 5월 29일 경복궁 앞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강철규 공동대표, 정미화 상집위원장, 양혁승 정책위원장, 위정희 기획실장과 함께 만났다.>


변형윤 전 공동대표로부터 경실련 창립에서부터 20주년이 되기까지의 감회를 들어보자.



‘경실련 창립, 정부와 재야 모두 반가워 하진 않았다’
89년 경실련 창립 시 첫 공동대표를 맡게 되었다. 사실 그때 당시 나 또한 경실련의 단체 특성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공동대표 요청을 수락했었다. 시민운동의 상이 명확치 않았던 때였다. 그래서인지 내가 경실련 초대공동대표를 맞는 다고 하니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왜 그런 것을 하느냐’며 이상하게 봤었다. 


사회의 이러한 곱지 않은 시선은 경실련 공동대표에게만 국한되진 않았다. 당시 정부담당자들 역시, 조직 안에서 ‘왜 경실련과 같은 단체와 만나는가?’라는 질문을 받는 등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고 한다.(민정당 김용환 정책의장의 말에 의하면 당시 경실련과 간담회를 준비하는데 주변에서 왜 그런걸 하냐고 물었었다고 했다.) 여당인 민정당(이후 신한국당)과 공안당국에서는 나를 만나는 것을 꺼려했던 시절이었다. 그런 일이 바로 20년 전의 일이었다.



“난 지금도 잊지 않는다.  그때 경실련 사무국을 찾았던 수 많은 소리들을”
경실련 창립 당시의 한국사회는 지금과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사회 모든 분야에 제도적으로 개혁해야할 과제들이 많았었고 특히 민생부분이 그랬다. 관심과 배려로부터 소외된 이웃, 보호받지 못하는  경제적 약자들의 한 맺힌 목소리가 들리던 때였다. 나는 지금도 잊지 않는다. 그때는 세상의 가장 밑바닥에서 소리가 다 들리고 있었으며, 그 소리를 듣는 것은 경실련뿐이었다.
경실련 존재의 필요성이 절실히 느껴졌고, 또 창립시 활동이었던 ‘토지공개념 도입’운동을 할땐 많은 시민이 우리를 지지하고 있구나 하는 감동을 느꼈다. 경실련과 같은 역할을 하는 단체는 오직 경실련 하나였기 때문에 당시 굉장한 각광과 기대를 받았다.
요샌 외부 환경이 많이 변하기도 했지만, 지금의 경실련이 그때보다 오히려 밑바닥(소외된 이웃, 경제적 약자)과 떨어져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경실련=’토지공개념’, ‘금융실명제 ‘
노태우 대통령 재임시절 정부는 토지공개념과 관련한 경실련의 정책을 수용하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자기네 입맛대로 고친 채 겉으로는 마치 경실련의 제안을 그대로 받아들인 듯 행세했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정부의 토지공개념이 경실련의 이미지만 이용한 채 실제 효과는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경실련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다. 다시 말해 단체의 가장 큰 목적은 경제정의이며 진정한 ‘경제정의’를 위해서 경실련은 사회적 약자의 배려에서도, 또 경제관련 제도의 개혁에도 큰 역할을 해야 한다. 역대 ‘경제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가장 큰 경실련사업은 ‘금융실명제’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경실련의 금융실명제 안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경실련의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사업이라 할 수 있다.


시민단체의 맏형인 경실련, 성장통을 겪다


초창기에 그 당시 소위 잘나가던 경실련은 내부적 갈등을 겪기도 했었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 진출을 위해 경실련에 참여(위원) 하겠다고 찾아왔었고 여기저기서 경실련에 후원을 하겠다고 하던 시절이었다. 그만큼 경실련이 힘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사람과 자금이 몰렸던 것 같다.  내심 당시 경실련 사무총장이 경실련의 어려운 재정상황 때문에 원칙과 기준 없이 후원금을 받았던 것 같아 크게 염려되었던 적이 있다. 사무총장은 사무국을 운영해야하는 입장에서 재정지원이 절실했던 것을 이해했지만, 나는 기업의 후원금을 받는 것이 경실련의 성격에는 안 맞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점점 단체 조직이 사회적으로 중요해 질수록 ‘특정 개인 누구 =경실련’으로 인식되어지는 것을 경계해야했다. 왜냐하면 조직 내 특정 사람 때문에 조직 전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공동대표를 그만 둘 때에 강조했던 것은 사무총장과 대표 모두 임기제로 운영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시민운동 경실련의 창립 4, 5년 후 참여연대가 나왔고, 이후 많은 환경단체들이 만들어졌다. 이땐 그러한 단체에서 활동하는 교수들이 별로 없어 경실련에 참여하는 교수들에게 함께 하자는 제안이 많이 올 정도로 경실련은 영향력이 있었고 경실련에서 일하는 것 역시 그랬다. 경실련의 전문가 대안이라는 시민운동의 ‘대안제시형 운동’의 필요성이 한국사회 시민사회를 형성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러나 오히려 경실련에 소위 돈과 힘이 몰릴 땐, 참여하는 사람들에 있어 목적의 순수성을 유지하기 힘든 부분도 있다. 당시 경실련은 이러한 불순한 목적들이 종종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이미지마저 갖게 됐다.)


그런데 지금은 그 목적의 순수성은 유지하기가 더욱 어려울 것 같다. 순수한 동기만으로 교수에게 경실련에 참여를 권하기도 어렵고, 또 그런 사람도 없는 듯하다. 요즘은 대학 교수들이 ‘권력과 자리는 없지만 국가 미래를 위하여 정책을 연구하고 제안하는 활동’보다는 ‘권력의 자리를 가지고 이름을 내는 정치참여’에 더 열심인거 같아서 안타깝기도 하다.




아무리 어려워도 정부의 지원은 받지 않는다


경실련 살림살이를 꾸려가는 것이 힘들긴 하지만 길게 보면 너무 쉽게 고액의 후원을 받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경실련에 경제학 교수가 많았지만 경실련은 항상 재정적 어려움을 겪었다. 아마도 경제학자들이 거시경제는 잘 분석할 수 있을지 몰라도 자기 가정 경제를 운영하라 하면 힘든 논리일 것이다.


경실련 존재의 목적, ‘경제정의’의 가치란?


‘경제정의’란 분배상의 정의를 뜻한다. 즉 소득분배이다. 없는 사람 입장에 서서 대변을 하자는 입장에서 단체가 시작됐다. 그러나 사회가 워낙 복잡한 구조로 얽혀있다 보니 일부 전문가나 정치인들로부터 ‘분배정의’를 추구하는 경실련을 이상하게 보는 눈빛이 있었다.


사회안전망 구축 역시 ‘분배정의’의 가치를 중요시 여기는 데서 온다고 생각한다. 경실련이 다른 단체에 비해 사회안전망 구축에 대해 확실하게 주장할 수 있는 근거도 단체의 목적이 ‘경제정의’ 즉, ‘분배정의’로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분배정의’를 가치로 걸고 활동을 시작한 단체는 경실련이 한국에서 최초이다. 없는 사람(경제적 약자, 관심과 배려의 소외된 이웃)에게 도움을 주자는 정신이다. 당시 그러한 사업을 중점으로 했던 경실련은 대중으로부터 엄청난 관심과 기대를 받을 수 있었다. 



창립 20년, 남아있는 과제


10년도 위태위태했을 텐데, 경실련은 이제 창립 20년이 아닌가?
20년을 견뎌온 것은 앞으로 흔들림 없이 갈 수 있는 세월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늘 창립당시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일한다고 하는데 그 일을 하는 주체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은 안타깝다.
 
원래 남의 주머니에 있는 돈을 달라고 하기가 참 어려운 것이다. 경실련의 안정된 재정구조를 위해선 회원확대가 최우선 과제이다.
이제 초창기 회원의 개념은 바꿔야 한다. 당시 제도적 관심과 배려에 소외된 시민들과 경제적 약자들을 경실련 회원으로 가입시켜서 시민조직으로 조직화하고자 했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문제를 자발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회원모임, 시민모임이 경실련 초창기 주요한 조직사업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회가 많이 변했고 시민들의 권리와 권익도 20년 전보다 향상되었다. 그때처럼 시민들을 조직화 할 경실련의 역할은 줄어든 듯 하다. 지금은 경실련 사업의 지지자이자 후원자로 역할을 바란다.


또, 지금 경실련은 20년 전으로 돌아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경실련만의 장기를 살려야 할 때다. 더불어 경실련의 목표는 경제정의(분배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란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이를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선 이 분야에 선두주자가 되어야한다. 물론 사업추진과정에서 다른 단체와의 연대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여러 연대만 하다보면 경실련의 독자성을 잃게 될 수도 있다. 최근 집회를 연다고 했는데(시민추도식을 말함) 필요한 연대활동은 적극적으로 하되, 늘 경실련 순수성과 독자성을 잃지 않도록 연대에의 원칙이 중요하다. 모두 잘하고 있겠지만, 내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경실련에 대한 걱정과 염려가 많이 되는 것 같다(웃음)
 
마지막으로 광범위한 목표를 세우기보다는 창립당시 정신인 ‘경제정의’에만 집중해야 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경실련은 20살이다. 이제는 대학생인 것이다. 이 세월은 우여곡절을 겪고 이제는 굳건해지는 시기가 아닌가? 아무쪼록 우리사회에서 그래도 필요한 역할을 해왔던 우리조직이 앞으로 30~40년 또 다른 세대들이 그들이 만드는 ‘정의로운 사회’를 맞이하도록 그 초석이 되어야 한다. (정리 : 노정화 커뮤니케이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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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현 변형윤 전 경실련 공동대표는

1927년 1월 6일 황해도 황주에서 출생하여 서울대 상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1955년에 서울대 상대에서 강사로 시작하여 조교수, 부교수, 교수를 거쳐, 1992년 2월에 정년퇴임하였으며, 1980년 7월부터 1984년 8월까지 신군부에 의해 강제 해직되기도 했다.

서울대 상대학장, 서울대 교수협의회 회장, 한국계량경제학회 회장, 한국경제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한국경제학술상, 다산경제학상 등을 수상했다.

1989 경실련 초대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 학술원 회원, 서울사회경제연구소 이사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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