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EJ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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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 진보적 부자는 어디에 있나

진보적 부자는 어디에 있나


홍종학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장 / 경원대 교수·경제학과


직장에서 쫓겨난 사람들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여윳돈도 별로 없는 사람들에게는 통닭집이 제격이었다. 그렇게 하나 둘씩 늘어난 통닭집은 어느새 골목을 가득 채웠다. 제 살 깎아먹기 경쟁에 뛰어들어 통닭 두 마리에 1만원을 받고 부부가 밤새도록 일해봐야 수입은 한 달에 100만원 남짓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없으면 가게 한 모퉁이에서 숙제하고 있는 아이 학교 보내기를 포기해야 한다.


처절하게 무너진 서민경제


이미 오래 전부터 서민들은 심각하게 삶을 위협받고 있었지만, 부자들은 여전히 그들만을 위한 정책을 외쳐댔다. 힘센 그들의 비위를 맞추고자 정부는 끝없이 부자지원책을 쏟아냈다.


기본 임금도 못 벌면서 자영업을 하는 이유는 더 나은 일자리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크게 증가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도 고단하기는 자영업자와 다를 바 없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감에 기본적인 권리마저 내버린 그들은 일회용 노동자에 불과하다. 교육 훈련을 지원하는 정부의 보조금은 대기업 노동자들의 몫일 뿐 그들과는 무관하다. 그들의 임금을 낮추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기업가나 정부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는 아무 관심도 없다.


그러나 임금을 낮춰 경쟁하는 방식은 성공할 수 없었다. 중국의 저임금을 도저히 상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농촌에서 끝없이 밀려오는 유휴 노동자로 인해 중국의 임금은 예상만큼 빠르게 오르지 않았다. 한편에서 재벌들은 끝없는 비용짜내기를 통해 중소기업의 자본축적과 기술개발을 막았다. 값싼 일회용 노동력일 뿐인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의존하던 중소기업이 중국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는 벅찼다.


부자들이 서민 돌봐야 상생


영세 자영업자, 비정규직 노동자, 중소기업의 몰락으로 서민들 호주머니에서 돈이 마르자 경기침체는 가속화되었다. 그런데도 서민들을 챙기기보다는 한몫 잡기에 몰두한 재벌과 부자들은 끝없는 개발을 요구하며 부동산 투기에 뛰어들었다. 돈이 없어 소비도 못하던 서민들은 다시 빚을 얻어 투기에 뛰어들어야만 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에 몰렸다. 광란의 투기가 휩쓸고 갔고 지금도 정부가 나서서 망국적 투기를 조장했지만, 지금 우리는 강남 대부분의 빌딩에 ‘임대’라는 보기 흉한 광고판이 붙어있는 모습을 목도하고 있다. 서민경제의 몰락으로 수요가 줄어든 경제에서 부자들만 잘 나갈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부자만을 외쳐대는 정부, 재벌, 부자들의 모습이 안쓰럽다.


힘센 부자들이 서민들을 돌보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경제는 붕괴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부자들이 나서서 상속세 폐지를 반대했다. 상속세 폐지 반대운동을 벌이던 빌 게이츠의 아버지는 ‘내가 돈을 벌었다’라는 것은 정확하게는 ‘내가 국가의 도움을 받아 벌은 것이다’라고 했다. 아프리카에서 태어났다면 부자가 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부자들이 과거 수많은 보통 노동자들의 노력에 보답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런 진보적 부자들이 있기에 미국의 미래는 밝다.


서민들이 다 몰락하고 나면 부자도 사라진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생산성이 높아져야 중소기업도 살고 재벌도 살게 된다. 한국경제 재도약의 유일한 희망은 진보적 부자의 출현에 있다. 그들은 어디에 있는가?


* 이 칼럼은 경향신문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