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EJ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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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 고귀한 표현의 자유를 위하여
2009.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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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갑배 변호사, 경실련 상임집행위원
 

1941년 미 블랙 판사의 말대로 “공공문제에 대하여 말하고 글 쓰는 자유는 마치 사람의 심장과 마찬가지로 사회의 생명에 중요한 것이다. 만약 그 심장이 약해진다면 그 결과는 허약일 것이다. 그것이 멈춘다면 그 결과는 곧 죽음”이다. 그래서 표현의 자유 보장은 법치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적인 과제다.


미네르바 구속·PD수첩 수사


법률신문 조사에 의하면 변호사와 법학교수 등 법률가 10명 중 6명은 현 정권 출범 이후 법치주의가 후퇴됐고, 그 가장 큰 요인으로 대통령의 독단과 독주를 꼽았다. 60%가 법치를 위협하는 요소로 사회지도층의 반법치적 행태를 들었고, 좌우 이념 대립이라는 의견은 1.5%에 불과했다. 미네르바 사건에서 보듯이 검찰에 의한 자의적 법집행은 이러한 우려를 실감케 한다. 정부가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려 하기보다 법치를 내세워 국민을 억압할 때 법은 국민을 위협하는 무기로 변한다.


검찰이 미네르바 사건에 적용한 것은 전기통신기본법상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한 자’를 처벌하는 조항이다. 이것은 허위 명의의 통신을 규제하는 조항으로 1910년대 조선총독부령으로 제정된 전신법에 규정되어 있다가 1961년 말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전기통신법에 옮겨 규정한 것이다. 검찰은 40여년간 사문화되어 있었던 조항을 꺼내어 정부정책에 관한 인터넷 글을 문제삼아 한 인터넷 논객을 체포했다. 나아가 법원은 구속영장을 발부하고, 구속적부심마저 기각했다. 이러한 법 적용의 남용은 나치시대 선동행위처벌법상 ‘국가의 안녕이나 정부, 나치당, 그 지부의 위신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허위 주장을 고의로 유포한 자’라는 조항으로 처벌한 사례와 다름없다. 그나마 유영현 판사가 미네르바 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여 나라의 위신과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살렸다.


공공문제에 대해 말하는 것을 문제 삼고 있는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검찰이 MBC 수사를 1년 가까이 진행하고 있으나 이상하고 무모해 보이기만 한다. 검찰이 문제 삼고 있는 한 흑인여성의 질병이 인간광우병이라는 의심이 든다는 보도는 그 여성이 10여년 전에 광우병에 감염된 쇠고기를 먹어서 잠복기를 거쳐 그 질병에 걸렸을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협상단 평가 자료도 아니고 미국 소가 광우병 위험성이 있다는 평가의 한 자료일 뿐이다. 보건당국이 공식적으로 원인을 발표하지 않은 시점이므로 질병의 원인을 의심할 수 있고 이것은 평가에 해당된다. 평가는 의견표명으로 보호받는다. 독일 헌법재판소가 판시하고 있듯이 취재 및 편집의 자유는 물론 그 비밀이 보장되는 것은 언론 자유의 핵심이다.

학문과 마찬가지로 언론인이 기초자료를 어떻게 선별하고 평가하여 보도를 하느냐 문제는 판단행위로서 언론 자유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다. 검찰이 기자의 취재수첩이나 테이프를 수색하고 심사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언론의 자유는 설 땅이 없게 된다. 그런데 검찰은 취재 원본을 확보한다며 MBC를 압수수색하려다 무산되기도 했고, 제작진을 체포하여 이틀간 구금하고 풀어주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할 뿐이다. 우리 시대 법치주의가 후퇴하고 있는 사례는 이 사건들만이 아니라는 데 삼각성이 있다.


법치주의 근간 흔든 대표 사례


원하는 대로 생각하고 생각한 대로 말할 자유란 민주사회의 꽃이다. 아름다운 꽃봉오리가 피기도 전에 시들어 버리도록 방관한다면 우리 사회는 희망이 없게 된다. 활기 없는 국민이야말로 자유에 대한 가장 큰 해악이다. 미네르바 사건이나 사건은 어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심장인 표현의 자유를 지켜내느냐 하는 우리 모두의 문제다.



*이 글은 2009년 5월 1일 경향신문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