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EJ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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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 루스벨트와 이명박의 뉴딜 정책

양혁승 경실련 정책위원장 (연세대 경영학 교수)


그렇지 않아도 경제 위기로 인해 심사가 복잡한 터에 이명박 정부가 밀어붙이는 제반 정책들과 법 집행, 그 과정에서 터져나오는 파열음들은 국민의 마음을 더욱 더 심란하게 한다.

가깝게는 제2 롯데월드 건축 허가, MBC 제작팀에 대한 수사, 4대강 살리기와 경인운하로 대표되는 대규모 토목공사 강행 등이 그렇고,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인명 참사를 불러온 용산 철거민 강제 진압, 종합부동산세의 무력화와 대대적인 부동산 규제 완화, 재벌들의 경제력 집중을 키우게 될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거대 산업 자본의 은행 지배를 가능케 하는 금산분리 완화 추진, 거대 산업 자본의 방송 지배와 신문·방송·겸업을 허용하기 위한 방송법 개정 추진 등이 그렇다. 경제 위기 극복을 명분으로 속도전을 외치며 정부 여당이 몰아붙여온 것들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평화를 위협하는 적, 즉 산업과 금융 분야의 독점, 투기, 분별없는 은행의 관행, 계급 간의 대립, 파벌주의, 전쟁으로 부당 이익을 챙기는 이들과 투쟁을 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정부를 자기 사업을 돕는 조력자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조직적으로 조성된 자금 위에서 세워진 정부는 조직범죄단이 만든 정부만큼 위험한 법입니다.”

이것은 뉴딜 정책으로 대공황을 극복하는 데 발군의 리더십을 발휘했던 루스벨트 대통령이 1936년 재선을 위한 대통령 선거를 하루 앞두고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행한 연설의 일부이다(폴 크루그먼의 저서 <미래를 말하다>에서 인용).


금권주의와 시장맹신주의로부터 야기된 1929년의 대공황 발생 후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루스벨트는 대공황을 치유하기 위해 위 연설문에 나와 있는 문제인식을 바탕으로 기업과 부유층에게 무거운 세금을 물리고, 노동3권 보장을 핵심 내용으로 한 노사관계법을 제정하고, 실업보험 제도를 도입하는 등 소득 불균형 해소에 초점을 맞춘 뉴딜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이러한 기틀 위에서 미국 사회는 빈부 양극화가 해소되고, 사회적 통합과 함께 중산층이 두터워졌으며, 그것을 기반으로 1950~60년대 경제적 대호황을 누릴 수 있었다.


루스벨트가 추진했던 이상의 뉴딜 정책은 현재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뉴딜 정책과 기본 철학 및 기조 면에서 크게 다르다. 시대적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평면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다고 해도 대공황과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세계적 경제 위기가 신자유주의를 앞세워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려 했던 거대 자본과 그들과 결탁한 정치 세력들의 합작품이라는 점에서는 매우 유사하기 때문에 지금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금융 위기 초래한 신자유주의 정책 왜 하나


우리가 바라는 선진 사회란 경제성장의 동력이 힘 있게 작동하고 국민이 땀 흘려 일한 만큼 대우받는 사회, 빈부의 양극화가 해소되고 두터운 중산층이 사회의 중심축을 이루는 더불어 잘사는 사회, 인권의 사각 지대가 없고 다른 나라들로부터 존경받을 수 있는 품격을 갖춘 사회일 것이다. 문제는 지금까지 이명박 정부가 추진해온 정책들과 법 집행의 내용들에 근거해 추론해볼 때 이러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국가의 품격은 어떤가? 경제 살리기라는 수단적 가치만 두드러질 뿐 경제 살리기의 궁극적 목적에 해당하는 가치는 현 정부가 내세우는 정책 속에서 찾기 힘들다. 오히려 인권이나 의사 표현의 자유 등과 같은 소중한 가치들이 경제 살리기라는 명분 하에 소홀히 취급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그에 더하여 정권의 이해를 관철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해서인지는 몰라도 인권의 보루 역할을 수행하는 인권위원회의 조직까지 축소하려 함으로써 국제적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747공약 하에 당초 자신들이 추진하고자 했던 정책들이 작금의 세계적 금융 위기를 초래한 신자유주의 정책과 맥을 같이 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평상시라면 몰라도 이미 그러한 정책의 한계가 어떤지 현실로 드러난 이상 그 근원을 치유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 


* 이 글은 시사저널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