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EJ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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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 협상의 법칙이나 비법이 존재하는가?
2008.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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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준섭(중앙대 행정학과 교수)


협상의 법칙이나 비법이 정말로 존재합니까? 협상론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사실 시중의 큰 서점에 가서 협상이란 키워드를 가지고 협상 관련 서적들을 뒤지다 보면 우선 100가지도 넘는 협상 관련 서적의 종류에 놀라게 된다. 그리고는 협상의 무슨 무슨 원칙, 전략, 비법이라고 쓰인 책들에 다시금 놀라게 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자들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훌륭한 협상가가 될 수 있는가에 관해 나름대로의 논리나 경험을 가지고 협상의 법칙이란 이름하에 다양한 협상 방법과 기술들을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법칙들은 어떠한 협상 상황에도 적용되는 만병통치약처럼 보인다. 만일 이러한 법칙들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협상을 처음 해보는 초보 협상가도 책에 적힌 법칙들만 잘 지킨다면 어떤 협상에서도 이기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거꾸로 협상에서 질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협상 법칙들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현실 속의 협상이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모든 협상은 서로 다른 모습을 띠며 정확하게 똑같은 협상이 다시 존재하기는 어렵다. 또한 가치를 창조하는 통합적 기술(integrative skill)과 자신의 몫을 주장하는 분배적 기술(distributive skill)이 뒤 섞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협상가들은 불확실성과 모호성 하에서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실제로 효과적인 협상가의 모습을 보여주기는 정말 어렵다.


그렇다면 신기루 같은 협상의 비법을 찾아 헤매기보다는 협상 준비단계에서 자신이 당면한 협상을 꼼꼼히 분석하고 준비하는 편이 보다 성공적인 협상을 위한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어떤 협상 상황에 놓여있던 모든 협상에는 공통적인 요소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협상준비단계에서 이러한 핵심 요소들을 확인하고 점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협상 체크리스트(negotiation checklist)”를 준비하는 것이다. 협상 체크리스트를 활용하여 자신에 관한 사항, 상대방에 관한 사항, 협상 구조 및 상황에 관한 사항들을 체계적으로 점검하고 분석하는 합리적 접근이 필요하다.


제일 먼저, 자신에 관한 사항들을 점검해야 한다. 우선 협상에서 어떤 의제(issue)들을 논의할 것이며, 자신의 목표치와 유보치가 무엇인지 결정해야 한다. 흔히 쟁점으로도 불리는 협상 의제가 하나인 경우와 둘 이상인 경우 협상 전략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의제가 복잡하고 많은 상황에 비해 단순하고 그 숫자가 적은 협상이 모든 당사자들에게 더 바람직할 것으로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이다. 의제의 수가 많아질수록 더 나은 협상 상황이 조성된다. 의제들이 많을수록 당사자들 사이에 의제들 간의 득실을 계산하여 “통나무 굴리기(logrolling)”와 같은 의제교환이 가능해진다. 또한 모든 협상에서 당사자들은 자신들이 성취하고자 하는 최상의 결과 즉, 목표치(target value)를 지니고 있다. 한 당사자의 협상범위(bargaining range)는 바로 자신의 유보치와 목표치 사이의 영역이다. 목표치와 함께, 자신의 유보치(reservation value)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유보치는 협상이 이루어지든 아니면 협상 테이블을 박차고 나가든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임계점으로, 일종의 협상 마지노선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협상 포기 한계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유보치는 당사자가 상대방의 제안을 수용할 수 있는 최저 한계점을 말한다.


유보치의 도출 과정에서 BATNA(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 즉 협상 이외의 대안이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도 빠뜨려서는 안 된다. 현재의 협상이 실패하는 경우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들을 준비해야 한다. 자신의 BATNA를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하면 어떤 제안을 수용할 것인지 결정하기는 쉽지 않다. 이와 함께, 상대방의 제의를 평가하기 위한 점수체계(scoring system)를 개발해야 한다.


다음으로, 상대방에 관한 사항들을 분석해야 한다. 협상의 상대방이 누구이며, 상대방의 목표치, 유보치, BATNA는 무엇인지 평가해야 한다. 협상의 대상을 흔히 상대방(opponent)이라 부른다. 보통은 상대방을 쉽게 확인할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당사자가 협상 테이블에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빈번하다. 이러한 당사자를 “숨겨진 당사자(hidden table)”라 부르며, 따라서 상대방의 배후에 숨겨진 당사자가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 중요하다. 또한 상대방이 한 명인 경우 양자 협상이 되지만, 셋 이상의 당사자가 존재하는 경우 다자 협상이 된다. 물론 후자의 경우엔 연합형성(coalition building) 전략도 고민해야 한다.


또한 첫 번째 단계에서 자신에 대해 분석을 했던 것처럼, 가능한 정확한 정보에 기초하여 상대방의 목표치, 유보치, BATNA에 대해서도 분석을 해야 한다. 이러한 분석을 토대로 협상에서 상대방에게 어떻게 첫 제의를 할 것인지, 어떤 전략으로 얼마나 양보를 할 것인지, 어떤 제안을 수용할 것인지를 미리 결정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직면하고 있는 협상의 구조와 상황을 정확히 평가해야 한다. 당사자는 자신이 처해있는 협상의 구조와 상황을 이해함으로써 협상 전략의 준비나 실제 협상의 진행에 커다란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특히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점검해야 한다. 첫째, 협상에 데드라인이 있는가? 누가 더 급한 상황인가? 둘째, 협상이 반복적인가? 셋째, 당사자간 합의가 반드시 필요한가? 넷째, 제3자 개입이 가능한가? 다섯째, 상대방을 신뢰하는가? 상대방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여섯째, 협상에서 상대방과의 권력의 차이가 중요한 문제인가? 일곱째, 어떤 방식으로 상대방과 의사소통을 할 것인가? 여덟째, 당사자가 일심동체(monolithic entity)인가? 물론 이러한 사항들이 망라적인(exhaustive) 것은 아니며, 또한 부분적으로 중첩되는 측면도 있지만 협상 상황을 이해하고 그 특성을 파악하는데 커다란 도움이 된다.


이상과 같은 협상 체크리스트를 활용하여, 자신에 대한 사항, 상대방에 대한 사항, 협상의 구조 및 상황 등에 대한 정밀한 평가를 하고 협상에 임한다면 이미 성공적인 협상의 절반을 달성한 것이나 다름없다. 모든 협상은 상이한 상황에서 상이하게 구조화되며, 따라서 모든 상황에 적용 가능한 보편타당한 협상 비법이나 전략은 존재하지 않는다. 당면한 협상이 어떤 특성을 지니고 있는가에 따라 바람직한 전략 역시 달라질 뿐이다. 철저한 준비만이 훌륭한 협상가가 되는 최선의 방법임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