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실련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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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실련이야기] [30주년 특집 인터뷰] 하성규 前 경실련도시개혁센터 대표
2019.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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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경실련 2019년 5,6월호 – 30주년 특집 인터뷰 : 하성규 前 경실련도시개혁센터 대표]

“사람이 주인이 되고,
시민이 중심이 되는 도시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성윤 회원미디어국 간사

젠트리피케이션은 이제 우리에게 더 이상 낯설지 않은 단어가 되었습니다. 여전히 세입자들의 삶은 위태롭지만, 도시개발은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30주년 기념 인터뷰는 경실련 창립 때부터 주거권 운동을 주도했고, 도시개혁센터 초대 대표이기도 했던 하성규 교수를 만나서, 우리 사회에 필요한 도시정책과 주거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 지난 5월 10일, 하성규 교수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Q. 1980년대 한국에서 생소했던 주거권, 최저주거기준 등 주거복지영역을 사회에 알리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당시에 우리 사회의 주거 현실은 어땠는지 알고 싶습니다.

A. 1982년으로 기억하는데 그때 도시재개발 중에 합동재개발이라는 것이 있었어요. 합동재개발은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오래된 동네를 완전히 철거하고, 거기에 아파트를 짓는 형태의 재개발이었어요. 서울 여러 지역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가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철거를 당했는데 이때 오래 살았던 세입자들이나 일부 집주인들이 철거반대운동을 했고, 자살도 하고, 굉장히 많은 사회적인 문제가 일어났죠. 그래서 그 당시에 유엔인권위원회에서 아무런 대안없이 가난한 사람의 주거를 강제철거하는 것은 인권에 위배된다 해서 한국의 강제철거에 대해서 여러가지 경고하는 성명도 있었고, 세미나도 있었죠. 그리고 아시아주거연합이라고 태국 방콕에 본부를 둔 단체에서도 우리나라를 방문해서 상당히 문제제기를 했고요.

1996년에 터키 이스탄불에서 유엔해비타트 회의가 있었어요. 제가 한국 민간인 대표로 갔습니다. 당시는 이미 세계적으로 ‘주거는 인권이다’라고 해서 주거권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용어였어요. 그래서 주거권에 대해서 시민사회가 여러 가지 일들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고, 경실련 운동을 하면서 주거권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들을 마련하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했죠. 그리고 최저주거기준이라고 하는 것은 주거권을 확보하기 위한 일종의 제도적 수단이라고 볼 수 있죠. 이게 무슨 이야기냐면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어떤 나라, 어떤 사람이든지, 인간으로서 최소한 갖춰야 할 주거기준이 있지 않겠느냐는 거예요. 이미 그 당시에 영국, 독일, 미국 같은 선진국에는 최저주거기준이 다 있었어요. 저는 그 당시에 우리도 선진국처럼 최저주거기준을 마련하자, 주거권을 확보하자고 해서 경실련이 앞장서서 운동을 했죠. 경실련이 그 당시에 주거권 문제에 관해서는 어느 시민단체보다도 먼저 시작했습니다.

Q. 경실련도 초창기에 세입자 운동을 하면서 주거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을 했었습니다. 당시에 경실련에 합류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A. 저는 학교에서 주거정책, 주택정책 강의를 했고요. 많은 사람들이 저한테 자문도 구했고, 세미나도 하고, 언론에서 인터뷰도 했었는데 우선 정부의 주거정책, 주택정책이라는 것이 제대로 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이것을 정부에만 맡겨서는 힘들겠다 판단했고, 시민사회단체가 이런 부분에 대해서 캠페인을 벌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많은 활동들을 했는데 그 당시에 주택법이라는 것을 만들자고 했죠. (법이 지금은 만들어졌고, 거기에 최저주거기준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런 법제정운동이나 국제기구들하고 연대를 통해 한국에 주거권의 현실에 대해서 알리는 활동을 했죠. 그 이후에 정부가 어떤 조치들을 취했냐면 세입자들을 위해 3개월 생활비를 지불한다던지, 철거당할 때 이사비용을 주게 한다던지, 일정 단지를 만들 때는 10~20%에 해당하는 임대주택을 공급하게 한다던지 하는 걸 했어요. 그런데 이런 조치들을 정부 스스로 했다기보다는 경실련을 중심으로 많은 주거권 운동을 통해서 이루어졌다고 보고 있습니다.

Q. 이후에 경실련 도시개혁센터가 만들어졌습니다. 따로 도시개혁센터를 만들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A. 경실련이 처음 생길 때 부동산 투기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 당시에 주택 투기가 심화되어 있었어요. 그래서 주거운동을 했는데 도시가 안전,주거, 교통, 환경 등 총체적으로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도시 문제를 정부에게만 맡겨놓을 수 없고, 우리가 감시도 하고, 정책적 대안도 내고, 또 시민들로 하여금 시민이 주인이 되는 그런 도시를 만들자고 하는 그런 순수한 마음에서 도시개혁센터를 창립하게 됐죠. 우리가 창립기념대회에서 앞에 내건 슬로건이 ‘시민중심 도시’, 즉 사람중심 도시였죠.

도시라는 것이 물리적인 실체고 여러 가지 구조물이 있지만, 사람이 주인이 되고, 시민이 중심이 되는 도시를 만들어야 해요. 외국에서도 이미 많은 도시들이 인간중심 도시론이라고 해서 다리를 하나 놓고, 집을 하나 짓고, 건물 하나를 지어도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의 행태나 선호, 편리함을 생각해서 도시를 만들고, 건물을 짓는데 우리는 그러지 못했어요. 시민중심 도시만들기 캠페인을 벌이면서 시민들의 참여도 많이 독려를 했죠. 그리고 도시개혁센터에서 상담센터도 만들어서 재개발지역이나 교통 및 환경문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전화를 하면 전화상담을, 방문하면 대면상담을 했죠. 또 시민들이 정보를 아는 게 중요하고, 참여해야 된다고 해서 도시대학을 만들었는데 주로 그때는 젊은 대학생들이 많이 왔어요. 도시대학에 입학을 하면 몇 주간 우리가 돌아가면서 경실련 강당에서 강의하고, 저녁 늦게까지 토론하고 그랬어요. 그런 것이 도시개혁센터의 중요한 활동영역이었고, 보람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1997년에 열린 (사)경실련도시개혁센터 창립대회 모습

Q. 도시개혁센터가 생길 무렵, 삼풍백화점 붕괴와 같은 사고들이 있었습니다. 이제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사람들에게 안전에 대한 불안은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불안이 없어지려면 어떤 정책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A. 우선 제일 중요한 게 감리예요. 어떤 건물을 짓거나 건설하거나 했을 때, 그 주체와 감독하는 기관 간의 유착이랄까, 이런 것에 제대로 원칙이 없는거죠. 그리고 원래 계획했던 대로 집행을 안한다는 것이죠. 원래 계획된 대로 시멘트도 넣고, 철근도 쓰고 해서 원칙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죠.

두 번째는 이런 업무에 종사하는 공무원들의 부패, 정직하지 못함입니다. 요새는 많이 나아졌다고 보는데 업자들하고 결탁하는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거지요. 예전에는 어떤 공사를 하면 공사실명제를 하자는 얘기도 했습니다. 이 공사를 누가 설계를 했고, 누가 감리를 했고, 감독을 누가 했는지를 공개하는 것인데 뉴욕에서 이렇게 했어요. 뉴욕에서 다리를 놓거나 건물을 지으면 거기에 참여한 인원들을 다 공개합니다.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그 사람들이 도의적 책임 뿐만 아니라, 모든 하자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합니다. 우리는 실명제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습니다.

제일 웃긴 건 그 당시에 서울시에서 길에 아스팔트 포장을 하면 사람이 편하고 안전하고 하기 위해서 하는데 심하게 이야기하면 아스팔트가 마르기도 전에 다시 또 팝니다. 그래서 가스라인, 전기선 공사를 하죠. 이런 체계적이지 못한 도시계획, 도시개발사업이 지금은 좀 나아지긴 했습니다만 예전에는 이런 것들에 대해서도 캠페인을 했었죠.

Q. 문재인 정부가 도시재생뉴딜이라는 이름으로 전국 각지에서 도시재생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 사업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고 계십니까?

A. 도시재생사업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도시는 유기체라고 하죠. 사실은 무생물이지만 도시라는 게 살아움직이는 것이거든요.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지날수록 노후화되고, 도시 내에 활동하는 산업도 구조적으로 변경이 되고, 사람도 바뀌고 해서 도시는 한 번 건설해놓으면 끝까지 가는 게 아니라, 자꾸 변합니다. 최근에 우리나라 대도시들을 중심으로 보면 도심지는 공동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고, 주로 외곽지에 신도시나 신개발지를 만들어서 도시의 불균형이 발생하고 있죠. 오래된 지역을 원도심이라 그러는데 이 지역에는 문제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래서 도시재생사업이 필요한데 도시재생을 하고자 하는 의욕이나 계획 자체는 문재인 정부가 하는 것이 맞다고 봐요. 많은 재정을 투입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찬성을 하는데, 가만히 보니까 전국적으로 획일성을 가지고 있다는 거죠. 도시마다 처한 상황이 달라서 사회적 여건이나 물리적 여건을 감안해서 맞춤형 도시재생사업을 해야되는데 그러지 못하다는 게 첫 번째 지적할 수 있는 것이죠.

두 번째는 세계 어느 나라를 봐도 도시재생이라는 것이 공공의 자금이나 정부의 힘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그게 왜 그러냐면 엄청난 자본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선진국들을 보면 정부가 주도하되, 민간의 자본과 기술을 많이 도입합니다. 우리나라는 관이 주도를 하지만 민간의 활력, 민간이 들어와서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이런 것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다고 보고 있고요. 그리고 한 가지는 우리나라만의 모형이 없습니다. 미국은 미국의 도시에 맞는 모형이 있고, 영국은 영국에 맞는 모형이 있는데 우리는 없다는 것이죠. 지금 여러 가지 것들을 하고 있지만, 한국의 진정한 도시재생의 모형이 뭔가 하는 것이 나와있질 않습니다. 저는 이런 부분을 상당히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또 문제가 되는 것은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다들 아시겠지만, 거기 오래 살았던 원주민이나 세입자들이 쫓겨나가는 그런 상황이거든요. 영국 같은 경우는 도시재생사업으로 인해서 영세한 사람들이 그 지역을 떠나서 다른 지역에 이주해서 살기는 힘이 드니까, 그 지역에 재정착할 수 있는 많은 여건들을 만들어줍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를 들어서 2층짜리 상가가 15층으로 건설되면 임대료가 확 올라버리잖아요. 그럼 방법이 없어요. 쫓겨나는 거죠. 좀 더 적극적으로 기존에 있었던 상가, 세입자, 가난한 사람, 사회취약계층까지 다시 그 지역에 안전하게 들어와서 살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만들어야 하는데 지금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썩 희망적이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을 한 번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결과적으로 도시재생사업, 도시재개발사업 이런 것들이 그 지역에 살았던 사람이 계속 살게 할 수 있다는 게 굉장히 중요한 목표가 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이게 완전히 바뀌었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어디가서 또 다른 도시코너에서 그 일을 해야 하는데 엄청난 경제적 부담을 가지게 되니까 그런 부분을 잘 살피고, 배려를 해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인데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Q. 최근에 쓰신 책 <한국인주거론>에서 “집은 삶의 보금자리인가, 고통의 뿌리인가가 이 책의 궁극적 질문이다”라고 쓰여있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최근에 주거양극화 같은 문제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제가 쓴 책이 한국인주거론인데 부제가 집이라고 하는 것이 삶의 보금자리인가 고통의 뿌리인가입니다. 이 말이 뭐냐면 집이라는 것은 원래 한 가정이 가족끼리 오순도순하고, 건강, 안전 같은 것을 확보할 수 있는 보금자리여야 하는데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삶의 보금자리가 집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지금 집이라는 것이 이재(理財)의 수단으로 전락이 되는 거예요. 특히 아파트는 삶의 보금자리라고 생각하지만 또 하나의 생각은 어떻게 하면 이것을 조금 남겨서 더 큰 평수로 가느냐, 더 좋은 동네로 이사가느냐 하는 거죠. 그건 사실 별로 나쁜 것은 아니에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갭투자라고 해서 아파트를 소위 말해서 돈버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잖아요. 어떤 사람들은 주택을 여러 채 보유해 임대소득세를 충분히 내야 하는데도 소득을 탈루하거나 안내거나 하죠. 우리나라에서 특히, 서울 같은 경우는 아파트는 이제 삶의 보금자리가 아니에요. 이재의 수단이고, 투기의 대상이고, 어떻게 보면 그것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너무나 많아요. 사실은 대한민국의 대도시 아파트는 고통의 뿌리죠. 제자들을 보면 대기업 다니는 부부가 열심히 벌면 집을 하나 살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40대 초중반 친구들을 만나면 아직 집을 못샀다는 거예요. 이게 얼마나 생활에 고통을 주는거냐는 것이죠. 외국 같은 경우에는 집을 구입하는데 경제적 부담이 커지니까 임대주택을 많이 공급해요. 우리나라에도 임대주택이 없진 않지만, 턱없이 부족해요.

이제 우리의 인구구조가 변하면서 혼자 사는 사람이 많잖아요. 1인 가구에 맞는 주택형태나 프로그램이 일찌감치 개설되고, 거기에 대해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개발되어야 하는데 아직 부족합니다. 그리고 혼자 사는 노인도 많아요. 이런 1인 가구, 빈곤 노인가구, 청년들의 주거 빈곤, 신혼부부들의 고통이 이로 말할 수 없죠. 그래서 이 책에서는 집이 삶의 보금자리여야 하는데 이재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고통의 뿌리가 되어 있다는 것을 설명했죠.

Q. 경실련이 올해로 창립 30년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경실련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먼저 시민운동이라는 것은 시민이 주체가 되어야 해요. 너무 이론적이고, 기본적인 얘기인데 시민중심, 주민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안되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 시민단체입니다. 그래서 변호사, 교수, 건축가 등 전문직종에 있는 사람이 도와주고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고 좋은데 핵심은 시민 스스로가 해야 하는 거예요. 이게 시민단체가 당면하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전문가 집단의 사람들이 시민단체에 들어가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그것을 정치적인 기반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꽤 많아요. 물론 시민단체 활동을 했다고 해서 정치를 못한다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처음부터 내가 시민을 위해서 시민단체에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정치적인 활동 기반으로 생각하면 그 동기는 불순한 거예요. 저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 찬성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주택 및 도시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운동을 하면 지속되어야 되고, 지속한다는 것은 시민이 참여해야 한다는 거예요. 시민이 참여하지 않으면 지속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끝을 봐야하는데 중간에 흐지부지 되어버려요. 경실련 운동도 대부분 그래요. 물론 완결을 보는 그런 운동도 있지만, 많은 경실련 운동이 시작은 좋은데 끝은 별로였어요. 끝까지 물고 늘어지고, 끝까지 모니터링하고 그런 부분이 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 다음에 경실련 운동이라고 하는 것이 토지, 주택부터 경제 전반까지 너무나 많잖아요. 그런데 경실련은 전지전능한 사람들이 모인 데가 아니거든요. 제한된 두뇌와 인원, 재정을 가지고 다 못합니다.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사업의 우선순위를 정하자는 거예요. 100개 사업을 나열하면 다 못하거든요. 그러나 올해는 몇 가지만 집중적으로 해서 총력을 다해서 모든 지혜와 이런 것을 다 모아서 끝까지 좀 해라 이런 식으로 사업을 했으면 좋겠어요.

결국 경실련 운동이 좀 더 확대되고, 사회적 주목을 받고, 소금이 될 수 있으려면 젊은 사람이 많아야 해요. 나이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나 여러 가지로 봐서 젊고, 사회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야 합니다. 그래서 자원봉사자를 많이 모집하는 시스템을 구축해나가면 어떻겠냐고 제안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경실련 운동이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국제적으로 연대하는 사업이에요. 환경도 그렇고, 지구온난화, 미세먼지, 황사 문제에서 우리나라의 민간외교가 할 일이 참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공동으로 대처해야 할 문제를 중국, 일본 등에 있는 단체들과 연대해서 해결하는데 경실련이 주도적으로 해나가는 이런 운동도 부탁하고 싶어요.


하성규 교수가 얘기한 인간중심의 도시를 생각해본다. 그리고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이 쫓겨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다시 돌아와서 살 수 있는 것을 먼저 생각하는 재개발을 꿈꿔본다. 정부가 도시재생사업에 예산을 쓰기 전에 문재인 대통령이 선거 때 외치던 사람이 먼저인 도시를 만드는 것을 생각하길 기대해본다. 그러면 우리가 사는 이 도시가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는 공간이 아닌 진정한 삶의 보금자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