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EJ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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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 겉만 보고 장가가기

이근식 경실련 공동대표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국회에서 그대로 비준될 것 같다. 총각이 장가가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자유무역협정 체결도 기본적으로 좋은 것이다. 그러나 아무하고나 결혼해도 좋은 것은 아니다. 잘못 결혼하면 평생 패가망신하므로 장가들기 전에 과연 좋은 배우자인지 꼼꼼히 따져보아야 한다. 특히 장인의 재산이나 외모와 같은 겉이 아니라 성격이나 건강과 같은 속을 따져보아야 한다. 요즘 한·미 FTA를 서두르는 우리나라를 보면 번지르르한 겉만 보고 혹해서 속도 안 보고 결혼을 서두르는 정신나간 총각 같다.


이 협정의 속을 보면 걱정스러운 점이 많다. 무역협정이라는 이름과 달리 이 협정은 통상만이 아니라 서비스, 통관절차, 투자, 위생검역, 지적재산권, 경쟁, 노동, 환경 등 경제 전반에 걸친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이 협정 체결은 ‘새로운 경제헌법’을 제정하는 것과 같다. 내용이 포괄적이므로 이 협정이 발효되면 우리의 경제생활 전체가 크게 변모하게 될 것이다.


우려되는 몇 가지를 보자. 첫째는 ‘투자자-국가 제소 제도’이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미국 투자자는 우리 정부의 조치로 인해 자신이 피해를 보았다고 생각하면 피해보상을 우리 정부에 청구하는 소송을 국제중재기구에 제소할 수 있다.

이 협정에 정당한 공공복지를 위한 경우는 제소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예외규정이 있으니 걱정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당한 공공복지의 구체적 내용이 명확하지 않다. 실제로 미국 기업이 멕시코 정부를 제소했을 때 재판부가 멕시코 정부에 1억6000만 달러의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하면서 “본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환경보호조치와 같은 동기는 고려할 필요가 없고 오로지 투자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만 고려할 뿐”이라고 판시했다.


‘비위반 제소 제도’는 더 애매하다. 이 제도에 의하면 우리 정부의 조치가 협정을 위반하지 않았더라도 이 조치로 인해 미국 투자자가 합리적인 기대이익을 침해받았다고 생각하면 우리 정부에 배상 청구를 요구하는 소송을 국제기구에 제소할 수 있다. 합리적 기대이익의 산정은 정말 애매한 문제다. WTO에도 이 제도가 있으나 남용을 막기 위해 피해 입증의 의무를 제소자에게 부여하고 있다. 반면에 한·미 FTA에는 제소자가 자신의 피해를 입증할 의무가 없다.


이것만이 아니라 이 협정에는 우리의 경제주권을 침해할 소지가 많은 조항이 여럿 있으며 약값, 의료체계, 유전자 식품, 쇠고기, 근로자, 자영업자, 중소기업, 공기업, 서비스산업, 에너지산업, 방송, 문화예술 등 국민생활과 국가경제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다.

외국의 경제구조 전반을 미국에 맞출 것을 요구하면서 약자 보호에 대한 배려 조항이 전혀 없는 것이 미국식 FTA의 특징이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미국과 FTA 협정을 체결한 나라는 아주 작은 소국 몇 나라와 캐나다·멕시코·호주 정도뿐이다. 그나마 호주는 ‘투자자-국가 제소 제도’를 빼고 체결했다.


상품 수출의 증가와 같이 이 협정으로 우리가 이익을 얻는 부분도 있다. 문제는 국책연구소 보고서는 있지만 이 협정의 손익에 관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검토가 아직 우리나라에 없다는 것이다. 이 협정을 비준할 우리 국회도 이 협정을 제대로 검토한 적이 없다. 나중에 국민들과 정부가 큰 피해를 볼 때에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대선도 끝났으니 모두들 정신 차리고 지금부터라도 학계·시민단체·국회·정부가 모두 참여하는 국민대토론을 시작하자. 이 협정에는 한 번 개방한 것은 다시 취소할 수 없다는 ‘역진방지 조항’도 있어 한 번 실시한 것은 고칠 수도 없으니 더욱 신중해야 한다. 경제헌법을 다시 쓰려면 국민들에게 그 내용을 잘 알리고 동의를 얻어야 할 것이다. 나중에 우리의 경제주권을 팔아먹었다고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


이 글은 중앙일보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