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EJ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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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 인수위원회의 과속을 경계한다

새양혁승 경실련 정책위원장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이명박 정부의 출범을 준비하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의욕이 대단하다. 공휴일도 잊은 채 정부 각 부처의 업무보고를 강행하면서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언론의 조명을 받을 만한 굵직굵직한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와 같은 인수위원회의 의욕적인 활동상이 현 노무현정부에 대해 체질적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그 동안 묵혀있던 체증을 뻥 뚫어주는 역할을 할지 모른다. 그리고 10년 동안 정권교체를 벼르고 벼려왔던 사람들에게는 치열한 전투에서 승리한 점령군의 기분을 만끽하게 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인수위원회는 지금까지의 자체 활동을 되돌아보고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 인수위원회 내부에 있는 사람들은 그 동안 자신들이 밟은 가속페달의 속도감을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외부에서 보는 사람들은 과속경계선을 넘어섰다는 느낌을 갖기에 충분했다. 각 부처업무의 현황파악과 선거기간 중 내세웠던 공약들의 실현가능성을 차분하게 따져볼 시간여유도 갖지 않은 채 설익은 정책들을 성급하게 발표하거나, 현 정부의 팔을 비틀어서라도 유류세와 통신비를 낮춤으로써 새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치를 채우려는 과욕을 부렸다.


종합부동산세의 과표 상향조정, 1가구 1주택 장기보유자 양도소득세 완화, 금융 소외자 지원 및 신불자 연체기록 삭제, 휴대폰 요금 및 유류세 인하, 기초연금 및 국민연금 통합, 대학입시 자율권 부여, 특별검사 상설화 등이 발표 후 번복 내지 유보과정을 거치며 혼선을 야기한 대표적 정책들이다. 어디 그 뿐인가? 한반도 대운하 건설 등과 같은 대규모 국책사업은 국민들의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하며 추진해야 할 사안임에도 한나라당 내에서조차 충분한 공감대를 얻지 못한 상태에서 서둘러 추진하려는 집착을 보였다.


제한속도 경계선을 넘더라도 가속페달을 밟아야 한다는 인수위원회의 조급한 마음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국민들로 하여금 준비된 수권 세력임을 실감하게 해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을 것이고, 정권 초기에 밀어붙이지 않으면 변화추진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새 정부가 출범하기 전에 정책을 확정함으로써 출범과 함께 곧바로 해당 정책을 밀어붙여야 한다는 시간적 압박감을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부담감이 그 동안 인수위원회가 보여준 혼란상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인수위원회는 조기에 새 정부가 추진할 정책들을 발표함으로써 준비된 대통령과 집권 세력임을 보여주기 원했을지 모르지만, 공약실행의 시의성 및 정책효과 등에 대한 정밀한 검토작업도 하기 전에 정책들을 쏟아냈다가 그 부작용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드러나면 그 정책들을 철회하거나 유보하는 듯한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준비가 덜 되어 있음을 드러낸 셈이 되었다.


또한 고압적인 자세로 업무를 보고하는 공무원들을 질책하고 특정한 정책을 강요하는 듯한 자세를 보임으로써 프로패셔널리즘을 기대했던 국민들에게 아마추어리즘 수준의 관리능력을 보여주었다. 인수위원회의 이러한 행태가 지속된다면 새로 들어설 이명박 정부의 정밀한 정책기획 및 집행 능력에 대한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인수위원회에 몇 가지를 제언하고자 한다. 첫째, 인수위원회가 정권교체를 실감나게 하는 차원의 역할은 내려놓고 정확한 현황파악을 바탕으로 새 정부가 추진할 정책의 우선순위와 정책추진의 로드맵을 정밀하게 다듬고 새 정부 출범 전에 구축해야 할 필수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상의 업무는 큰 소리를 내면서 진행할 일이라기보다는 조용하게 이루어질 일들이다.


둘째, 새 정부가 추진할 정책들을 선정하고 다듬는 과정에서 선거공약으로 내세웠던 정책들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될 것이다. 국민이 이명박 당선인을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한 것을 그의 선거공약에 포함된 세부 정책들에 대해 국민이 승인한 것으로 확대해석해서는 안 된다. 선거기간 중 내세웠던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는 것은 필요하나, 그렇다고 특정 공약의 타당성에 대해 많은 의문이 제기됨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그 공약에 집착하는 것은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셋째, 새 정부의 정책이 현 정부의 정책과 반드시 차별화되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에서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 선거과정에서는 보다 많은 유권자의 표를 확보하기 위해 현 정부의 정책과 크게 차별화된 정책을 내세워야 할 필요성이 컸을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정권을 확보했다. 차기 대통령으로 확정된 이명박 당선인에게 국민이 기대하는 바는 국민통합을 이루고 국민의 공감대를 형뵉莫「庸?경제활성화에 기여하는 정책들을 안정되게 추진해달라는 것이다.


국민이 이명박 당선인과 한나라당에게 기회를 준 것은 현 집권세력보다 더 잘하라고 준 것이지, 현 집권세력을 부정하라고 준 것은 아니다. 물론 더 잘하기 위해 현 정부의 정책을 부정해야 할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시의성 있는 정책목표를 명확히 설정하고 그 정책목표를 달성하는데 있어서 가장 효과적인 정책수단을 채택하여 정밀하게 시행하는 것이다.


이명박 차기정부가 ‘흑묘백묘론’으로 상징되는 실용성을 지향한다면 현 정부의 정책효과를 평가하여 좋은 것은 유지하고 보다 더 나은 정책수단이 있다면 그것으로 바꿔나가는 유연성을 보여주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기업친화적 정책과 재벌친화적 정책을 동일시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명박 당선인은 경제에 대해 일가견을 가지고 있으리라는 기대를 국민에게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7, 80년대 재벌중심의 불균형성장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친재벌적 성향의 소유자라는 우려를 갖게 하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우려는 이명박 당선인의 당선 후 행보와 인수위원회가 추진하려는 정책에 의해 점차 표면화되고 있다.


기업의 투자를 활성화함으로써 경제성장률을 높이고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데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차원에서 기업친화적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기업친화적 정책추진의 필요성이 곧 불법과 탈법을 자행하는 기업과 그 소유주에게 면죄부를 발행해도 좋다는 얘기는 아니다. 또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 곧 재벌기업의 문어발식 확장과 독점적 시장지위 남용까지 용인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서도 안 된다.


기업친화적 정책을 앞세워 추진하는 정책이 주로 대기업집단의 이해를 반영하는 결과로 귀결되고 그로 인해 경제력집중이 심화되어 중소기업과 중견기업들에게 시장진입장벽을 형성하거나 시장의 건강한 경쟁질서를 해치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그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을 뿐 아니라, 기업친화적 정책이라고 볼 수도 없다.


겸손한 자세로 국민을 섬기겠다는 이명박 당선인의 초심이 끝까지 지켜지기를 바란다. 우리 국민은 독선적이거나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남용하여 사익을 추구하는데 이용한 집권세력에 대해서는 반드시 심판해왔다.



이 글은 시사저널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