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EJ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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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 2차 남북정상회담, 의제와 과제

김근식 경실련통일협회 정책위원장(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제 2차 남북정상회담의 의제를 전망하느라 바쁘다. 더 이상 정상회담 개최를 놓고 추진과정과 경위 그리고 정치적 의도 등을 놓고 설왕설래하는 건 소모적이다. 오히려 정상회담을 여하히 성공적이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준비하느냐가 보다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의제를 제대로 설정하고 이에 대한 올바른 대책을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실 남북정상회담의 의제는 이번 회담이 갖는 의미와 연관 지어 생각해야 한다. 부여된 의미를 가장 정확히 살려내는 의제 설정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1차와 비교할 때 2차 남북정상회담은 몇 가지 특징적인 의미로 자리매김 된다.


회담 자체의 형식논리와 관련해서는 이번 정상회담이 향후 회담의 정례화의 계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또 이번 정상회담은 1차 때와 달리 북핵문제가 진행 중이고 특히 2.13 프로세스가 진전되고 있는 국면에서 개최되기 때문에 적어도 비핵화와 관련해 우리의 주도권을 확보해야 하는 객관적 의미를 부여받고 있다. 더불어 비핵화 과정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가 예상되는 시점이므로 이번 정상회담 역시 한반도 평화체제의 실질적 당사자이자 책임자로서 남북이 평화문제에 대한 유의미한 합의도출을 요구받고 있다.


즉 1차 정상회담과 달리 이번 회담은 단순히 남북관계에만 집중할 수 없는 객관적 환경 때문에 반드시 비핵화와 평화문제에 관해 6자회담이라는 국제구도에 부응하고 이를 더욱 추동해내는 남북의 주도적 개입력을 확보해야 한다.


물론 남북 정상의 고유한 영역인 남북관계 자체의 진전을 이루어야 하는 역사적 의미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객관적으로도 지금은 남북관계가 새로운 계기를 통해 한 번 더 질적으로 업그레이드되어야 함을 요구받고 있다. 2000년 정상회담 이후 지금까지 남북관계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고 상상할 수 없는 변화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7년이 지나면서 남북관계는 일정한 정체국면을 맞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 들어 남북관계는 군사분야의 진전 없이 한 발짝도 나가기 힘든 구조적 제약 상황을 맞고 있다. 지속되고 있는 경협과 사회문화 교류 등을 보장하고 확대하기 위해 이제 정치군사 분야의 진전이 담보되어야 한다. 철도도로 연결을 위해서도, 개성공단 확대를 위해서도, 금강산 사업 발전을 위해서도 남북간 군사적 협력 없이는 한발도 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제는 경제 사회문화 분야와 정치 군사 분야가 병행해서 남북관계의 두 바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정치 군사 분야의 진전을 이루기가 녹록치 않다. 이미 북한은 2005년부터 이른바 ‘근본문제’를 제기하면서 남북간 정치·군사적 진전을 요구하고 있다. 서해 해상경계선 재설정 문제를 필두로 한미 군사훈련 중지, 참관지 제한 철폐, 국가보안법 폐지 등을 내세우며 최소한 이들 문제가 진전되어야 상호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남측은 아직 이들 근본문제에 대한 완강한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NLL은 국경선으로 인식되고 있고 한미 군사훈련 역시 한미동맹과 동일시되고 있다. 참관지 제한 철폐 역시 남북의 체제속성상 남측이 받기 힘든 정치적 부담이 존재한다. 국가보안법은 국회에서 해결해야 하지만 여전히 국회의 다수는 폐지불가 입장이다.


결국 ‘지속과 정체’라는 현재 남북관계의 교착국면을 이번 정상회담이 돌파해내는 창조적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이번 정상회담이 새로운 단계의 남북관계, 질적으로 진전된 남북관계를 시작 해야 하는 디딤돌 역할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의미로부터 자연스럽게 이번 회담의 예상 의제로는 정례화 문제, 비핵화와 평화체제 문제, 남북관계 진전 등이 도출된다. 그러나 정상회담 개최에 대해 대다수의 국민들이 찬성하고 기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진영에서는 여전히 의혹의 눈초리와 함께 기대보다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정상회담의 대가로 북에 엄청난 경제지원을 준비하고 있다는 주장 역시 퍼주기 이미지를 강화함으로써 정상회담을 흠집 내려는 의도가 강해 보인다. 잘 알려진 것처럼 1차 정상회담 당시 대북 송금 문제가 불거지면서 우리는 특검이라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물론 당시 보내진 돈의 대부분이 북이 독점권을 보장한 현대의 대북 사업 계약금 성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금 과정의 문제로 인해 정상회담의 성과가 적잖이 상처받아야 했다. 대북송금 문제는 역으로 다시는 정상회담을 통해 북에 대가가 지불될 수 없다는 구조적 원칙을 세운 셈이 되었다.


따라서 이번 2차 정상회담 대가로 정부가 북에 자금을 줄 수 없음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이를 트집 잡지 못하자 이제는 돈 대신 각종의 경제협력 프로젝트를 제공할 것이 라며 퍼주기 논란을 재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언론에서 제기하는 대북 경협 확대는 정확히 이야기하면 정상회담의 ‘대가’가 아니라 정상회담의 ‘결과’이다. 정상회담이 당연히 남북관계의 진전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고 이는 곧 상호 윈윈의 경협 확대로 이어진다.


정부가 준비하고 있는 경협 신동력 사업이나 포괄적인 경협 계획 등도 남북관계의 진전에 따른 경협 확대 구상이다. 이는 북에 정상회담 대가로 돈을 갖다 주는 것이 아니라 남북관계 발전에 따른 정상회담의 정상적 결과인 것이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결코 양보하지 말라며 강경한 원칙과 입장을 미리 주문하는 것도 사실 우리 정부의 대북 협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에 다름 아니다. 북한의 무리한 요구에 결코 화답하지도 수용하지도 않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협상 가능한 의제까지도 양보 불가를 넘어 ‘의제화 불가’를 강요하는 것은 남북 정상이 만나 악수하는 것 외엔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의 협상력을 제한하는 손발 묶기인 것이다.


북한의 통일방안 의제화나 금수산 기념궁전 참관 요구 등은 당연히 우리로서 거부해야 할 사안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와 관련한 다양한 이슈들을 아예 논의조차 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 사실 정상회담에서 북한은 무조건 우리에게 양보해야 하고 우리는 결코 하나도 양보해서는 안 된다는 비상식적인 주문일 뿐이고 이는 곧 회담의 성공을 훼방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번 정상회담이 6자회담과 2.13 프로세스의 중간에 위치한 만큼 가장 우선적인 의제로 비핵화가 다뤄져야 함은 불문가지이다. 북한의 핵포기 의지와 9.19 공동성명 및 2.13 합의의 이행 의지를 명확히 받아내야 한다. 일부에서는 핵문제와 관련된 높은 수준의 북한 양보를 반드시 얻어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과도한 요구이다. 이미 북핵문제는 6자회담이라는 다자의 틀과 최근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북미 양자협상이 주된 해결 통로이기 때문에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핵문제에 대한 북측의 전략적 결단을 요구하고 이를 받아내는 정도가 아마 최대치가 될 것이다. 소망스럽기는 합의문 안에 핵포기에 대한 김정일 위원장의 확고한 의지가 명시되는 것이고 그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온 세계 언론이 지켜보는 가운데 김정일 위원장의 육성으로 비핵화와 핵포기에 대한 명확한 의지를 확인해주는 정도가 필요하다.


동시에 한반도 평화와 관련한 남북 정상의 의미 있는 합의도출이 이뤄져야 한다. 이미 비핵화 과정과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가 맞물려 가는 상황에서 한반도 평화의 당사자이자 책임자인 남과 북의 정상이 평화 정착에 관한 의지를 확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는 지금까지 진행된 남북관계를 한 단계 뛰어넘는 필요조건이면서 동시에 평화체제 논의과정에 우리의 주도권과 개입력을 확보하는 단초이기도 하다.


이번 회담에 상호 불가침과 무력사용 포기 및 군사적 신뢰구축 의지를 확인하고 향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데 남북이 협력하기로 하는 이른바 ‘평화선언’을 합의하는 것은 남북관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고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를 가속화할 수 있는 중요한 토대가 될 것이다.


또한 정체상태에 놓인 남북관계를 새롭게 추동해내고 질적으로 한 단계 발전시키기 위해 창조적이고 포괄적인 논의도 필요하다. 남북관계 진전을 위해서는 상호 쟁점에 대한 전향적 접근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여기엔 북이 주장하는 군사분야의 근본문제 즉 NLL 이나 합동군사훈련 문제 등도 논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평화를 위한 군사적 신뢰구축과 남북관계의 진전을 위해, 그리고 확대발전하는 남북경협의 군사적 보장을 위해 NLL 등에 대한 전향적 논의는 불가피하다. 물론 우리가 관할하고 있는 해상경계선의 인정을 전제로 협상을 위한 협의를 시작하는 방식이어야 하고 이것이 사실은 기본합의서의 관할구역 인정과 재협상을 동시에 충족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의 전향적 접근은 역으로 우리가 반드시 얻어내야 할 쟁점에 대해 북한의 유연한 양보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미 공론화되어 있는 국군포로 납북자 문제에 대한 북한의 전향적 태도를 요구하고 이산가족 문제 등 인도적 이슈에 대해서도 북한의 긍정적 화답을 얻어내야 한다. 남과 북 모두 이제는 서로 양보하기 힘든 사안들을 상호주의 입장에서 타협해내고 향후 남북관계의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즉 북이 요구하는 ‘근본문제’와 남이 제기하는 ‘대북 근본문제’ 사이의 접점을 찾아 이를 해결해야만 지금 정체되고 있는 남북관계를 한 단계 높게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토대로 경협 등 남북관계의 실질적 진전 방안이 활발하게 논의될 것이다. 더불어 남북관계의 발전을 위해 정상회담의 정례화를 이뤄내는 것도 중요하다. 한 번의 만남이었다면 일회성에 그치지만 이제 김대중 정부에 이어 노무현 정부도 정상회담을 개최함으로써 회담의 정례화를 촉진해야 한다. 그리고 남북간 최고위급 대화채널인 정상회담이 정례화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남북관계의 제도적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정상회담 발표 이후 특이한 점은 1차 때와 다른 차분함이다. 회담을 준비하는 정부도 그렇고 이를 대하는 국민들 역시 흥분과 감격보다는 진지함 속에 구체적 성과를 바라는 분위기다. 오히려 소란스러운 곳은 정치권이다. 여권은 정상회담 개최를 적극 환영하는 반면 한나라당에서는 정치적 깜짝쇼라며 경계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상회담을 반대하는 측의 논리를 무조건 비난만 할 게 아니라 제기되는 우려를 최대한 불식시키려는 적극적 노력이다. 야당이 불안해하는 정치적 활용 가능성을 철저히 차단하고 그 어느 때보다 엄격한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국민 모두가 공감하는 초당적 협조를 얻을 수 있도록 정부는 만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야당 역시 ‘좋은’ 정상회담이 되도록 적극 협력하고 요구해야 한다. 그래야 정상회담이 더욱 빛을 낼 수 있다.


* 이 글은 미래전략연구원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