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EJ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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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 FTA 협정문 꼼꼼히 따져보자

김종걸 경실련 한미FTA 평가검증단 단장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사가(私家)의 처녀가 시집가는데도 이것저것 따지게 마련이다. 신랑 될 사람은 건실한지, 가족은 모두 찬성하는지, 아무리 좋은 신랑감이라고 강조해도 처녀의 불안은 계속된다. 한·미 FTA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바로 이 처녀와 다르지 않다. 그것은 단순한 미국과의 ‘교제’가 아닌 경제적 ‘결혼’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결혼을 성사시키려는 아버지(정부)의 논리는 단순, 명쾌하다. 한국경제는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 세계 최대 최고 시장인 미국으로의 진출이 필요하다. 미국식 경제제도의 도입은 우리 경제 선진화로 귀결된다. 여기에 전가의 보도(寶刀) 한·미동맹 강화론까지 끼어들면 이것은 총체적 국가 업그레이드 전략으로 부각된다.


그런데 또 다른 소문도 들린다. 미국시장 진출은 별로 기대할 것이 없다. 국내 시장은 미국 기업에 잠식된다. 서민생활은 더욱 어려워진다. 약값은 천정부지로 뛴다. 따라서 아파도 병원 근처에도 못 간다. 미국형 FTA만이 글로벌 스탠더드는 아니다. 더구나 동아시아의 안정적 협력에도 방해가 된다.


다행한 것은 그 동안 말만 무성하던 결혼조건(협정문)이 공개된 것이다. 이제 미지의 땅 앞에 선 처녀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열린 마음으로 찬성과 반대를 넘어 그 효과를 일일이 따져보는 것이다. 최대의 혜택산업이라고 일컬어지는 자동차의 경우 스냅백 조항의 의미 파악이 중요하다. 이것은 협정을 위반했을 때 특혜관세 이전으로 환원시키는 조치다. 또한 발동요건으로 ‘기대이익의 무효화 및 침해’로 되어 있으나 개념 자체가 모호하다는 점에서 오남용의 여지는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또 다른 대표적 특혜산업인 섬유의 경우 미국특유의 원산지규정, 즉 실을 기준으로 원산지를 파악하는 제도(얀-포워드)에 대한 인식이 중요하다. 중국 실을 사용하는 우리의 섬유제품은 ‘한국제’가 아니라 ‘중국제’인 것이다. 따라서 당연히 특혜관세의 혜택도 받지 못한다. 이 때 얼마나 많은 제품이 이 규정의 예외로 인정받았는가가 판단 근거로 된다.


많은 논란이 있어왔던 투자자-정부제소권(ISD)과 관련된 부분은 협정문의 문면만 본다면 상당히 포괄적으로 규정되어 있다. 예상보다는 다행이다. 그러나 한 나라 경제정책의 자율성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이 규정에 대해 단지 6줄의 해당 협정문안만 가지고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 외에도 한번만 발동할 수 있는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 각종 분쟁해결 절차의 모호함 등 협정문 구절마다 잠복하고 있는 지뢰는 너무나도 많다.


전체 1300여쪽(국문)에 이르는 방대한 내용의 파악은 결코 녹록지 않은 작업이다. 누구는 ‘악마’는 각론에 숨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천사’ 또한 각론에 숨어 있다. 어렵더라도 무미건조한 법조문 속에서 천사와 악마를 구별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한·미 FTA가 바로 한국경제의 새로운 ‘호적’을 만드는, ‘경제헌법’의 제정이기 때문에 더욱 그 의미는 크다.


애초부터 이 혼담, 참 갑자기도 이루어졌다. 정부의 발표대로 한·미 FTA가 드디어 메이저 리그로의 진출을 의미하는지, 반대진영의 말대로 새로운 ‘괴물’ 탄생의 서곡인지 논란만 분분하다. 그래서 신부는 더욱 당혹스럽다. 이 때 진리에 접근하는 방식은 한 가지다. 열심히 공부하고 정직히 토론하는 것이다. 협정문 전문이 발표된 지금 한국사회의 각계각층에게 요구되는 사항은 기존의 각종 선입견에서 벗어나 협정문을 꼼꼼히 따지고, 진솔하게 토론하고, 그리고 신중히 대안을 마련해나가는 자세일 것이다.


* 이 글은 국민일보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