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EJ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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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 광야에 발가벗겨 떨고있는 농업인들

김성훈 경실련 공동대표 (상지대 총장)


누누이 말했지만 한미 FTA는 (농축산물)시장을 더 개방(開放)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1995년 WTO(세계무역기구) 가입으로 우리나라 상품시장은 이미 99.3% 개방되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걸치고 있던 관세ㆍ비관세의 누더기를 벗겨버리자는 것이 한미 FTA 이다.


즉 한미 FTA는 ①상품과 서비스 시장의 예외 없는 무(無)관세화 협정이다. ② 협상의 선결조건으로 국산영화상영 일수의 50% 축소와 미국 의약품 가격의 보장, 그리고 식품안전성을 해치는 위생 및 검역조건의 완화와 유전자 변형식품의 원활한 도입 등 협상의제도 아닌 비관세 사항마저 대폭 양보하는 협정이었다. ③ 우리나라의 각종 공공제도와 법률 및 정책을 미국의 요구대로 미국익에 맞게 고치겠다는 경제통합 내지 동조화(同調化)에 관한 협정인 것이다.


그냥 시장개방을 더 늘려 100% 채우란다면야 죽자사자 반대할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앞장서 “개방을 택할 것이냐, 아니면 100여 년 전의 쇄국정책을 택할 것이냐” 윽박지르고 광개토대왕과 장보고까지 동원하여 수출해 먹고 사는 나라에서 개방은 필수요 대세라는 광고를 해대는 바람에 상당수 국민들은 꼬박 믿고 넘어갔다.


FTA는 선택의 문제이며 국익을 촘촘히 따져서 해야 한다고 비판하던 농업인들과 지식인들은 졸지에 “반미, 친북 좌파”로 매도당하고 말았다.  만일 한미 FTA 협정이 이대로 6월경 공식 체결되고 그 다음 국회에서 비준 동의된다면 주요 농림축수산물의 약 40%가 당장에 관세가 철폐될 예정이다. 5년 후는 60%가, 그리고 7년 후 2015년에는 쌀 시장까지 완전히 개방되며, 10년 후에는 90%, 15년 후에는 거의 98%의 주요 농축산물의 관세가 통째로 사라진다. 대부분의 비관세 장벽은 비준되기도 전에 이미 제거되었다.


따라서 그 피해액이 몇 조원이 될 것이라는 관변연구기관의 허구투성이 발표는 이제 더 이상 믿을 것도 논평할 가치도 없다. 상품으로서의 농산물가치만 계산하고 그나마 수치도 이랬다저랬다 하면서 농업의 천문학적인 다원적 공익가치를 빼놓고 계상한 피해예상액이란 아예 무의미하다.


이번 한미 FTA  추진과정에서 대통령부터 협상책임자에 이르기까지 숱한 거짓말을 쏟아 내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절묘한 것(白眉)은 “쌀 시장만은 지켰다”라는 공식발표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정부가 2004년에 이미 WTO 쌀 재협상을 통해서 미국을 비롯 6개국 쌀 수출국과 WTO에 대하여 2014년까지 실질적으로 쌀 소비량의 13% 가량 의무수입하고 그 30%를 밥상용으로 자유로이 수입하겠다고 양보하여 지금 이 순간도 미국 캘리포니아 칼로스쌀이 수입되고 있고, 2015년부터선 쌀시장을 전면 개방하겠다고 협정을 맺어 놓고서도 이번 한미FTA에서 쌀만은 지켰다니 이게 무슨 해괴한 말장난인가.


이렇게 쓰면 누군가 윗사람이 화를 내어 애꿎게 하위직 공무원으로 하여금 ‘WTO 협정과 FTA 협정의 성격이 다르다’고 공개적으로 반박할지 모른다. 그래서 미리 말해 두는데, 그렇다면 처음부터 쌀 개방은 막았다고 말해선 아니 되었다. 2015년부터 쌀시장은 완전개방 되지만 무관세화는 막았다고 말했어야 옳다. 그리고 한미 FTA도 개방여부를 결정하는 협정이 아니라, 아예 관세를 없애기 위한 협상이었다 라고 처음부터 솔직히 고백했어야 옳았다.


문제는 사고무친(四顧無親)의 천애고아(天涯孤兒) 신세가 된 우리나라 농업인들이 관세와 비관세라는 누더기마저 완전 벗겨져 광야에 내던져진 채 국제경쟁력을 키워야 살아남을 수 있고, 정부가 너무 도와주면 버릇만 나빠져 제대로 크지 못한다고 윽박지르는 소리들뿐이다.


한미 FTA 협상이 졸속으로 아무 준비 없이 미국 일정에 맞춰 미국이 원하는 대로 퍼주고 있을 때는 말 한마디 않던 사람들이 요즘에 메뚜기 제철을 만났다. 관세, 비관세 무장이 완전히 해제될 때는 가만히 있다가 막상 타결되니까 “농업이 경영마인드를 가져야 산다.” “수출로 살 길을 찾자.” “상품답게 만들어야 농민이 산다.”라는 제법 그럴싸한 훈수들을 해댄다. 때리는 남편 보다 말리는 척 “너 경영마인드 없고 경쟁력이 약하니 잘못했습니다 라고 말하라”고 나무라는 시어머니와 하등 다를 바 없다.


누가 우리 농민들이 경영마인드가 없다고 말하는가. 이때까지 그 악조건 하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이 헝그리 스프리트 경영마인드 때문이 아니었던가. 누가 경쟁력 없다고 말하는가, 비록 열악한 생산여건 때문에 가격경쟁력은 미약해도 품질과 안전성 경쟁력으로 버텨왔지 않은가. 누가 상품답게 못 만들었다고 흉보는가. 경영외적 요인 때문에 가격조건만 밀렸을 뿐 우리 농축산물만큼 생산력이 높고 맛있고 품질 좋고 안전한 것이 또 어디 있는가.


어디 한번 다시 따져보자. 우리와 비슷한 조건의 알프스지역 스위스, 독일, 오스트리아, 이태리 농민들과 우리 농업인들과 정책 환경이 얼마나 다른지나 알고 하는 소리들인가. 도대체 우리 정부가 농업과 농촌 그리고 농업인의 권익과 경쟁력을 키워내기 위해 농업인들에게 EU처럼 아니 일본, 미국 등 선진국처럼 농업의 다양한 공익적 기능에 대한 보답을 제대로 해주었는가부터 반성하고 비판해야 앞으로의 보강대책이 올바로 도출될 것이 아닌가.


땅값이 세계에서 최고로 비싸고 인구밀도가 최대이며 호당 경지면적이 최소인 우리나라의 농축산업이 살아남고 농업인들이 어엿한 국민으로 농촌의 자연환경과 경관을 지키게 하기 위해서 다른 선진국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왔는지부터 물어보고 해답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한미 FTA 후속 농정을 처방하려는 사람들에게 충고한다. 먼저 한미 FTA가 우리 농업 농촌과 국민경제 전반에 얼마만한 공적, 사적 피해와 파장을 몰고 올 것인가부터 정직하게 진단하고 처방을 내려야 한다. 지엽말단적인 성공사례를 가지고 마치 모든 농업 농촌 농민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해법인양 떠버려 인기를 끄는 말과 행위일랑 제발하지 말자. 초상집에 북치고, 장구치고 나팔마저 불러대며 자칫 두 번 죽이는 처방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농업 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모든 기관과 공직자, 준공무원, 봉급자, 학자들도 농업 농촌 농민이 스러져가는 이 마당에 모름지기 자신들의 존재이유(存在理由)를 겸허히 되새겨 보아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