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EJ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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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 시민단체 정치운동 하려면 커밍아웃부터 하라

<3월 26일자 중앙일보 월요인터뷰에 실린 박병옥 경실련 사무총장 인터뷰입니다>

만난 사람 = 김종혁 사회부문 부에디터

한때 시민단체가 희망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들은 도덕적이고 헌신적이었다. 추진력과 돌파력도 있었다. 1987년 민주화 운동과 함께 태동한 시민단체는 90년대 ‘르네상스’ 시기를 거치면서 막강한 파워 집단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이제 시민운동의 희망을 얘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히려 그 교조적이고 권력화된 운동 방식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왜? 무엇 때문에? 지난 21일 오후 편집국에서 박병옥 경실련 사무총장을 만나 그걸 물었다. 20년간 시민운동에 몸담았던 그는 시민단체를 정치적 타락으로 이끈 계기는 2000년의 낙천.낙선 운동이었다고 회고했다.


-시민단체는 전국에 몇 개나 있는가.


“‘시민의 신문’ 연감엔 2만 개로 돼 있다. 그중 상당수가 봉사나 구호활동을 하는 복지형 NGO(Non Government Organization-비정부 기구)다. 시민 권익을 대변하거나 정책을 주장하는 애드보커시(Advocacy)형 NGO는 한 3000개쯤 되는 것 같다.”


-혼자서 이름 내걸고 NGO라고 하고, 수십 개 단체에 중복 가입한 사람도 있는데.


“90년대 중반 이후는 시민단체의 르네상스기였다. 숫자가 급격히 늘어나고 확산됐다. 최소한의 자격요건도 없는 단체가 난립했다. 대표적인 게 1인 NGO다. 또 무늬만 NGO도 많다.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이해관계를 위해 뛰는, 사실상은 위장된 이익집단인 NGO도 심심찮게 본다.”


-시민단체의 시대 구분을 해 달라.


“87년 이전의 권위주의 체제하에서는 재야운동 형태였다. 언론 자유가 없었고, 정치적으로 엄혹한 상황이어서 감옥 갈 각오가 돼 있는 사람만 참여했다. 대신 도덕적 권위는 높았다. 이른바 ‘정당성의 시대’였다. 87년 이후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합법적 공간에서 시스템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민운동이 등장했다. 재야운동과의 본질적 차이점은 물리력이 아니라 여론을 통해 운동을 한다는 것이다. 대략 2000년까지 이어진다.”


-그 이후의 특징은 뭔가.


“특히 참여정부(노무현 정부)가 등장하면서 시민운동은 국정 운영의 파트너가 될 정도로 사회적 위상이 커졌다. 그러다 보니 그에 걸맞은 책임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시민단체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가.


“측정은 어렵다. 시민단체의 주장이 곧바로 정책으로 반영되는 사례는 찾기 힘들다. 그러나 우리 시민단체는 외국엔 없는 특징이 있다. 우선 시민단체의 정치적.사회적 영향력이 굉장히 크다. 또 시민단체 운동가들의 이념적 유사성이 강하다. 민주화 운동을 함께 해 연대의식이 강하다는 것도 특징이다.”



-80년대의 이른바 운동권 인사들이 시민운동의 주체세력으로 변화했다는 것인가.


“그렇다. 90년대 중반의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하면서 과거의 민중운동.노동운동 단체 등이 시민단체로 형태를 바꾼 경우가 있다.”


-80년대 운동권은 군사정권과의 투쟁은 가열차게 했지만 비타협적.독선적인 데다 흑백논리에 빠졌다는 비판이 있다. 시민운동에도 그런 양태가 고스란히 투영된 게 아닌가.


“80년대 운동권적 사고방식이 지속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시민운동 방식은 채택했지만 외형만 받아들였다는 생각도 든다. 시민운동의 기본 철학과 가치는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다. 그 다음은 대화와 타협의 중요성이다. 하지만 우리 시민단체는 일방주의적 운동이라고 비판받는다. 내가 옳으니까 내 말 들으라는 식이다. 그걸 관철하기 위해 동질성이 강한 시민단체들끼리 서로 힘을 합쳐 밀어주기도 한다.”


-운동 방식은 달라졌는데 세계관은 그대로였다는 것인가.


“2000년 이후 우리 사회는 정치적.이념적으로 편이 갈렸다. 그런 상황에 시민운동이 반응했다. 법을 어기더라도 낙천.낙선 운동을 하겠다는 건 80년대의 운동 방식을 그대로 따온 것이었다.”


-낙천.낙선 운동이 시민단체들의 정치 성향을 드러낸 계기가 됐는가.


“당시 김대중 정부는 낙천.낙선 운동을 공공연히 이용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정부의 홍위병이라고 공격했다. 정당들은 정략적 이해에 따라 이용하거나 배제했다. 하지만 그 소재는 시민단체가 제공했다. 시민단체가 비당파성의 원칙을 훼손당할 때 어떤 결과가 발생할지에 대한 생각이 부족했다.”


-중립을 앞세우는 시민단체가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특정 정당과 손잡고 활동하는 건 타락이 아닌가.


“차라리 특정 정당 지지를 선언하면 된다. 그럼 시민운동이 아닌 정치운동이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그걸 숨기고 (중립을 가장해) 활동하면 명백한 타락이다.”


-경실련은 당시 낙천운동에 참여하지 않았나.


“안했다.”


-다 하는 분위기였는데 왜 그랬나.


“당시 지역 조직들로부터 참여 압력이 거셌다. 하지만 그건 시민단체가 선거라는 정치게임에 또 하나의 선수(player)로 뛰어드는 행위다. 스포트라이트는 받을 것이다. 하지만 시민운동은 스포트라이트를 덜 받아도 게임 룰이 공정한지를 따지는 심판 역할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당시엔 시민단체들이 낙천 대상자를 종합 평가해 선정했다. 환경단체가 환경을 오염시키는 후보를 비판하는 건 좋다. 하지만 종합 평가를 했다. 이런 건 객관적일 수가 없다.”


-그 이전엔 경실련도 정치적 중립성 시비에 휩싸이지 않았나.


“김영삼 정부 때였다. 당시 정부에 들어가 개혁을 돕자는 주장과 끝까지 정부의 비판자로 남자는 견해가 충돌했다. 일부가 정부로 갔고, 그러면서 경실련이 친정부적이라는 비난을 받게 됐다. 시민단체의 본질은 정부에 대한 감시자 역할이고, 참여 속의 개혁은 명분은 좋지만 결국 본질을 훼손시킨다는 걸 그런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됐다.”


-그래서 이른바 왕따를 당하 건 아닌가.


“(웃으며) 낙천 운동 이후 경실련은 시민운동의 주도권 대열에서 밀렸다. 그 뒤 탄핵 운동이 있었고, 2004년에도 낙선.당선 운동이 있었다. 최종 판단은 국민이 하겠지만 시민단체가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다.”


-시민단체 인사들이 정권에 무더기로 들어가는 건 뭔가.


“개인의 선택이니 원론적으론 막을 수 없다. 하지만 시민단체 임원들이 정.관계에 진출하는 건 시민단체가 우리 사회에서 자리매김하는 데 큰 장애가 되고 있다. 동기의 순수성 논란 등 때문에 시민운동에 남은 사람들은 참 어려워진다.”


-그래서인지 요새는 시민단체를 감시하는 시민단체가 필요하다는 말까지 나온다.


“시민단체도 감시의 대상으로 올라왔고, 또 감시돼야 한다. 그런 감시 기능은 외국의 경우 학계와 언론에 의해 이뤄진다. 시민단체와 언론은 서로 감시를 하는 재미있는 관계다. 시민단체와 언론이 상호 감시 기능을 인정하고 상대방의 역할을 존중하는 게 바람직하다.”


-하지만 일부 힘센 시민단체는 자신들에 대한 비판에 격렬하게 반응한다.


“합리적인 비판에 대해 시민단체도 수용하고 고쳐야 한다. 이제는 시민단체의 윤리와 도덕에 대해 국민 모두가 공감할 가이드라인(Guide Line)을 세우는 게 필요하다. 그런 게 없으니 시민단체 쪽에서 어떤 행동을 해놓고 ‘그게 어떻다는 거냐’는 식의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과거에는 운동적 열망에 충만한 젊은이들이 시민단체에 들어갔다. 요즘은 인적 충원을 어떻게 하는가.


“시민단체 근무자는 이제는 운동가가 아니라 직업인이다. 단지 좀 더 이타적인 직업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왜 들어왔느냐’고 물으면 과거에는 사회의 변혁을 얘기했었다. 하지만 이젠 자아실현을 말한다. 시민단체 활동이 최소한의 직업적 안정성을 유지해주지 않으면 모두가 떠날 것이다.”


-사회가 복잡해지는데 시민단체는 전문성을 어떻게 확보하나.


“이슈가 갈수록 복잡하고 세분화돼 다루기가 어렵다. 과거엔 대학 교수들이 사회에 대한 부채의식이 있어서 적극적으로 참여했지만 이젠 다르다. 주장형 운동은 사회적 관심을 끌기 어렵다. 시민운동도 정보기반형 운동으로 바뀌어야 한다. 부동산 거품을 주장하려면 그에 대한 실질적인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문제의 실상과 숨겨진 정보가 시민들에게 터져나가게 정보기반형 운동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시민운동에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가.


“그걸 안할 도리가 없다. 세상 모든 걸 관여할 수 없다. 경실련도 민생경제 이슈에 전체 역량의 80%를 집중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 시민단체가 특성화하는 쪽으로 이동하지 않을 수 없다.”


-20년간 시민운동을 하면서 뭘 느꼈나.


“시민단체들은 커밍아웃(coming out)이 필요하다.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란 말이다. 그걸 안하기 때문에 전체 시민운동이 물고 물려 다 죽는다. 정치운동을 하려면 그 컬러를 드러내고 그런대로 나가면 된다. 시민단체들이 각기 헤엄치면 다 살 수 있는데, 서로 껴안고 붙잡고 숨으려고 하면 다 죽는다. 숨지 마라.”


정리= 한애란 기자, 사진= 김형수 기자


박병옥 사무총장은 고려대를 다니다 학생운동으로 제적.강제 징집을 당했다. 복학해 대학을 졸업한 뒤 89년 5월 경실련이 창설될 때부터 활동에 참여했다. 2004년부터 경실련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지난달 경실련.흥사단.기독교윤리실천운동.녹색미래 등 4개 시민단체가 제안한 ‘NGO 사회적 책임운동’을 주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