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EJ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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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 반복되는 기업들의 담합, 근절되지 않는 이유

지난 2월22일 시민들의 분통을 터뜨리게 하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SK,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S-Oil 등 국내 굴지의 정유사들이 담합해 휘발유▪등유▪경유의 판매가격을 인상한 것을 공정거래위원회가 적발, 526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정유사들은 2004년 4월부터 6월까지 가격인상을 합의하고 서로 잘 지키는지 감시까지 했다고 하는데, 이 바람에 소비자들이 입은 손해는 2,400억원에 다다른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점이 하나 듭니다. 바로 소비자들이 입은 손해와 과징금과의 차이인데요. 정유사들은 언론에서 비판받고, 시민들에게 욕을 먹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약 1,800억원 이상의 이득을 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정유사들은 운이 좋아 공정위 적발에 걸리고도 이득을 본 것일까요? 경실련에서 지난 2005년 이후 공정위가 발표한 담합 적발 사건 중 10억원 이상의 과징금이 부과된 16개의 사건을 살펴보았습니다.


소비자가 입은 피해는 3조8,480억원, 과징금은 7.7%에 불과한 2,960억원 


16개 담합 사건 중 소비자 피해 추정액이 발표된 사건은 9개인데요. 밑의 표를 보면 아시겠지만 이들 9개 담합 사건이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끼친 것은 총 3조8,480억원인데 정작 과징금은 피해액의 7.7%에 불과한 2,960억원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정유사뿐만이 아니라 다른 기업들도 결국 담합을 통해 이득을 남긴 셈이죠.



실효성없는 제재가 담합을 부른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터무니없게 적은 과징금이 부과되는 것일까요? 이유는 다름아닌 공정거래법에 있습니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담합 기업에 부과할 수 있는 과징금을 해당 기업 3년간 총매출액 평균의 10%를 넘지 못하도록 상한선을 두고 있습니다. 여기에 다시 담합 상품 매출액의 10%를 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담합기업에 실제로 부과되는 과징금은 제품 매출액의 최고 10%에서 최저 0.5%에 머무르게 됩니다. 한마디로 전혀 실효성 없는 과징금이 법적으로 보장되는 것이죠.


그나마 이마저도 이후 해당기업들이 낸 소송을 통해 대폭 경감되거나 부과되지 않음으로써 더더욱 제재의 실효성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실례로 2002년 5월 공정위는 카드 4사에 233억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하였으나 해당 업체들이 소송을 제기하였고, 대법원은 작년 10월 부과된 과징금을 재산정하라는 판결을 내린바 있다.


그렇다면 담합에 대한 검찰 고발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알아볼까요. 검찰에 고발되니 그에 따른 피해도 따져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을테니까요.


경실련에서 2005년 이후 10억 이상의 과징금이 부과된 대형 담합사례를 대상으로 검찰고발 현황을 살펴본 결과 16개 담합 건 중 검찰 고발은 5건에 불과하였습니다. 좀 더 기간을 넓혀보면 공정위가 지난 1981년부터 작년까지 적발해 제재를 한 담합사건은 571건 이었는데 이 중 검찰 고발은 총 25건으로 전체 담합 사건의 4.4%에 불과했습니다. 거의 모든 담합 사건이 과징금 부과로 처벌이 종결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현실이 이러하니 담합사건이 잊을만하면 반복되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입니다. 담합을 해서 얻는 이익이 법을 어겨서 받는 금전적 손해보다 훨씬 큰데 누가 이를 마다하겠습니까? 잠깐 쏟아지는 여론의 몰매만 피하면 아무런 사법적 처벌도 받지 않으니 아무런 거리낌없이 담합이 이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담합이 적발되면 기업이 무너질수도 있다는 확고한 인식을 심어줘야


자본주의의 근간을 무너뜨린다는 원칙적인 이야기를 굳이 꺼내지 않더라도 담합이 시민들에게 실질적으로 끼치는 피해는 실로 엄청납니다. 담합 사례들의 대부분이 실생활과 밀접한 업종들이며, 담합에 참여한 업체들 대부분이 국내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대기업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반복되는 담합을 완전히 끊어버릴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그 방향은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담합을 하다 걸리면 기업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인식이 기업들에게 있으면 담합을 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현재의 실효성없는 담합 관련 제재방안들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먼저 과징금의 경우 상한선을 폐지하거나 담합적발 기업의 경우 일정기간 정부조달 사업에 참여할 자격을 제한하는 등의 방법을 모색해볼 수 있습니다.


또한 담합기업에 대한 형사처벌의 활성화를 위해 공정위 전속고발권을 폐지해야 합니다. 독점적 지위를 이용하여 소비자에게 피해를 전가시키는 담합은 가장 해악적인 불공정거래 행위로서 OECD 등 세계 각국은 담합에 대해 엄정히 형사처벌하고 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에게만 주어진 전속고발권을 폐지하여 담합과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적발된 범죄행위에 대한 엄격한 처벌이 뒤따르게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담합으로 인해 손해를 입은 소비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증권관련 분야로 제한된 집단소송제를 담합 등을 다루는 공정거래법까지 확대해야 합니다. 담합으로 얻는 이득의 몇 배수까지 손해를 배상하게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된다면 기업들이 담합을 통해 소비자들을 우롱하는 일들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김건호 경실련 경제정책국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