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EJ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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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 노무현 정부의 ‘自殺골’ (김성훈)

지난달 ‘군사작전’을 펴듯 단 하루 만에 뚝딱 해치운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선언에 대해 개시일자가 다가올수록 각계각층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그중에도 얼마 전까지 참여정부의 핵심 참모이었던 분들의 항명성 쓴소리는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보통 사람들의 옷깃마저 여미게 하는 처절한 우국충정이 스며 있다.


한ㆍ미 FTA 협상을 졸속 추진 말고 신중히 하시오! 대통령의 남은 임기 동안 새 일거리를 만들지 말고 시작했던 개혁안들이나 잘 마무리 하시오!


정부 주장대로 앞으로 10개월 안에 한ㆍ미 FTA를 마무리하지 못하면 정권이 날아가고 그 안에 마무리하면 한국 경제가 날아갈 것이라는 고언(苦言)들이 그러하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국내 이해단체의 저항 때문에 (한ㆍ미 자유무역협정이) 못 가는 일은 절대로 없도록 하자”는 입장에 변함이 없는 것 같다.


대통령과 참여정부를 그토록 저주해 마지않던 보수 언론들의 고무성 보도에 힘을 받은 것인가.


마지못해 한ㆍ미 FTA를 지지하고 나선 요즘 밀월 관계의 경제단체 대표들이 고마워서 인가, 아무튼 국민의 75.6%가 반대하는 여론(한국사회여론조사연구소 조사)에도 불구하고 미국 신속무역처리법(TPA) 일정에 맞추어 속전속결할 기세이다.

문제는 한ㆍ미 FTA가 장차 우리나라 정치ㆍ경제ㆍ사회ㆍ교육ㆍ문화ㆍ법률ㆍ서비스산업ㆍ농업 등 전분야에 경천동지(驚天動地)할 변화를 가져올 부정적 파괴력에 비해 예상되는 국가적 이익은 추상적이고 희미하다는 사실이다.

이익이 크다는 연구 발표가 있기는 하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대외경제연구원의 한 박사님이 처음에는 한ㆍ미 FTA가 우리 경제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을 1.99%, 신규 고용 창출 0.63%, 후생 수준 1.73%를 개선할 것이라는 수치를 지난 2월2일 무산된 공청회에서 제시했다.

그러나 이것이 웬일인가. 그 한달 뒤인 3월3일에는 ‘그 연구원의 그 박사님’이 또 다른 세미나에서 한ㆍ미 FTA 체결로 실질 GDP가 7.75% 증가하고, 신규 고용이 3.3% 증가하며, 국민 후생이 6.99% 개선된다고 수정 발표했다. 한달 새에 긍정적인 효과가 4~5배나 부풀려졌다. ‘뻥튀기’ 연구 발표도 유분수이지, 황우석의 줄기세포 사건은 아예 약과(藥果)에 불과하다.

천하가 다 아는 한ㆍ미 FTA의 부정적 효과는 정부 공식기관으로는 유일하게 농촌경제연구원의 한 박사에 의해 ‘조심에 소심성’마저 가미한 그나마 농업 부문에만 국한한 ‘2조원 소득 감소에 10만명 고용 감소’라는 최소치의 연구 결과가 발표됐을 뿐이다.

그리고 미국이 ‘국민의 정부’ 초기 한ㆍ미투자협정(BIT)의 선행 조건으로 내세웠던 스크린쿼터 축소 폐지, 쌀과 쇠고기 수입 완전 개방 외에 이번에 추가로 요구한 듯한 자동차 배출가스 기준 완화와 수입의약품값 인하 중단 등 4대 선결 조건의 과감한 수락에 따른 부정적 효과만 막연히 알려지고 있다.

다른 분야에서 일어날 천문학적인 부정적 효과는 워낙 전광석화처럼 FTA 협상 선언이 발표되는 바람에 미처 연구 조사가 돼 있지 않다. 다만 경제산업 분야에서 예상되는 손익계산서는 자동차ㆍ전자산업ㆍ섬유의류 등의 수출 증대가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이제 한창 경쟁력을 갖기 시작한 기계ㆍ석유화학ㆍ의약품, 그리고 미국 자동차 수입은 크게 늘어날 전망이라는 정도이다.

실제 미국의 현행 관세율은 자동차가 2.5%, 전자 분야가 2.0%, 섬유의류는 5~10%인 데 비해 기계류는 1.9%에 불과하다. 섬유의류는 중국 및 동남아산의 저가 공세로 이미 경쟁력을 잃은 상태이다. 마찬가지로 중소기업 제품도 경쟁력을 잃고 도산 직전이거나 북한 진출 외에는 활로가 없다.

개성공단 제품마저 국산으로 인정받지 못할 경우 FTA는 ‘캠플’주사 효과에 불과하다. 반면 미국의회 발표처럼 농축산업 분야는 그 총생산액의 근 절반에 해당하는 8조원가량이 미국산으로 대체돼 농업ㆍ농촌ㆍ농민의 장래는 ‘쑥대밭화’할 전망이다. 하물며 교육ㆍ문화ㆍ의료ㆍ법률ㆍ서비스산업 분야 등 지식산업에 미칠 타격은 현재로서는 추측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한ㆍ미 FTA는 노무현 정부의 ‘자살(自殺)골’이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널리, 짙게 퍼져가고 있다. 오죽했으면 정태인 비서관이 ‘대패착’이라고까지 말했을까.


대통령 스스로 정의한 ‘좌파 신자유주의’란 국정이라는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신호는 왼쪽으로 보내고 핸들은 오른쪽으로 돌리는 것’이 아니다.


이번만은 만약 10년 후 나라 운명이 절단 났을 때 ‘남의 탓’을 않고 내가 책임지겠다는 국정 운영에 대한 자신감과 실사구시적 신념이 절실한 때이다.


김성훈 경실련 공동대표(상지대 총장)


* 이 글은 4월 10일자 서울경제신문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