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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실련이야기] [문화산책] 9회말 2아웃, 달빛요정이 쏘아올린 역전만루홈런
2019.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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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경실련 2019년 7,8월호 – 우리들이야기(3)]

9회 말 투아웃, 달빛요정이 쏘아 올린 역전만루홈런

정택수 30주년기념사업국 팀장 wild@ccej.or.kr

바야흐로 한국음악의 전성기다. 가요는 이제 K-POP이라는 이름으로 미국 빌보드를 비롯한 세계 차트 상위권을 섭렵하고 있다. 세계 각지에서 열리는 K-POP 공연은 연일 매진 사례를 기록하고, K-POP 때문에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도 크게 늘었다. 몇몇 가수들이 유례없는 강력 범죄를 저질러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뒤엉키긴 했지만, 모두 한국음악 판이 커졌다는 반증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한국음악이 언제나 지금처럼 잘 나갔던 것도 아니었고, 외양이 화려해질수록 한 번쯤 다른 이면들도 돌아봤으면 하는 마음이 자꾸 든다. 그래서 누구보다 화려하지 못했던 언더그라운드 가수 한 사람을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이름도 유치찬란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본명은 이진원이다. 그는 그저 음악이 좋아서, 음악으로 먹고살겠다는 일념으로 대형 기획사 주변을 전전하며 열심히 곡을 썼다. 하지만 연줄도 없는 데다, 실력도 부족해서 하루 종일 야구방송을 틀어놓고 음악 작업을 하는게 스케줄의 전부였다.

아무도 자기 곡을 찾지 않자 결국 자신이 가수가 되어 데뷔작이자 은퇴작을 발매하기로 결심했다. 음반을 내려면 많은 돈이 들기에 스스로 모든걸 해내는 ‘가내수공업’식 음악 작업에 돌입했다. 마스터링과 프레싱을 제외하고 모든 작업을 해낸덕에 앨범제작에 들어간 비용은 대략 600만 원. 앨범의 타이틀은 ‘Infield fly1)’라 정했다. 어찌어찌 앨범을 만들기는 했지만 이걸 제대로 유통시키기란 더 어려운 일이었다.

한 웹툰 작가가 작품 배경음악으로 ‘절룩거리네’를 사용해준 덕에 앨범 판매도 반짝 상승세를 탔지만 그것도 잠시뿐. 또다시 1년을 허송세월하고 있을 때 기회가 찾아왔다. 故 신해철이 DJ로 있던 라디오 프로그램 고스트네이션에서 ‘절룩거리네’와 ‘스끼다시 내 인생’을 소개해준 것이다. 청취자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던 덕분에 찍어둔 시디도 다 팔고 음반회사와 정식계약을 맺어 재발매까지 했다. 좋은날도 잠시, 최대의 히트곡 절룩거리네와 스끼다시 내 인생이 모두 방송금지곡 판정을 받았다. 달빛요정 노래의 가장 큰 무기인 직설적인 가사가 독이 되고 만 것이다. 방송금지는 이제 막 날개짓을 시작한 가수에겐 치명타가 됐다. 1집 만들 때 진 빚을 갚으려면 아직 멀었는데 좌절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행히도 그를 살려준 건 정부의 인디밴드 지원금이었다. 생활비는 어쩔 수 없었지만 음반제작비는 지원금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열악한 장비에 부족한 연주 실력으로 만든 음악이었지만 진정성 가득한 가사와 절규하는 목소리는 팬들의 가슴을 울렸다. 달빛요정의 가사는 자신의 삶을 기반으로 친구들에게 들은 얘기와 상상력이 더해져 만들어졌다. 1인칭 시점으로 가사를 쓰다 보니 모든 게 그의 실제 경험인 것처럼 오해를 샀다.2) 달빛요정의 삶이 결코 풍족한 것은 아니었지만 노래가사처럼 기타를 팔아 생계를 유지할 만큼은 아니었다. 사실 앨범을 내고나면 늘 새 기타가 그의 손에 들려있었다. 월 100만원, 연봉 1000만원 수입이 안 되면 음악을 접겠노라 결심했건만 운명의 장난처럼 수입은 늘 마지노선을 넘지 않았고 음악생활도 계속됐다.

달빛요정도 자신이 불행을 팔아 돈을 벌고 있음을 인정했으나, 가사 속 주인공을 자신과 일치시켜 불쌍하게 쳐다보는 시선은 몹시 불편해했다. 달빛요정은 때론 사랑을, 때론 세상에 당당히 맞서겠다는 선언을 노래하기도 했지만 대중의 주목을 끈 것은 “세상은 내게 감사하라네 그래 알았어 그냥 찌그러져있을게” 같은 패배감 가득한 가사들이었다. 하지만 달빛요정의 비굴한 가사에도 염세적이거나 공격적인 음악은 만들지 않았다. 그의 음악은 오히려 들국화의 ‘행진’처럼 삶을 향한 에너지가 넘쳤다. 음악의 긍정적 에너지는 절망적인 가사와 화학작용을 일으켜 비굴할지라도 굴복하지 않는 정신승리, 때로는 희망을 느끼게 한다.

달빛요정은 꾸준히 앨범을 내며 나름 팬층을 구축했고, 인디신에서 독보적 위치를 잡아갔다. 그러던 2010년 11월, 갑자기 달빛요정이 뇌출혈로 쓰러져 사망했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그의 나이 38세. 병원 측은 그가 뇌출혈로 쓰러진지 30시간 이상이 지난 후에야 발견된 것으로 추정했다. 가수의 인생은 자신이 부른 노래처럼 된다던데 그의 인생은 노래보다 더 외롭고 비극적으로 끝나고 만 것이다.

달빛요정의 비극적인 죽음이 알려지면서 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살아있을 때와 비교할 수 없을만큼 커졌다. 달빛요정 추모공연이 열리고 달빛요정의 곡을 모아 만든 뮤지컬이 제작됐다. 그의 죽음은 특히 예술인 복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확산시켰고 예술인복지법이 제정되는 초석이 되었다.3)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추모 열기를 보고 있노라면 왠지 달빛요정이 인생역전만루홈런을 죽음으로 쏘아올린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이 와중에 불편한 진실 한 가지는 예술인복지법이 수년째 시행 중이고, 예술인 복지에 대한 대선공약도 여럿 제시됐지만 이런 제도가 있는지 조차 모르는 이가 태반이라는 것. 대학로를 걷다 보면 예술가에 대한 보호와 복지가 시급하다는 벽보가 종종 눈에 띈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어렵게 만들어진 사회적 변화지만 늘 미흡한 수준에 그치는 현실이 씁쓸하다. 달빛요정은 이제 가고 없지만 그와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루빨리 시스템이 정비되길 바란다.

1) 인필드 플라이는 내야뜬공을 수비수가 잡기도 전에 심판이 아웃 선언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필드 플라이처럼 자신의 삶도 이미 오래전에 아웃 결정이 내려진 것 같아서 첫 앨범명으로 삼았다고 한다.
2) 달빛요정은 노래 ‘길동전쟁’ 중 “내 친구들이 전방에서 조국에 충성을 다할 때 나는 이름 없는 다방의 레지와 사랑에 빠져 있었네”라는 가사 때문에 정말 레지와 연애를 해봤냐는 질문을 엄청나게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들은 얘기를 토대로 만든 가사일 뿐 다방엔 몇 번 가본 게 전부였다고 한다.
3) 예술인 복지법 도입은 2011년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씨가 생활고에 시달리다 사망한 사건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기 때문에 ‘최고은 법’이라 불리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