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EJ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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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 불법 도청과 국가정보원의 미래



김상겸 (경실련 시민입법위원장, 동국대학교 헌법학 교수)




안기부의 X파일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우리 사회는 또 다시 엄청난 충격에 휩싸이고 있다. 사건이 출발점이 국가기관에 의하여 자행된 불법도청이었던 만큼, 관련기관인 국정원은 자체 진상조사에 들어갔고, 시민단체의 고발로 사건은 검찰로 넘어가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불법도청에 대한 국정원의 자체 조사는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 국정원장의 대국민사과와 함께 진상이 발표되었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는 그 끝이 어딘지 짐작하기 어렵게 하면서 점차 확대되고 있다.


이번 사건은 방송을 통하여 국민에게 그 형체가 공개적으로 들어날 때까지 소문으로 우리 사회를 회자하면서 국민적 의혹을 받았던 사건이다. 사건이 공개되면서 그 내용의 심각성은 우리에게 충격을 줄 만한 것이었다. 그 진위여부에 대해서는 향후 사건의 전개방향에 따라서 밝혀질 것이라 생각하지만, 불법정치자금의 문제는 두고두고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사안이다.


나아가 이번 사건이 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동안 입소문으로만 나돌았던 국가기관에 의한 도청사건이라는 것이다. 국민에게 국가란 보호하는 울타리요 그 터전인데, 주권자인 국민의 사생활을 염탐하고 이를 악용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자행된 도청은 그야말로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결과가 되고만 것이다. 더구나 그동안 국정원은 이런 도청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잡아뗐기 때문에 그 충격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불법도청이 국정원의 정상적인 조직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고 하나, 일사불란한 조직체계를 가진 기관에서 그 실체를 모르고 통제하지 않았다고 믿는 국민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런 불법도청사건으로 인하여 일부에서는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민의 지유와 생명, 재산을 지켜야 할 최 일선의 중요한 국가기관이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면서 국민의 권리를 짓밟는 행위만 한다고 그 무용론을 들고 나오고 있다. 과거 국정원의 전신이었던 국가기관들의 행태를 보면 심정적으로 충분히 이해가 가는 주장이다. 더구나 수사과정 중에 있는 사건이기는 하나 군사정권으로부터 탄압을 받은 경험으로 절대 그럴 것 같지 않은 정권들까지 도청을 하지 않았는지 의혹이 불거져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차라리 도청의 진원지인 국정원을 폐지하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주장한다 해도 반박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국가정보기관이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위하여 활동하지 않고 정치적 의도에 의하여 움직여왔던 과거의 얼룩진 역사에 대하여 씁쓸함을 금할 길 없다. 그렇지만 벼룩을 잡기 위하여 초가산간을 태울 수는 없다. 국가의 중요한 정보를 담당해야 할 국가기관의 존재는 현대국가에 있어서 더구나 오늘날과 같은 정보전쟁의 시대에 필수적인 것이다. 국가기관에 의하여 자행된 불법도청이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얼마나 엄청난 위법행위인지 새삼스럽게 거론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번 기회에 불법도청을 원천적으로 근절하기 위해서 법과 제도의 정비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법과 제도를 개선한다하여도 위법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공직자의 의식과 철저한 도덕성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사상누각에 불과할 뿐이다.


여하튼 과거 안기부에 의하여 자행된 불법도청문제에 대하여 그 원인과 과정을 소상히 밝혀 도청에 연루된 자들에게 준엄한 법의 잣대를 적용하여 그 책임을 물어야 하겠지만, 이로 인하여 정치권에서 거론되고 있는 국정원의 해체는 문제의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처방이 되지 못한다. 정보의 시대에 국가차원에서 정보기관의 존재가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국정원장은 이번 사건으로 인하여 국민에게 사과하였다. 차제에 국정원은 국민의 우려를 씻고 환골탈태하는 기분으로 조직을 정비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국정원개혁에서 논의되었던 것처럼 문제가 된 국내정치와 관련된 정보수집활동은 금지하고 해외정보나 대북정보 등의 분야에서는 그 기능을 효율화하고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국정원은 이번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뼈를 깎는 고통으로 개혁을 해야 한다. 또한 국민은 국익을 위하여 음지에서 노력하고 있는 국정원이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주시해야 한다.


* 이 글은 문화일보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