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EJ 칼럼

보다 정의롭고 모두가 행복한 미래사회를 위해 달리는 경실련의 최근 이야기를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CCEJ 칼럼] X파일의 본질은 불법 도청이 아니다

 
이종수(시민권익센터 대표,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




X파일은 우리 사회의 이중적 구조와 후진적 제도운용 수준을 단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다. ‘핵폭탄’에 비유되는 가공할 사회적 이슈에 대한 접근시각들은 그러나 영 마뜩찮다. 판도라 상자의 빗장을 열어야 할 책임 있는 당국자들은, 말은 어떻게 하든, 너나없이 테이프 내용의 공개를 꺼려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검찰은 이슈의 초점을 ‘불법도청’에 맞추면서 도청물 토대 수사 ‘필패론’을 제기하는가 하면, 한동안 공황에 빠져 있던 정치권은 공소시효와 불법수집 증거의 법적 효력과 같은 형식논리를 내세워 국민들을 미혹에 빠뜨리고 있다. 지엽적 문제를 둘러싼 지루한 공방과 함께 흥미위주의 선정적 보도를 통해 이슈의 초점을 흐리면서, 적절한 시기에 ‘국정 안정과 경제에 미칠 악영향’ 논리를 등장시키면 국민들의 흥분이  쉽게 잦아들 것이라는 점을 기득권 세력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불법도청’ 문제 자체가 어떻게 X파일 이슈의 첫 번째 본질이 될 수 있는가? 이 사건의 첫 번째 본질은 테이프 속에 담겨 있는 ‘정경유착’, ‘권언유착’과 같은 우리 사회의 구조화된 비리 커넥션이며, 두 번째 본질은 제도를 무시한 집권층의 탈법적 권력운용 행태다. 우리가 X 파일을 통해 얻어야 할 교훈은 진상의 철저한 규명을 통해 우리 사회의 ‘제도운용 수준’을 한 단계 높이고 우리 사회를 한 발짝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데 있다. ‘가벌성’ 여부는 지엽적 문제다. 불법도청과 공소시효 그리고 도청자료의 법적 효력과 같은 문제는 법정에서 가려지면 그만이다. 선진화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검은 커넥션의 진상이 제대로 밝혀진다면, 관련당사자들이 법정에서 설사 무죄판결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 나름의 사회적 의미가 있을 것이다.


사회일각에서는 통신비밀 보호법과 사생활 보호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테이프 내용을 공개해서는 아니 된다는 주장을 펴고 있으나, 국가권력을 좌우할 대통령 선거의 공정성을 해치는 등 국가의 기본질서를 송두리째 흔들 중대한 내용이 들어 있다면 이는 형소법 차원을 넘는 중대사안으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도청대상자들이 우리 사회의 최고위층 인사들이라는 측면에서 테이프에는, 관련자들이 증언하듯이, ‘국민들이 경악할’ 엄청난 내용이 들어있음에 틀림없다. 꼬리가 몸통을 흔들듯이(Tail wags the dog), 사소한 원칙을 내세워 더 큰 사회적 가치를 훼손하려 해서는 결코 아니 된다. 특별법을 제정하든 특검제를 도입하든 테이프 속의 공공성을 띤 모든 내용이 공개되어야 한다는 대원칙이 우선 확인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의 무대 위에는 우리 사회의 파워엘리뜨들이 모두 등장하고 있다. 온갖 비리에 빠지지 않고 발 담그고 있는 정치권은 물론이고, 정경유착의 지대 추구에 골몰하는 재벌그룹, 무소불위의 막강한 권력을 휘둘러온 국정원과 검찰 그리고 언론권력 등 기득권 세력 모두가 연관되어 있다. 광복 후 60년간 우리 사회를 농단해 온 이 철의 삼각동맹(iron triangle)을 해체하지 않고는 근본적 개혁이 불가능한 바, X 파일이 그 절호의 기회를 가져다 준 셈이다. X 파일은 우리 사회의 바람직한 새 질서를 구축하는 사회학습의 획기적 계기가 되어야 한다.  


진상규명의 주체를 놓고, 서로의 이해득실을 따져, 검찰수사를 지켜보자느니 특검에 맡겨야 한다거니, 또는 민간이 주도하는 제3의 기구에 맡겨 테이프를 공개하자느니 공론이 분분하다. 그러나 필자는 국회의원과 민간인 합동으로 구성되는 뉴거버넌스 형태의 국회 특별조사위원회를 발족시킬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물론 정치권이 이번 사건의 한 당사자라는 측면에서 께름칙한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존 질서의 때가 덜 묻은 초․재선의원을 중심으로 특위를 구성한다면 이러한 문제점은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국회 특별조사위원회를 통한 진상규명 활동은, 사회적 주요 사건에 대한 국회의 조사권 발동이라는 측면에서, ‘가벌성’ 문제에 초점을 둔 까다로운 법리 논쟁을 벗어나 폭넓은 조사활동을 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진상조사 결과 위법 사항이 드러나면 그 때 검찰에 고발을 하면 되는 것이다. 또한 민간인이 참여하는 국회 특별조사위원회 구성은 공정성과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한 뉴거버넌스의 새로운 실험모델이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X 파일 사건의 귀결점이 반드시 제도개선으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국회가 중심이 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X 파일 사건은 과거의 관행처럼 약간의 희생양을 만드는 수준에서 흐지부지 덮여져서는 결코 아니 된다. 집권세력의 탈법적 권력운용 행태를 근절시키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이번 기회에 반드시 마련되어야 할 것이며, 정치자금의 음성적 거래를 차단하고, 기업운영의 투명성을 획기적으로 제고하기 위한 개선책도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정권안보를 위한 음성적 권력운용의 유혹을 근원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는 국정원의 기능을 차제에 ‘해외정보’에 한정하는 문제도 심각하게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참여정부가 남은 절반의 임기를 X 파일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통해 새로운 사회질서 구축을 위한 총체적 개혁을 제대로 이루어낸다면 그것으로 성공한 정부가 될 것이다. (2005.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