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EJ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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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 시민이 보는 2005년 예산안

이원희 교수(한경대 행정학과)


예산의 계절이 왔다. 1년간 사업 부처와 예산실의 긴 논의 끝에 완성된 예산안이 국회에 제출되었고, 국회에서는 정치적 논쟁과 조정 작업을 시작할 것이다. 법정기한이 있는 예산안은 야당으로서는 정치적 타협의 수단이 되고, 여당으로서는 통과시켜야 할 부담이기도 하다. 그래서 예산꾸러미는 선물보따리이기도 하고, 짐 보따리이기도 하다.


공공관리부분의 개혁과 재정개혁


2005년도 예산안은 편성과정에서 매우 큰 특징을 가지고 있다. Top Down 방식을 채택하여 예산실에서 직접 개별 사업에 대한 심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금배분의 우선순위만 정하고 개별 부처에서 사업을 조정하도록 했다.  그리고 이런 거시재정정책의 기능을 담보하기 위해 중기재정계획과 성과 관리체계의 구축에 많은 노력을 한 것도 매우 시의 적절한 노력이었다.


문제는 향후 이러한 체제가 정착되기 위해 제도 정비의 부수적인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대통령제인 국가에서 이러한 행정부의 노력을 국회가 얼마나 동의해 줄 것인지가 의문이다. 국회와 연중 협력 체계의 구축이 필요한 대목이다. 정부 개혁의 기능을 행정자치부에 이관하였는데 재정개혁과 행정관리개혁의 연계를 어떻게 할 것인지도 고민을 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중앙예산기구의 변화를 보면 처음에는 예산부(Bureau of Budget)로 출발했다가 1970년대에 대통령실로 이관하면서 관리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관리예산처(Office of Management and Budget)로 전환한 사례로 보면 우리는 거꾸로 가고 있다. 기금존치 평가 결과에 따른 개혁, 공기업의 개혁이 2005년에 추진되어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데 이는 재정의 개혁 수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공부문 개혁의 수준이다. 중장기적으로 기획예산처 전체의 구도가 정치적 조정의 기능이 강화되도록 재설계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예산을 통해 사업이 성립되고 집행되고 효과를 평가하는 등 예산의 생애주기관리(Life Cycle Management)를 강화하는 기능 조정이 필요할 것이다.


재정건전화를 포기한 경기대응적 팽창예산


2005년도 예산안의 특징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총액배분 자율결정이라는 Top Down 방식이 도입되었기 때문에 거시재정정책의 관점에서 분석해 보는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2005년의 예산안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일반회계에서 9.5% 증가하는 것과 세입의 부족을 메우기 위해 국채 발행을 2004년도의 2조5천억원에서 6조8천억원으로 늘리는 것이다. 재정의 경기조절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세입 내 지출이 아니라 철저히 양출제입(量出制入)의 기조 하에 편성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경제성장률이 살아나지 않자 재정증가율을 증가하는 경기 대응적 재정정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성장률은 1998년의 -6.7% 성장 이후 1999년에 10.9%로 반전하였다가 2001년에는 3.1%의 성장률을 맴돌고 있다. 냉온탕을 오가는 경제성장률은 국민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불투명하게 하는 요인이다. 무엇보다 지금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단순히 경기 순환의 하강 국면에서 성장률이 낮아지는 것이 아니다.


1997년 외환⋅금융위기를 계기로 드러난 한국 경제의 구조적 결함이 근본적으로 치유되고 있지 않으며 이를 위한 정부의 정책의지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러한 비전의 설정이 부족한 가운데 우선 재정의 지출을 통해 급한 불을 끄고 보자는 식의 재정 지출은 경계해야 한다. 세금이 매년 들어오기 때문에 올해 정책이 실패해도 내년에 또 자금이 들어온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문제는 한번 잡힌 주름이 두고 두고 재정의 압박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금융위기가 재정위기로 전가


경제위기 전에 정부예산은 세입과 세출의 균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비교적 보수적인 기조 하에서 운영되었다. 그러나 2005년 예산안은 재정건전성의 기조를 전면 수정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는 다른 OECD 국가에 비해 재정건전성은 아직 좋은 편이다. 문제는 악화의 가능성을 대비해야 한다는 점이다. 국가채무관리와 관련하여 재정이 성장잠재력을 잠식하여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공적 자금의 12조원이 국채로 전환되는 것이 금융위기의 구조가 재정위기로 전환되는 구조라는 점도 경계해야 한다. 1997년 이후 금융구조조정의 성과로 금융부분의 재무구조가 개선된 점을 지적하지만 그 대가로 금융부실이 재정부문으로 전가되어 재정 구조가 악화되는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공적 자금이 전부 국민의 부담으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금융구조조정자금의 회수률이 낮아질수록 납세자의 부담이 증가할 수밖에 없는 우발채무의 현실화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


2004년도의 경우 국채 이자 비용만 해도 6조4,131억원으로 일반회계 규모의 5.6%에 이르고 있다는 점은 향후 재정이 미래지향적 설계를 구상할 때 우리의 발목을 잡게 할 우려가 있다.


재정의 경직화를 우려


2005년도 예산안은 팽창예산의 기조 하에 다양한 사업들을 제시하고 있다. 성장잠재력의 향상, 저소득층 지원, 균형발전 등 다양한 참여정부의 정책 정향이 예산에 반영되어 있으며 주요 사업 전 분야에서 두 자리 수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사업의 증가 시에 몇 가지 우려해야 할 점이 있다.


첫째, 사회복지비가 32.4조원에서 37조원으로 14.4% 증가하는 부분에 대한 경계가 필요하다. 사회복지비 중에서도 자본적 지출비가 있을 수 있지만 특히 자격급여(Entitlement Expenditure)의 증가에 대한 경계가 있어야 한다. 자격급여는 일정한 자격을 법으로 정해두고 이러한 요건만 충족되면 지출이 되어야 하는 경직성을 가지는 항목이다. 미국에서 재정적자를 관리할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이 이 대목이었다.


2005년에 시행하려고 하는 기초생활보장 대상자 확대, 11세 이하 아동과 입양 아동에 대한 의료 급여 적용, 저소득층 무상교육 확대, 공적 노인요양보장제도 실시, 장애수당 범위의 확대, 농어민 건강보험료 부담 경감 확대 등은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사업이라는 점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재정의 부담을 지속적으로 유발한다는 점에서 철저한 관리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차제에 이러한 자격급여로 인해 의무적 지출이 발생하는 항목을 별도로 관리하는 체계의 구축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실 몇 해 전에만 해도 ‘생산적 복지’가 중요한 화두이었으나 지금은 더 이상 적용되지 않고 있는 것도 아쉽다.


1995년에 국민소득 1인당 1만 불을 달성한 이후 우리는 잃어버린 10년을 경험하였다. 2005년의 예산안에서 국민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담아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팽창기조로 갈 수 밖에 없었던 현실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재정 정책적 측면에서 낭비적 요소가 스며들지 않도록 정책설계를 하며 재정의 경직성을 관리하는 더욱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나눠먹기식 예산집행을 경계


둘째, 자립형 지방화와 균형발전을 위해 31.5조원에서 36.1조원으로 14.5%가 증가하고 있는데 어떻게 집행할 지에 대해 더욱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지방재정조정제도와 관련하여 포괄보조금 제도를 도입한다든지 교부금을 상향조정한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었다.


그러나 자금의 집행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공모식 방식의 과정에서 수혜자가 일회성의 자금을 확보하고 보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지방자치단체, 대학, 연구소의 경우에 프로젝트 베이스로 일단 자금을 확보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사후적인 관리가 되지 않는 것이다. 정부의 입장에서 얼마의 금액을 상금으로 내걸고 지원할 사업의 숫자를 미리 정해놓고 하다보면 수혜자들은 일단 자금을 확보하고 보자는 구유통 정치(Pork Barrel Politics)에 빠지게 된다.


정해진 사업의 숫자를 채울 것이 아니라, 이미 일정 수준에 도달하여 있거나 향후 성과가 예측되는 사업에만 지원하도록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집행부서 입장에서 예산을 전액 소진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버릴 필요도 있다. 무엇보다 이럴 경우 중요한 것은 사후적인 성과 평가 체계의 구축이다.


정부신뢰를 회복하는 재정정책의 수립이 절실


2005년은 미군기지 이전, 신행정수도 건설 등 대형 국책사업이 시작되는 해이기도 하다. 예산지출에 낭비가 없도록 사업 설계에 만전을 기해야 할 사업들이다. 사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다. 재정 정책에 있어서도 장기적으로 정부가 국민에게 희망과 믿음을 주는 기조가 확인되어야 한다.


예산안을 보노라면 “일년 단위”의 생각과 사업이 담겨있다는 느낌을 주게 된다. 장기적으로 정부가 의지를 가지고 추구해 나갈 정책기조가 담겨질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벤트성의 “이색사업”을 발표하기보다 재정의 성과를 발표할 필요가 있다. 예산의 투입을 통해 무엇이 달성되었고, 이를 지속적으로 추구하기 위해 향후 무엇을 할 것인지 의지를 밝히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인간이 만든 제도의 역사를 보면 처음에 도입될 때는 임시방편으로 우연히 만들었다가,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관행이 되고 결국은 기준이 되고 규범이 되는 경우를 목도하게 된다. 재정의 관행을 재검토하여 새로운 재정규율(discipline)을 정립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맥락에서 2005년도 재정팽창의 잔치 속에서 자칫 개혁의 의미가 희석될 것을 우려한다. 현재 공공부분 전반에 걸쳐 구조적 결함이 산재해 있으며, 구조개혁이 지연될수록 문제의 심각성이 더해 질 수밖에 없다. 새만금 사업, 지방공항 건설, 경인운하 사업 등 최근 실패한 대형국책사업에서 지혜를 얻어야 한다.


그리고 재정의 시스템을 재구축하기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 예비타당성 제도의 개선, 사전적 조정기구의 개선, 예산의 생애주기관리를 위한 체제 구축 등 재정관리 제도의 검토도 필요하다. 탈선한 기차에 속도를 내게 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2004.10.19)


*이 글은 ‘나라경제’ 11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