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EJ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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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 창조적 상상력의 빈곤(1)









필자는 중증 개혁병 환자다. 개혁피로증에 개혁무용론이 판치며 개혁은 그저 정치적 수사에 불과한 현실속에서 혼자만 소리높이 개혁을 외치고 있다. 필자에게만 한국경제의 신음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는 탓일까? 과거의 개혁은 잘못된 개혁이며, 그 개혁이 성과도 없이 좌초한 것은 파괴적 개혁의 결과라는 것이 필자의 진단이다. 필자는 새로운 창조적 개혁을 주장한다.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 작은 것이라도 좋으니 하나라도(!) 새로운 방식을 보여주고 성공적으로 정착시키는 개혁을 요구해온 이론적 근거이다. 그런 이야기들을 나눠보려 한다.


홍종학 교수


(경원대 경제학과, 경실련 재벌개혁위원장)  




 


개혁은 ‘새로운 질서의 창조’를 의미한다. 개혁이 질서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질서를 통해 사람들은 경제사회의 운용방식에 대한 공통된 인식을 갖게 되고, 이러한 인식의 공유가 거래비용을 축소하여 경제발전을 가능하게 한다. 사실 현대 경제사회의 제도나 기구 등은 대부분 이런 질서를 유지하여 거래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현대 경제학의 많은 과제들이 이러한 경제 질서의 중요성과 경제 질서의 효율성을 다루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개혁은 창조적 작업이다. 개혁이 단순히 과거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면 개혁 작업은 단순하다. 그러나 과거의 질서보다 더 우월한 새로운 질서를 창조해내지 못한다면 개혁은 무의미한 것이다. 더욱이 개혁은 새로운 질서를 매우 빠르게 만들어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즉 새로운 질서가 창조되지 않은 상태에서 과거의 질서가 무너지면 혼돈으로 인한 값비싼 비용을 치러야 한다. 이렇게 비용을 치르면서 사람들은 개혁에 대해 회의를 갖게 되고,  개혁은 불가능하게 된다.



 


과거의 질서는 오랜 역사를 통해 유지 발전되어 왔다. 이미 사람들은 과거의 질서에 길들여져 있고,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새로운 질서로 이동하기 어렵다면 현상유지(status quo)가 거래비용을 최소화하는 최선의 선택이 된다. 개혁세력에게 최대의 적은 현상유지라는 폭군인 것이다. 이것이 개혁이 불가피하게 당면해야 하는 내재적 어려움이다. 필자는 개혁에 대한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란 것은 이러한 현상유지의 폭군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경미한 것이며, 개혁의 실패를 기득권 세력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개혁의 본질에 대한 무지 때문이라고 주장해 왔다.



 


  파괴적 개혁의 허망함


 



  김영삼 정부 당시 남산 외인 아파트가 폭파되었다. 남산을 가리고 있던 크나큰 아파트 건물이 분진과 함께 내려앉는 화면이 반복적으로 방송되어, 그 장면은 필자의 뇌리에 깊게 각인되어 있다. 외인아파트가 사라진 남산의 모습은 시원스럽기 짝이 없지만, 따지기 좋아하는 필자에게는 외인아파트를 왜 폭파했을까하는 의문을 쉽게 떨쳐 버릴 수 없었다.


 


남산을 가리는 보기 싫은 건물을 폭파하는 것이었다면, 하이야트 호텔도 동시에 폭파했어야 하지 않을까? 외인아파트는 폭파하면서 북한산과 도봉산의 전경을 가리는  저 수없이 많은 아파트들은 왜 지은 것일까? 아름다운 한강의 조망을 해치는 아파트들은 또 어떤가? 그렇다면 그것이 ‘외인’아파트였기에 폭파한 것일까? 세계화를 부르짖던 대통령이 ‘외인’ 전용 아파트가 남산을 가리는 것이 싫어 폭파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김영삼 정부의 형편없는 환경정책으로 미루어 볼 때 남산을 살리기 위해 아파트를 폭파했다고 볼 수도 없다. 그래서 필자는 이 사건을 파괴적 개혁의 전형을 시각적으로 보여준 사례로 꼽는다.



 


  외인아파트의 폭파가 시작부터 잘못된 개혁이었다면, 김영삼 정부 최대의 개혁정책으로 손꼽을 수 있는 금융실명제는 근사하게 시작되었다. 어느 한가한 여름 날 저녁, 주식시장의 문을 닫은 후 전격적인 기자회견을 통해 대통령은 금융실명제의 전면 실시를 선언하였다. 김영삼 대통령의 주특기였던 ‘깜짝쇼’ 중에서 가장 환영받을 만한 대사건이었다. 오랜 기간에 걸쳐 수없이 많은 학자들이 그 필요성을 역설해 왔음에도 부패세력의 저항에 밀려 시도가 쉽지 않았던 금융실명제를 발표하던 김영삼 대통령의 모습에는 얇은 입술을 살짝 깨무는 듯한 특유의 입모습과 함께 개혁지도자로서의 결연함이 물씬 배어나 있었다.



 


그러나 폭락했던 주식시장이 회복되고 있는 와중에서 부패세력의 대반격이 시작되었다. 마치 건전한 영세상인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금융실명제의 미비점을 지적하는 듯 보이게 꾸몄지만 사실은 금융실명제의 근간을 공격하는 주장이 줄을 이었다. 결국 일반시민들의 불편은 그대로인 채 부패세력의 전유물인 무기명채권과 양도성예금을 허용하여 불법자금의 거래를 허용하는 반쪽짜리 금융실명제가 되고 말았다. 대선자금을 불법으로 보관하고 불법 총선자금을 조달해 사용하던 정권의 한계였을 것이다. 그러나 못내 아쉬운 개혁정책의 실패였다. 외환위기가 닥쳐오자 무기명채권을 대량 발행하여, 차떼기대신 책 한권 분량으로 대규모 불법자금을 전달하는 부패세력과 그들을 직간접적으로 돕는 관료들을 보면서 더욱 아쉬움이 컸다.



 


  필자는 상품권과 신용카드, 다액 현금까지 포함한 철저한 실명제를 주장한다. 그러나 금융실명제는 그 이전과는 확연하게 다른 새로운 경제 질서를 요구하며, 그 새로운 질서는 우리 모두에게 불편을 감수할 것을 요구한다. 사람이 넘치는 백화점 세일 때 카드를 사용하기 위해 일일이 주민등록증을 확인해야 하는 상황을 상상해 보라. 그러나 그런 불편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신용카드는 부정하고 부패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선량한 시민들이 조그만 불편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부패를 막아낼 수 없음을 충분히 각인시키지 못한다면 진정한 금융실명제는 성공할 수 없다. 아마 공중파 방송을 포함한 각종 언론 매체를 이용하여 석 달 열흘은 광고를 퍼부어야만 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어려운 일이지만 비용을 들이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는 정책이다. 왜냐하면 이미 선진국에서는 시민들이 기꺼이 불편을 감수하며 정착된 금융관행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반쪽자리가 되어버린 금융실명제 이후에는 창조적인 개혁정책을 찾아보기 어렵다. 필자는 김대중 정부의 개혁정책에 무엇이 있는지 잘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큰 인상을 받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는 지도 그리는데 있어서는 일가견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창조적 개혁의 측면에서는 전혀 성과가 없다.



 


  재산세 저항을 방조하는 관료




  오르기만 하던 부동산 가격이 공개념을 언급한 대통령의 한 마디에 폭락했었다. 그러나 공개념을 실천하는 정책 청사진은 점진적 재산세 인상에 불과했다. 서민들의 불안감을 반영하듯 다시 부동산 가격은 서서히 올라 이른바 10.29 대책 이전으로 돌아가 버렸다. 다급해진 정부에서는 서둘러 총선이 끝나고 며칠 후 서울 강남, 송파, 강동구, 성남 분당구에 주택거래신고제를 발동하였다. 보도가 있던 날 우연히 만난 어느 부동산 중개업자는 서슴지 않고 더욱 공고해진 야당의 강남벨트에 대한 보복이라고 내뱉었다. 크지도 않은 국가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부동산거래에 있어 이중적 잣대를 적용한 데 따른 부작용이었다. 실거래가 신고를 넓혀가야 하는 것은 장기적 정책집행방향임에도 마치 일부 지역 때려잡는 정책으로 인식된 부작용이었다.



 


  정책을 집행하는데 있어 일관성과 공평성을 우선하기 보다는 당국의 재량을 중시하는 관치주의 정책은 한국에서 일상화되어 있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는 것을 방조하다시피 한 관료들은 이렇듯 기묘한 정책을 만들어 냈는데, 이들 지역 주민들의 적개심은 관료들이 아니라 노무현 정부를 향하고 있다. 관료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노무현 정부의 멍청함이 자초한 패착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해 놓고서 문제가 더 커지면 그들은 기득권 세력 운운할 것이니 불필요한 갈등은 증폭될 수밖에 없다.



 


  부동산 가격의 재상승을 야기했던 점진적 재산세 인상 정책의 첫 단계가 실행에 옮겨지고 있다. 역시 강남벨트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 강남구에서는 구청장과 의회가 합심하여 50% 인하안을 통과시켰다가 논란이 일자 조금 낮추는 수준으로 바꿨다. 정부는 보유세 인상에 대해 굳건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지만 세금 인상을 환영할 시민은 없다. 다시 한번 멍청한 노무현 정부가 모든 비난을 뒤집어 쓸 것이다.



 


  부동산에 대한 재산세 인상은 매우 건전한 정책이다. 부동산을 투기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하며, 토지의 경우에는 가장 생산성이 높은 사용자가 토지를 사용하도록 하는 장치가 된다. 현재 한국의 부동산 가격은 거품이 많이 누적된 상황이며 이러한 거품이 붕괴될 때의 비용을 고려한다면 하루 속히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켜야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투기꾼 보다는 불안감에 집을 산 실수요자들이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세금인상에 대한 저항이 있기 때문에 이 저항을 최소화시키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요구된다. 자동차세보다 적은 재산세를 내고 있는 비정상적 상황임을 모든 매체를 총동원하여 알리고, 자동차세를 비롯하여 소득세, 법인세 등의 인하를 통해 적극적으로 노력해도 안정이 될까 말까한 상황에서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고 있는 무모함이 그야말로 처연하다. 



 


  이런 상황에서 양도세가 높은 상황에서 재산세를 인상해 부동산 거래를 위축시켰고, 이런 미숙한 정책으로 인해 기대하는 효과를 볼 수 없다는 야당의 주장이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결국 큰 이득을 본 투기꾼들이 (여기에는 다수의 권력자가 포함되어 있다) 안전하게 빠져나가도록, 재산세를 인상하는 대신 양도세를 낮추자고 목소리를 높이는 야당의 공세에 맞서기에 노무현 정부의 정책은 너무도 허술하다. 애시 당초 부동산 가격을 낮출 의도가 없었던 관료들 중에서 서서히 미소지으며 양도세를 낮출 만반의 자세를 갖추는 인사들이 곧 출현하리라 짐작된다.




  개혁의 본질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김영삼, 김대중 정부의 실책을 반복하고 있는 노무현 정부의 개혁에 대해 언제까지 기대하고 있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 점점 다가오고 있는 듯하다. (2004.6.4)




덧붙이는 글:


  이 글에서 사용된 질서는 경제학의 조정체계(coordination system)를 의미한다. 일반 독자들의 이해를 위해 질서라는 용어로 대체하였다.




(이 글은 경실련의 공식적인 견해와는 무관한 필자 개인의 견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