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EJ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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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 17대 총선이후의 한국사회의 진로
2004.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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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석 목사(경실련 중앙위 의장) 




 


  이번 17대 총선결과는 우리사회에 대단히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그것은 한마디로 산업화세력에 대한 민주화세력의 완전한 승리, 혹은 산업화세력으로부터 민주화세력으로의 지배세력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우리사회에서는 커다란 두개의 세력이 각축을 벌여왔다. 하나는 박정희 대통령을 원조로 하여 지금까지 내려온 산업화세력이고 또 하나는 과거 재야운동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민주화세력이다. 이 두 세력은 때로는 정면대결하고, 때로는 협력하거나 전략적인 제휴를 하면서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룩해 온 우리사회의 양대 세력이다. 그렇지만 그동안의 지배세력은 산업화세력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민주화세력을 대표했던 김영삼씨나 김대중씨가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산업화세력과 타협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김영삼씨는 3당합당을 통해 스스로 산업화세력의 수장이 됨으로써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김대중씨도 DJP연합이라는 산업화세력과의 제휴를 통해 정권을 거머쥐었지만 그것도 이인제씨의 출마로 산업화세력이 양분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고도 김대중 대통령은 임기내내 여소야대 정국으로 어려움을 겪지 않으면 안 되었다. 노무현대통령도 집권이후 계속해서 서 산업화세력의 견제를 받았으며 마지막에는 탄핵까지 당했다.


 


민주주의 과잉과 선진화의 과제


 


  그런데 이러한 산업화세력이 17대 총선에서 완전히 패배하였다. 패배의 원인을 대통령 탄핵행위에서 찾는 것은 피상적인 관찰이다. 패배의 근본원인은 한나라당이 부패한 기득권세력인 산업화세력을 대표하는 정당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17대 총선의 의미는 산업화세력의 부패와 기득권 安住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총선은 박정희 정권 이후 지금까지 우리사회를 지배해온 기득권세력에 대한 민주화세력의 승리를 의미하며 이렇게 해서 역사의 커다란 한 章이 넘어가게 되었다. 물론 아직도 부패와 기득권의 척결의 과제는 여전히 남아있지만 여야는 이번 17대 의정활동을 통해 서로 경쟁하듯 부패와 특권을 척결하는 일에 나설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총선 결과는 한번은 반드시 밟아야 했던 징검다리였고 부패와 기득권에 대한 심판이 이번에 이루어짐으로 해서 역사의 시간을 단축시켜 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총선결과는 긍정적으로 평가될만 하다. 그런 의미에서 노무현정부와 열린우리당, KBS와 MBC, 한겨레신문과 오마이뉴스, 시민단체들과 386세대, 노사모 등의 역할을 일단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총선이후 정국 주도권이 민주화세력에게 넘어가면서 이제부터는 민주화세력의 문제점들이 우리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지난 시기 산업화세력의 문제점이 <부패와 기득권>이었다면 민주화세력의 문제점은 <민주주의 過剩>의 문제다. 이 <민주주의 과잉>현상은 이념과잉, 포퓰리즘, 집단이기주의, 인터넷 언어폭력, 편향적 시민운동, 편가르기, 法治와 절차적 민주주의 무시, 과도한 평준화, 과도한 민족주의, 공동체와 전통의 파괴 등으로 그동안 표출되어 왔다. 그리고 지금 이러한 현상들은 度를 크게 넘고 있다. 그동안에는 한나라당의 부패와 기득권, 舊態의 척결이라는 명분 때문에 민주주의 과잉의 문제들이 어느 정도 가려질 수 있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 이제는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만들 것인가 하는 문제가 가장 큰 잇슈가 되고 있다. 지금 우리국민은 과연 우리나라가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고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을까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선진화>의 관점에서 민주화세력의 아마추어리즘, 민주주의 과잉 문제 등을 본격적으로 도마 위에 올리지 않으면 안된다. 말할 것도 없이 앞서 언급한 민주주의 과잉요소들은 선진화로의 전진을 가로 막는 장애요인들이다. 우리나라가 앞으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온갖 부패의 척결과 기득권, 특권의 배제가 이루어져야 한다. 뿐만 아니라 불로소득의 척결, 기회균등, 생존권 보장, 복지의 확대가 구현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이와 더불어 자유와 평등의 조화, 경쟁과 형평의 조화, 시장에서의 공정한 경쟁, 창의적 교육, 집단이기주의와 포퓰리즘에 대한 견제, 나눔운동, 사회안정과 튼튼한 安保, 法治와 질서유지, 열린 민족주의, 한미공조와 남북화해, 사회통합 등이 함께 실현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동안 민주화세력이 보여준 지나침과 편향은 이 세력이 앞으로 선진화의 주역이 되는 것이 至難할 것이라는 우려를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앞으로 우리민족의 최대의 과제는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가 주저앉지 않고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시대적 과제는 <先進化>다. 그래서 선진화를 가능케 할 사회세력, 정치세력을 창출해야 한다. 지난 17대 총선까지의 시대정신이 “기득권에 안주하는 부패한 산업화세력”에 대한 민주화세력의 추격이었다고 한다면 앞으로의 시대정신은 “민주화세력의 민주주의 과잉”에 대한 선진화세력의 도전과 추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선진화세력이 추격에 성공하면 우리나라는 선진국으로 진입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남미처럼 주저앉게 된다.



 


정치권의 과제


 


   그런데 기존의 정당들은 과연 선진화세력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까? 어느 당이 우리나라를 선진화하는데 主役이 될 것인가? 한나라당은 환골탈태에 성공해서 부패와 기득권, 그리고 보수에 안주해 온 산업화세력의 이미지를 청산하고 새로운 선진화세력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래서 부패척결, 온갖 기득권과 특권의 배제, 불로소득의 척결 등을 위해 결연히 나설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환골탈태를 이루어낼 것인가는 극히 의심스럽다. 열린우리당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열린우리당의 가장 큰 문제는 과연 <포퓰리즘의 유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에 있다. 열린우리당에도 포퓰리즘적 성향의 정치인이 있지만 그보다도 열린우리당의 주요 지지세력들이 포퓰리즘적이기 때문에 문제다. 게다가 이 당은 위기에 처할 때마다 포퓰리즘 세력과의 共助를 통해 문제를 극복해 오지 않았던가? 민주노동당도 크게 변해야 한다. 이번에 국민은 민주노동당의 가능성에 표를 주었지만 앞으로는 민주노동당의 실체를 보고 표를 줄 것이다. 지금부터 민주노동당은 국가경영을 담당할 수 있는 책임있는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민주노동당은 대표적인 포퓰리즘 정당으로 낙인찍힐 것이다. 그리하여 어느 당이든 자기혁신을 통해 선진화 정치세력으로 탈바꿈하는 정당만이 국민의 지지를 획득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기존 정당들이 이러한 자기혁신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국민은 선진화를 지향하는 새로운 정당이 만들어지기를 열망하게 될 것이다.


 


시민운동의 진로

 


  시민운동도 정체성의 위기를 겪게 될 것이다. 이제까지 시민단체들은 편향적 시민운동 혹은 홍위병 등의 비판을 받으면서도 나름대로의 주장을 가지고 부패하고 수구적인 巨野에 맞서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더 이상 그렇게 할 수 없다. 이제부터는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우선 시민단체는 과거보다 주목을 덜 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시민단체들이 필요이상으로 주목을 받은 데에는 국회의 비능률과 파행에 대한 반사적 이익의 측면이 있는데 국회가 제자리를 찾으면 시민운동은 자연히 역할이 줄어들게 된다. 또 시민운동은 권력에 대한 견제를 제대로 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총선에서 시민운동은 노골적으로 친여당적 입장을 취했는데 이를 보더라도 시민운동은 권력에 대한 견제보다는 권력과의 협력을 통해 문제해결을 추구할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러나 이점은 시민운동의 바른 방향이라고 할 수 없다. 과거 김대중 정부시절에도 시민운동이 권력에 대한 견제보다는 야당이 정부의 발목을 잡는 문제를 더 크게 생각하여 권력에 대한 비판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으며 그 결과 김대중정부는 말기에불행한 사태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또 시민운동이 앞으로 親열린우리당, 親민주노동당, 親한나라당으로 3분될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되면 시민운동은 더 이상 독립변수가 아니라 정치권의 종속변수로 전락할 것이다.  


 


  시민운동의 가장 올바른 길은 先進化의 주역이 되어 그 관점에서 충실하게 권력을 견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시민운동의 행보를 볼 때 이 길은 결코 쉽지 않다. 대부분의 시민단체는 여전히 진보의 입장에 서서 보수와 맞서는 방식으로 자신의 역할을 설정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보수와 진보간의 대결 구도는 청산되어야 할 낡은 구도다. 앞으로의 시민운동은 보수와 진보간의 대결구도를 넘어서서 선진화의 관점에 서야 한다. 이것이 바로 미래세력의 모습이다. 그리고 과거의 관점에서 서 있는 과거세력들이 선진화 시민운동을 보수적 시민운동으로 규정하면서 이를 폄하할 가능성이 큰데 선진화세력은 이러한 비판을 아랑곳하지 않고 소신있게 자기의 방향을 밀고 가야 한다. 이 점은 1989년 우리사회에 처음 시민운동이 등장했을 때 시민운동이 재야운동으로부터 개량주의로 매도당했던 사례와 유사하다. 이렇게 할 때 비로소 시민운동은 또다시 새로운 시대를 여는 역할을 감당하게 되고 이를 통해 우리사회를 선진국의 대열에 진입시키게 될 것이다. 


 


  선진화를 향한 탈바꿈은 단지 정치세력이나 시민운동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노동운동, 여성운동, 기업, 학계 등 우리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이러한 탈바꿈이 일어나야 한다. 그럴 때에만 우리사회는 지금의 경제위기, 사회공동체 위기, 민주주의 위기, 안보위기 등 총체적인 위기를 극복하고 미래를 향해 전진할 수 있다. (2004.4.23)


 


(이 글은 경실련의 공식적인 견해와는 무관한 필자 개인의 견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