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EJ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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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 노무현 대통령님,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죽어야…

“노무현 대통령님,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죽어야….”


 



                                                         이 광 택(국민대 법대 교수)


 


 



“이 회사에 들어온 지 만 21년. 그런데 한달 기본급 105만원. 그 중 세금등을 공제하고 나면 남는 것은 8십 몇 만원…. 햇수가 더 할수록 더욱더 쪼들리고 앞날이 막막한데. 이놈의 보수언론들은 입만 열면 노동조합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난리니 노동자는 다 굶어죽어야 한단 말인가.”


“이번 투쟁에서 우리가 패배한다면 어차피 나를 포함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 한 사람이 죽어서 많은 동지들을 살릴 수가 있다면 그 길을 택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위는 35미터 높이 크레인에서 129일째 고공농성을 벌이다 10월 17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부산의 금속노조 김주익 한진중공업 지회장이 남긴 유서의 일부이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가족들에게 아무 것도 해 준 게 없어 가슴이 아프다. 마지막 바람이 있다면, 내 한 몸 희생으로 노동탄압, 구속, 수배, 해고, 가압류라는 것들은 정말 없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님,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죽어야 이 나라의 노동정책이 바뀔 수 있겠습니까? 더 이상은 안됩니다. 제가 마지막 희생자가 돼야 합니다.”


위는 사측의 노조 탄압 등에 항의하며 10월 23일 분신 자살을 기도한 대구의 금속노조 세원테크 이해만 지회장이 남긴 유서의 일부이다.



 


“오늘 참석치 못한 동지들을 저의 희생으로 너그러이 용서해 주십시오. 파업에 참여하지 못한 조합원들도 우리와 같은 마음으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동지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봅니다. 그 흔한 단체사진하나 없네요. 수개월동안 동거동락한 기억과 추억과 감동 속에서 아무런 상의도 없는 제 행동을 너그러이 용서를 바랍니다. 10월 9일 중앙집행위에서 파업을 결의하였을 때 이미 오늘을 예고하였습니다. 참여하지 않은 조합원, 깨어나지 않은 조합원에게 몸으로써 느끼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의 몫을 제가 다하고자 합니다.”


위는 10월 26일 양대 노총이 주최한 ‘비정규직 노동자 대회’를 마치고 행진하던 도중 “비정규직 차별 철폐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분신한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노조 이용석 광주본부장이 남긴 유서의 일부이다.



 


지난 90년 한 해 동안 다섯 명의 노동자가 노태우 정권과 자본의 노동탄압에 항거해 분신 자살한 이후, 국민참여를 내세우는 노무현정권 아래서 다시금 처절한 참극이 벌어지고 있다. 새해 벽두인 1월 9일 두산중공업 노조원 고 배달호 씨의 분신 자결한 이래 네 번째이다. 배달호 씨의 장례식은 사건 발생 65일만인 3월 14일 치뤄졌다. 이에 앞서 두산중공업사태는 노동부의 막판 중재로 극적으로 타결됐다.


 


노사는 최대 쟁점이던 해고자 복직 및 징계문제에 대해 전향적으로 검토하고 또 △개인 손배․가압류는 장례후 7일 이내 소급 전부 취하 △조합비 가압류는 합의후 조합비 해당부분의 40%만 적용 등을 합의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블랙리스트 등 노조탄압 관행과 조합원에 대한 손배․가압류 문제가 전국적으로 쟁점화 되었다. 여론에 따라 10여개 기업이 노조에 대한 손배․가압류를 취하하고 대부분의 사업장이 개인에 대한 가압류를 해제한 바 있다. 그러나 6월 철도 파업에 대해 정부는 경찰력 투입과 함께 75억의 손배․가압류를 제기하였고, 집권 8개월만에 138명의 노동자를 구속하였고, 파업현장에 다섯 차례나 경찰병력을 투입하였다.


잇따른 노조 간부들의 극단적 행동은 손배․가압류, 형사고발에 따른 구속, 사측의 노조에 대한 압박이 강화되면서 일반 조합원에게까지 위협이 가해지자 조직력이 약한 노조의 간부들이 엄청난 심적 부담을 느껴 극한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노무현 정부는 출범당시 국민에게 약속했던 노동3권 행사에 대한 손배․가압류 탄압 개선, 노동쟁의에 대한 무차별 구속 관행 개선 등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를 포기하고 과거 군사정권에 못지않은 노동탄압으로 회귀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노동부 산하기관인 근로복지공단이 고용한 비정규직 노동자 이용석 씨의 분신은 노무현 정부 노동정책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노조에 대한 손배․가압류 제기는 지난 3년 동안 유행처럼 번져가 그 규모는 현재 46개 사업장 1300억원에 이른다니 탈출구가 없는 가난한 노동자들의 또 다른 분신이 이어질까 우려된다.



 


잇따른 노동자의 죽음의 항거와 관련해 정부는 10월 29일 법무·행자·노동 3장관 명의로 담화문을 발표하고 △손배·가압류는 사용자의 남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속히 관련법률 개정추진 △비정규직 차별해소·남용규제 보호법안 금년 중 국회제출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은 내년부터 단계적 시행 등 세 가지의 대책을 제시했다. 배달호 씨 분신 당시에도 손배․가압류 제도개선 추진, 비폭력 불법파업 불구속 수사, 파업현장 공권력투입 자제 등 이번보다 더 전향적인 대책을 밝힌 정부가 스스로 손배․가압류에 앞장서고 경찰병력투입과 무차별구속을 거듭하고 있어 정부의 담화를 노동계는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노동자의 자살항거를 진심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면 △공공부문에서 정부가 노조를 상대로 제기한 400억원대의 손배․가압류를 일괄 취하하고 △공공부문 비정규직 실태공개와 비정규직 차별해소 시행 등 정부가 취할 수 있는 가시적 조치를 우선 취하여야 할 것이다. 나아가 6월 28일에 있었던 철도파업에 대한 무력진압과 7월 17일의 전교조 위원장 구속 이후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노정관계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참여정부 출범 초기에는 △폭력·파괴행위자를 제외한 불구속 수사 관행 확립 △손배·가압류 남용 방지 △정당한 쟁의행위 범위 조정 등의 방향을 제시한 바 있지만, 어려운 경제사정을 이유로, 또한 재계나 보수언론의 저항에 밀려 노동정책의 기조가 선회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노무현 대통령이 경제인들과의 삼계탕 회동 이후 대화와 타협의 노사관은 노조의 도덕성과 책임성 결여를 비난하는 것으로 돌변했다는 비판이 있었다.


 


근로자의 단체행동권 행사에 경찰력을 투입하여 무력으로 진압함으로써 끝없는 사회갈등을 불러일으켰던 관행에 대해 국제노동기구(ILO)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충고도 계속되고 있다. 철도노동자들의 평화적 집회를 무력으로 해산한 것을 ‘법과 원칙’에 따른 것으로 보기 어렵다.



참여정부는 비판을 피하는데 급급한 나머지 노동정책에서의 갈 지(之)자 횡보를 하지 않았나 돌이켜보고 초심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2003.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