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실련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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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실련이야기] 탄핵 유감(有感)
2005.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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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연한 봄이다. 거리엔 병아리처럼 샛노란 개나리와 우아하고 성숙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백목련이 어우러져 싱그러움이 넘쳐난다. 예년에 비해 빨리 찾아온 꽃 소식에 동숭동 마로니에 공원은 특유의 젊음과 생동감에 취해 비틀거린다.


 나는 항상 고민한다. 전문성도 부족하고, 성실하지도 못한 내가 시민활동가로서 지녀야 할 덕목이 무엇인가? 그리고는 이내 다짐한다. ‘모르는 것은 배우고, 항상 노력하면 된다. 중요한 건 권력 앞에 비굴하지 않고, 약자와 소수자에게 항상 너그러워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이 있다. 내가 아는 선배, 동료 시민운동가들은 대부분 역동적인 사고와 합리적 이성이 균형을 이룬다. 분노할 줄도 알고, 분노를 조절할 줄도 안다. 내가 요즘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다. 분노하는 것도 이를 조절하는 것도 매우 어렵다. 아, 조화로운 삶이란….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인류보편의 합리적 이성의 원칙에 따라 법과 제도를 비판하고, 개선하며, 때로는 처벌을 감수하고서라도 불복종을 실천할 수도 있어야 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번 탄핵정국에 대해 시민운동가들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했었는지 난 아직도 고민 중이다. 나의 모든 태도에 정당성이 있었는지, 사회정의에 합치되는 것이었는지 등등이 말이다.  


  몇 년 전 아버님께서 대화 중에 불쑥 이런 말씀을 하셨다. 조선조에서 임금이 폐위된 경우가 몇 번 있었는지 아느냐는 것이었다. 언뜻 떠오르지 않았다. 들어보니 그런 경우가 세 번이 있었다고 한다. 삼촌에 의해 폐위된 노산군(나중에 단종으로 추존된다.), 폭정을 일삼다 폐위된 연산군 그리고 광해군이다.


대화 당시 이런 얘기들을 나누었던 것 같다. “조선왕조 500여년의 역사 속에 단 세 번밖에 그런 경우가 없었다는 것이 오히려 신기하다. 4?19 혁명에 의해 끝내 하야하고 만 이승만 대통령, 측근에 의해 살해된 박정희 대통령, 퇴임 후 구속 수감된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을 보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어찌 보면 우리가 역사의 매우 중요하고 드라마틱한 시간 속에 있는 것이 아니겠냐”라는 요지의 말씀이셨다.(아버님이 39년생이시니까 일제시대나 6.25 전쟁까지 염두에 두면 정말 어마어마한 시간을 살아 오신게다.) 


 갑자기 이러한 얘기를 꺼낸 것은 광해군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게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광해군과 노무현의 공통점>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내용이 제법 흥미로워 눈여겨 읽었던 기억이 있다. 내용은 뭐 이런 거였다. …


첫째, 광해군과 노무현 대통령은 왕실 서자(광해군은 후궁의 둘째였다.)와 상고 출신 재야 변호사로 모두 비주류 출신이다. 둘째, 광해군은 임진왜란이라는 상황에서 수많은 형제들을 물리치고 왕위에 등극하며, 노무현은 가망이 없어 보이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민경선이라는 기적을 발판으로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셋째, 광해군은 임진왜란에서 공을 세우고도 적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명나라는 왕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한다. 노무현은 경선에 승리하고도 자신을 후보로 인정하지 않는 후단협에 의해 시련을 맞는다. (중간생략)


마지막으로 광해군을 폐위로 몰고 간 인조반정의 명분과 탄핵 명분의 공통점이다. 1623년 3월 12일 인조반정이 일어났고, 그 명분은 명나라를 등지고 소위 중립외교를 펼쳤으며,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정적을 제거했고, 무리한 궁궐 공사로 인해 민생을 파탄시켰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명분은 국민 모두가 아는 것이니 생략하기로 하자 …


날짜는 그렇다 해도 인조반정의 명분을 보고는 사뭇 놀랐던 기억이 있다. 물론 우연이고, 비약이며, 억지로 꿰어 맞춘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380여 년 전의 광해군 사례를 들추어내어 현실을 비추어보는 글쓴이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역사적인 사건을 들어 탄핵의 부당성을 보다 널리 알리기 위한 의도였을까? 아니면 유배 끝에 생을 마감하는 광해군을 들추어내서 탄핵사태의 비극적 결말을 예고하는 탄핵찬성론자의 유언비어일까?


 논란의 소지는 차치하고서라도 17대 국회를 구성하게 될 국회의원들은 정부에 그토록 비판적이기만 하던 시민사회단체들과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았던 일반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인 건 무슨 이유인지 차분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 국민들은 현명하다. 항상 시대정신을 외면하지 않고, 역사의 정 방향을 선택해 왔다. 민심은 천심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민의를 대표하는 국회가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을 국민적 합의 없이 탄핵 소추하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것이 국회였는지, 국민의 여론이었는지는 지켜볼 일이다. 우리는 현재 대통령 탄핵소추라는 사상 초유의 엄중한 사태에 직면한 대한민국 역사의 중심에 서있는 것은 분명하다. (2004년 4월12일)


강지형 (정책실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