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실련이야기

보다 정의롭고 모두가 행복한 미래사회를 위해 달리는 경실련의 최근 이야기를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경실련이야기] “여보세요? 좀 천천히 말씀해 주세요.”
2005.07.05
9,161

어제  점심후 자리에 앉아서 인터넷 검색을 하고 있는데, 경실련 대표전화로 전화가 울렸다.
큰 목소리로 중년의 아주머니가 쉴새없이 혼자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주의깊게 들으려 했으나, 목소리가 너무크고 말이 빨라 “천천히 말씀해주세요’라고 몇번 이야기 했는데도, 나의 목소리는 아주머니의 음성에 묻혀 버렸다.


아주머니의 이야기 전개는 사건순도, 시간순도 아니다. 주제도 다세대주택과 관련된 것부터 시작해서, 여야, 사법부, 행정수도까지 거론하는데, 정말 좀처럼 집중해서 듣기 어려웠다.


나에게 도무지 틈을 안주고, 내가 뭐라고 말을 하던 상관없이 아주머니의 일방적 이야기는 수도꼭지에서 물이 콸콸 나오듯 해서, 나중에는 귀가 아플정도였다. (수화기를 살짝 귀에서 때자, 주변사람들이 다 들릴정도였다.)


난 대화하기를 포기했다. 이런 성격의 전화가 오면 언제나 그러하듯이..


경실련으로 걸려오는 전화


난 경실련에 처음 입사했해서 부정부패추방운동본부(지금의 ’시민권익센터‘)에서 활동을 시작하였다. 예고없이 방문하는 민원, 정확한 담당부서로 연결시켜 줄수 없는 전화는 모두 이 부서에서 담당하고 있었다.


개인 문제를  시민단체가 대신 나서서 해결해주길 원하는 시민,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청와대- 부패방지위원회- 국회등 모든 곳으로부터 민원제기를했음에도 불구하고 해결되지 않은채 박스만한 민원서류를 들고온 민원인, 시민단체가 정부의 활동을 저해하는 불필요한 집단이라고 주장하는 시민, 밤만 되면 약주한잔하고 거칠게 전화주는 시민, 대학 수업의 리포트를 위해 정보를 가공, 요약해 달라는 대학생 등..


가장 난감한 전화


여러 목적을 갖고 많은 시민들이 경실련에 전화를 준다. 전화중 가장 난감한 성격의 전화가 있는데, 바로 이런 전화다. 


– 이혼후 살가망이 없다고 자살하겠다는 중년남성의 퇴직한 고위공직자.


 난 그에게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서 그만큼(고위공직자) 잘 살았으면, 이제 고생도 해볼때가 아니냐고 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사람인생이 한평생 순탄할 순 없다는 우리 어머니 말씀을 인용했다. 굳이 아프리카에 굶는 어린이가 몇만명이다라고 까지 말하지 않아도 그분은 금새 자신의 처지에 대해 받아들이는 듯 했다. 고맙다고까지 말해준것이 오히려 내가 고마웠다.


– 약주 한잔 걸치고, 욕설을 퍼붓는 사람


제발 욕은 안했으면 좋을 텐데. 좋게 들어주고 싶어도 어쩔수 없이 기분이 나빠진다. 그냥 끊는다.


– 친한사람들에게 사기당한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  


설마 형이 자기를 속일줄 몰랐다고 울음을 터트릴땐 정말 난감하다. ‘정말 속상하시겠어요. 그래도 기운을 차리셔야죠’밖에 아무말도 할 수 없다.


– 오늘처럼 도무지 들으려 하지 않고, 쉴세없이 자기 이야기만 하는 사람


처음 경실련에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때는, 너무나 당황스럽고 나또한 감정적으로 동요했었다.


‘ 무슨말이야?? 내말은 도통 듣질 않네, 말이 안통하는군아~ 짜증나’
‘ 바쁜데…이 얘길 언제까지 듣고 있어야 하나?’
‘ 나의 논리로 설득이 가능한 사람이 아니다. 아~ 빨리 끊었으면’


때론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거나, 힘들게 하거나, 곤란하게 하는 전화들…


난감한 전화, 왜 하는 것일까?


‘수 많은 곳중 시민단체에, 그것도 경실련까지 전화를 하게 됐을까?’라는 의문을 언젠가부터 갖게 되었다.


‘왜?’


그들은 말하고 싶은데, 말할 상대가 없었다는걸 뒤늦게서야 깨달았다.


‘ 논리적으로 듣고, 경실련의 주장을 이해시키자’의 자세는 필요 없었던 것이다.
‘ 당신의 주장이 일관성이 없잖아요. 그건 그렇지 않지요.’라고 설득할 필요도 없었다.


어쩌면..이 난감한 전화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기때문에. 말을 하고 싶어서 전화를 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엇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전화가 오는것에 대해 나 나름대로의 답을 달았다.


‘왜 전화하는것일까?’  – 아마도 들어달라고 전화했겠지. 아무도 안들어 주니깐..


‘경실련에는 어떻게 알게 됐을까?’    –   여기저기 전화를 많이 해보지 않았을까?


‘ 내가 해줄수 있는건 뭘까?’  –  공감적 이해? 이건 좀 어려운데… 내가 관심갖고 들어주고 있다는것을 느. 누군가 들어주고 있다는 것이 이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다른 누군가는 안들어주니깐 여기까지 전화한게 아닐까? ‘


‘ 매일같이 전화오면 어쩌지?‘  -‘ 매일같이 받아주면 되지. 바쁘긴 뭐가 바뻐! ‘


그러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경실련은 전화담당자가 없다. 전문상담원도 없다. 간사부터 국장까지 모두가 전화를 번갈아 받는다.  오늘 오전에도 역시 어제 전화주신 아주머니로부터 세번이나 전화가 왔다.
전화주신 아주머니껜 죄송하다. 아주머니가 말씀하신 내용을 내가 전부 이해하지 못해서.
그냥 그분의 말씀에 잘 호응해주고 싶었다. 내가 당신의 말을 잘 듣고 있노라고.


” 네~ 그러셨어요?“
“ 속상하시겠어요 ”
“네~ 잘알겠습니다.”


30분 이상이 걸릴지도 모른다. 내일도, 아니면 매일 전화가 올지도 모르겠다.
공감적 이해까진 못하더라도, 안부라도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2005년 4월6일)


노정화 (커뮤니케이션팀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