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실련이야기/경실련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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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실련이야기/경실련이야기] 아름다운 이방인
2005.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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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를 당한 이후 계속 몸이 좋지 않아 오늘은 조금 늦은 시간에 출근하게 되었습니다.

늘 이른 아침 출근길은 그야말로 전쟁처럼 힘들었는데 출근인파가 한차례 휩쓸고 지나간 터라 오늘 출근길은 조금은 여유 있는 출근길이 되었습니다.

지하철을 타자마자 몇 개의 빈자리 가운데서 출입문 가까운 곳에 자리를 택해 몸을 의지했습니다.

두어 역을 지나쳤을까? 한 할아버지께서 남루한 옷차림으로 지하철 여기저기에 버려져 있는 무료 신문을 모으시며 제가 앉은 자리를 지나치셨습니다. 할아버지의 손에는 금방 한 아름 폐지가 가득하게 되었고 욕심이 나셨던지 그래도 할아버지는 계속해서 신문을 모으셨습니다.

제가 앉아있던 자리를 지나치신지 얼마 되지 않아 무게를 견디지 못한 할아버지는 손에 들고 있던 신문들을 바닥에 쏟으셨고 많은 신문들이 지하철 바닥 여기저기 흩어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안쓰러운 눈빛으로 할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자리에서 일어나 할아버지를 돕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였구요.

그 때 제 앞자리에 앉아 있던 한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할아버지가 줍고 계신 신문들을 줍기 시작했습니다.

그 청년은 흩어진 신문들을 모아 출입구 근처에 차곡차곡 쌓았습니다. 아마도 모아둔 신문들을 전동차 밖으로 옮기기 쉬운 곳에 모아두는 듯 했습니다. 떨어진 신문들을 정리하자 그는 다시 조용히 앉아있던 자리로 돌아가 친구의 옆에 앉았습니다.

그 청년은 외국인 노동자였습니다. 그가 입고 있던 옷은 할아버지가 입고 계셨던 옷만큼이나 낡았고 우리나라의 추운 날씨가 견디기 힘들었는지 따뜻한 지하철 안에서도 털장갑을 두 손에 끼고 있었습니다. 수염을 깍지 않아 까칠한 그의 얼굴은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짐작케 했습니다.

순간 제 자신이 무척이나 부끄러웠습니다. 제가 했어야 할 일을 그가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 이웃의 아픔을 이방인인 그가 위로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도와야할지를 고민하고 있었을 때 그는 행동했습니다.

다시 자리에 앉은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얼굴은 까칠하지만 참으로 아름다운 얼굴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말이 통하지 않는 그를 향해 손을 흔들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감사를 표하는 할아버지를 향해 낯선 이방인은 따뜻하게 웃으며 머리를 숙였습니다.

사람의 아름다움은 생김에 있지 않음을 다시 한번 생각했습니다. 사람의 아름다움은 가진 재물에 있지 않음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일어나 할아버지를 돕지 못한 내 모습이 부끄러웠지만 건조하게 메말라 가던 나의 삶에 그 이방 청년은 참 큰 선물을 주었습니다.

마음으로나마 그 청년의 이 땅에서의 삶이 행복하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이젠 내가 그가 보여준 친절과 사랑을 베풀면서 살아야지 하고 다짐해 보았습니다.


조덕현(시민감시국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