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실련이야기/경실련이야기

보다 정의롭고 모두가 행복한 미래사회를 위해 달리는 경실련의 최근 이야기를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구)경실련이야기/경실련이야기] 헉! 벌써 복귀한지 1년이 다 되가네…
2006.04.27
9,555

당연한 말이지만 세월은 참 빠르다. 불혹을 넘어버린 나이 탓일까? 아니면 세월을 앞당겨살아야 하는 상근운동가의 직업 탓일까?


간은 분명 4월의 끝자리이건만 책상위의 달력은 5월 지방선거를 넘어 6월 임시국회 대응 스케줄로 빽빽이 차 있고 마음은 벌써 여름을 지나가고 있다.

나는 함께하는 동료들과 조직의 배려로 1년 6개월의 꿈같은 외유를 보내고 지난해 9월 경실련에 복귀했다. 타성(?)에 젖은 정신을 새롭게 하고 내 자신의 전문성도 키우며 후배 운동가들에게 뭔가 재 충천할 수 있는 다양한 길을 개척해야한다고 강변하면서 떼를 썼다. 그래서 1년은 한국에서 6개월은 미국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을 따라가랴 탈모증공포에 시달리며 이마 위에 붙어 있는 머리털 개수에 연연하는 처지가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일상에서 벗어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참으로 큰 행복이었다. 

이렇듯 잠깐의 외유는 행복이었지만 마음속에 늘 부담을 갖게 했다.
‘경실련에 복귀할 때 조직과 동료들에게 무엇으로 힘이 되지?, 그동안 동료들이 뺑뺑이 돌았으니까 두배로 일하는 건 기본일거고 멋있고 쿨하게 일할 수 있을까? 시쳇말로 외유기간의 혜택(?)을 뭘로 보답하지….’

외관상 보면 일은 다행히도 많이(?) 하고 있는 것 같다. 지난 1월 첫 상집회의에서 상견례를 하는데 동료 실/국장들은 다들 짧게 소개하는데 “저는 정치.행정,입법 분야 실무를 맡고 있는 시민입법국장이면서, 갈등해소센터와 통일협회 사무국장입니다”라고 주저리주저리 말해야 했다. 혹여 소속을 빼먹으면 해당위원회 선생님들이 사무국에서 비중을 두고 있지 않는 것으로 생각할까봐 10여초 동안에 끝날 소개말을 매번 민망하게도 길게 한다.

그리고 나와 함께 일하는 부서원들은 그야말로 외인구단이다. 같은 부서원이어서 회의를 함께 해야 하건만 서로 다른 주제에 대해 공동으로 회의한다는 것은 담당 간사들에는 엄청난 고문이다.

통일의 기수 모 간사에게 의정활동평가 사업에 함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엄청 눈치 보이는 거다.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국장님은 일대일 회의를 참 좋아 하시네요”라고 말했을 때 속으로 ‘아니거든…….함께 모여 회의를 자주하면 애들이 눈치를 주거든…’하고 되뇌였다.

다행히도 최근엔 지방선거 대응체계로 부서 일을 조정하여 부서회의를 매일 함께 한다. 그래서 참 좋다. 그래도 부서장으로서는 고민이 있다.

얼마 전 갈등해소센터 간사를 맞고 있는 친구가 자신을 “저는 시민입법국 누구누구입니다”라고 소개하였다. 지방선거 관련하여 2달 전 부터 시민입법국 일만 하다 보니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어~, 쟤는 6월부터 갈등해소센터 일을 다시 해야 하는데….쟤 저러다가 새로운 사업할 때 헤메는 거 아닌가”라고 걱정 아닌 걱정을 한다.

연관성이 많지 않은 사업들을 동시에 추진하다보니 부서원들 눈치도 보고 쓸 때 없는 고민도 하지만 그래도 일은 외관상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아서 1년 6개월간의 혜택에 대한 마음의 부담은 조금은 덜어 버린 것 같다. 근데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동료들이 그렇게 봐주는 건지는 모르겠다. 사실 후자가 더 중요한데 말이다.

일을 다시 시작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들이 있다. 10여년의 경실련 활동에서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던 것들이다.

하나는 강남에 거주하는 공직자들의 재산변동 현황을 조사 분석하는 사업에서 예기치 못한 실수를 했다. 적지 않은 간사들이 힘들게 준비한 사업인데 깔끔하게 마무리하지 못해서 경실련회원들과 함께 일을 했던 간사들에게 피해를 주었다. 참으로 미안하고 송구스러운 일이다.

또 하나는 연 6800만으로 책정된 서울시의원들의 의정비 재조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서울시의회 앞에서 열었는데 기자가 한 명도 오지 않았다. ‘기자가 없는 기자회견이라…’ 참으로 민망하고 황당했다. 그 동안 일하면서 언론에 눈치보지 않고 언론이 따라올 수밖에 없는 사업을 당당하게 하자고 누차 강조했던 나였건만….. 이른 아침에 참석한 동료들에게 미안한 일이었다. 그래도 해야 할 일은 해야만 한다. 그리고 유일한 국민기자(?) 모간사의 취재로 씁쓸함은 덜어질 수 있었다.  

지방선거대응을 바로 목전에 두고 믿었던 모 부장의 퇴사는 시간의 흐름에 고속 패달을 장착시켰다. 운동 상근자로서 살아간다는 게 무척 힘든 거여서 이직이 잦은 게 시민단체 현실이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인력의 공백은 참으로 힘든 시련이다. 지난 1년 6개월의 외유를 통해서 누렸던 여유와 공력이 일시에 날라 가버린 것이다. 아마 일당백으로 버텨준 모 간사가 없었다면 계획했던 일들은 포기해야 했을 거다.

복귀하고 나서 그렇게 9개월의 시간은 흘러갔다. 광고 카피처럼 신문대신 던져주고, 남의 벨 대신 눌러주고, 후배에게 차 한잔 타주는데 기껏해야 몇 십초라는데 바쁘게만 살아가는 내 모습을 돌아다보며 이젠 좀 더 여유 있게 살아야지라고 다짐해 본다.

사실 다시 일을  시작한다는 건 내게 큰 의미지만 조직적으로 보면 뭐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냥 맡겨진 일들을 성실하게 하면 되는 것이다. 복귀한지 1년이 다되어 간다는 게 뭐 그리 대단한 것인가? 

자주 인용되는 말을 떠올려본다. 
“사람은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고 웃어서 행복해진다”는 말.

남은 한해는 많이 웃고 싶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가족과 동료들에게 작은 웃음이라도 자주 선물하고 싶다. 웃기는 재주가 없는 게 뭐~ 문제겠는가?


이강원 시민입법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