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실련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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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실련이야기] 거기 당신, 제대로 소통하고 계신가요?
2008.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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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해소센터 업무를 맡고 있다 보니 평소에도 주변에서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으면 인간적 공감 더하기 직업적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다가서게 된다. 그리고 배운 대로 귀를 기울이고 이야기를 듣는다. 집중해서 한참을 듣고 있다 보면 ‘의사소통이 안돼서 그렇다’는 결론에 이르기 일쑤다.

처한 상황은 각기 다르지만 많은 경우 갈등해소의 답은 ‘의사소통’에 있다.

사기를 치려했거나 처음부터 거짓말을 할 생각이 아니었다면 왜 모두들 소통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통이 안돼서 답답하고 짜증나고 괴로워하는 걸까?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보통 사람들이 말하고 듣는 방식을 관찰해 보기로 했다.

저녁 7시 30분 극장 앞, 남자를 기다리고 있는 여자, 멀리서 뛰어오는 남자

여자: “넌 어떻게 맨 날 약속시간에 늦니?”
남자: “미안해, 차가 너무 막혀서.”
여자: “퇴근 시간에 차 막히는 게 하루 이틀이야? 그걸 말이라고 해?”
남자: “……미안. 영화시작 했겠다. 얼른 올라가자”
여자: “넌 너무 책임감이 없어. 다른 사람 생각은 안 하지? 항상 그런 식이야.”

이후 둘의 대화는 어떻게 이어질까? 남자가 약속시간에 늦은 것을 무척 미안하게 생각한다면 한 번 더 사과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기 보다는 아마도 화를 낼 확률이 높을 것이다. 여자는 성향에 따라 ‘적반하장도 유분수’ ‘늦은 게 누군데’라는 말로 수위를 높일 것이고 둘은 저녁 시간을 망치고 감정이 상한 채로 헤어지게 될 것이다.

다른 방식의 대화가 가능했을까?

7시 영화를 보기로 약속했는데 상대방이 30분 늦게 뛰어온다면?

경우의 수를 나눠보자. 주어진 상황과 대화만으로는 여자의 속내를 알 수 없으니.

1. 여자가 보고 싶어 했던 영화이고 그래서 여유 있게 영화를 처음부터 보는 것이 중요했다면 화가 날 것이다.
2. 여자에게 영화는 그저 시간을 보내려는 수단이었고 남자를 만나는 것이 중요했다면 적어도 기분이 나쁘거나 화가 나지는 않을 것이다.
3. 여자가 영화와 상관없이 약속시간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화가 날 것이다.

물론 이 세 가지에 속하지 않는 상황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만일 1의 경우였다면 위의 대화로 이 둘은 제대로 의사소통을 한 것일까? 남자는 여자가 화가 난 이유를 정확히 이해했을까? 여자는 남자가 늦은 이유를 정확히 이해했을까? 이 둘 사이에 비슷한 상황이 다시 발생하지는 않을까?

대답은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생각하는데 동의하시는지?

여자가 다른 식으로 말문을 열었다면 어땠을까?

여자: “7시 영화를 보기로 하고 30분 늦게 나타나면 어떡하니?”
남자: “미안해, 차가 너무 막혀서.”
여자: “퇴근 시간에 차가 막히는 건 예상했어야지. 보고 싶었던 영환데 너 때문에 놓쳤잖아.”
남자: “미안, 이렇게 막힐 줄은 몰랐어. 버스가 너무 막혀서 중간에 택시로 갈아탔는데 소용없더라.”
여자: “……”     
남자: “얼른 올라가자”
여자: “어차피 30분이나 늦었는데 우선 밥부터 먹고 다음 회를 보는 게 어때?”
남자: “그래? 그러지 뭐. 배도 고픈데. 내가 맛있는 거 살게”

이리하여 여자는 여유 있게 보고 싶었던 영화를 봤다는 아름다운 이야기~
남자는? 맛있는 저녁을 사는 것으로 미안함을 덜었다는 역시 아름다운 이야기~

갈등해소센터 간사라고 소개하면 상대방으로부터 오해로 인한 부정적 반응을 접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협상을 타협으로, 왠지 뭔가 양보하고 절충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인 듯  한데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내가 부딪치는 문제들을 유연하게 처리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다행히 시간차를 두고 한 발 늦게 따라가고는 있지만.

예전에 즐겨 부르던 자우림의 노래가사를 천천히 음미해 본다.

우리 사이엔 낮은 담이 있어
내가 하는 말이 당신에게 가 닿지 않아요.


내가 말하려 했던 것들을 당신이 들었더라면
당신이 말할 수 없던 것들을 내가 알았더라면


                                                                         <강영실 경실련 갈등해소센터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