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실련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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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실련이야기] 나의 버킷 리스트
2008.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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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킷 리스트 : 광우병에 걸려 병원에 입원도 못하고 한반도 대운하에 뿌려지지 않기


세상이 하 수상하여 간만에 친구와 술을 한잔 하게 되었다. 친구는 최근 봤다는 ‘버킷 리스트’라는 영화 얘기를 끄집어냈다. 잭 니콜슨, 모간 프리먼이 주연을 맡은 영화로 ‘버킷 리스트’란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목록’이라고 한다. 같은 병실을 사용하게 된 두 주인공이 암으로 1년 정도의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고, 버킷 리스트를 실행한다는 내용이란다.


그러면서 대뜸 “너의 버킷 리스트는 무엇이냐?”라고 묻는다. 깊이 생각해 보지 못해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라는 틀에 박힌 답변을 하는 정도였다. 물론 생각 없다고 구박을 받기는 했지만 시간을 두고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고 얼버무렸다.


친구는 자기의 버킷 리스트가 생겼다고 말한다. “나의 버킷 리스트는 미국산 소고기 때문에 광우병에 걸려 민간의료보험으로 병원에 입원도 못하고 죽은 다음, 화장되어 한반도 대운하에 뿌려지지 않는 것이야.” 잠시 멍할 수밖에 없었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봤던 내용이 계속 맴돌아 자신의 버킷리스트로 삼았다는 것이다. 친구의 버킷 리스트는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죽기 전에 해서는 안 될 것으로 변해있었기 때문이다.


‘희망의 버킷 리스트’가 암울한 현실을 반영하면서 ‘절망의 버킷 리스트’로 변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더욱 씁쓸한 것은 그것이 가까운 미래에 현실로 다가올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건 너의 버킷 리스트만이 아닌 것 같다”라고 말하고 희망 없는 세상을 안주삼아 그렇게 술잔을 기울였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활동하면서 요즘처럼 ‘평화’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본 적도 없는 것 같다. 요한 갈퉁은 평화의 개념을 소극적(negative) 평화와 적극적(positive) 평화로 구분하여 설명하였다. 전자는 전쟁을 포함한 직접적 또는 물리적 폭력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며, 후자는 간접적 또는 구조적 폭력 및 문화적 폭력까지 없는 상태를 규정하였다.


‘평화’가 물리적 폭력의 부재를 넘어 사회·구조적 폭력과 문화적 폭력의 부재까지 확장되는 개념이기에 미국산 소고기 개방, 민간의료보험의 등장, 국민적 합의 없는 대운하의 건설 등 일련의 정부 정책은 국민들에 가하는 엄청난 폭력이다.


미국산 소고기가 연령제한 없이 6월부터 수입되면 국민을 광우병의 위험에 노출시키고, 민간의료보험의 등장과 당연지정제가 폐지된다면 대부분의 국민은 치료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생존권을 위협받는 심각한 폭력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남북관계의 발전이나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것보다 우리사회의 이러한 암울한 현실을 바로잡는 것이 ‘한반도 평화’의 길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만약 남쪽이 거대한 ‘광우병 임상실험장’으로 변해버리고 ‘프리온(Prion)’이라는 광우병 전염인자가 떠다닐 대운하를 가지고 있다면, 북쪽에서는 비무장지대를 더욱 두텁게 하고 우리를 외면할 것이기 때문이다.


주말을 이용해 ‘버킷 리스트’라는 영화를 볼 계획이다. 시한부 인생에서도 희망을 품고 ‘나는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되묻는 영화를 보면서, 암울한 세상이지만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나의 길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고 싶다.


핵무기만큼이나 위험한 상황을 만들어 가는 정부의 정책에 ‘평화’라는 진정한 의미가 깃들어 가기를 기원한다. 그래서 사람들의 ‘버킷 리스트’에 “광우병에 걸려 병원치료도 제대로 못 받고, 한반도 대운하에 뿌려지지 않는 것”이라는 절망의 목록이 아닌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희망으로 가득 찬 내용들이 넘쳐나기를…


<김삼수 통일협회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