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실련이야기/경실련이야기

보다 정의롭고 모두가 행복한 미래사회를 위해 달리는 경실련의 최근 이야기를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구)경실련이야기/경실련이야기] 명박산성을 앞에 두고
2008.07.24
10,212


정책실 부장 임지순


2008년 6월 10일 오전 7시, 여느 때와 다름없이 광화문을 통해 출근하다가 광화문 대로에 세워진 컨테이너 박스가 눈에 들어왔다. 도대체 저게 무얼까? 궁금증이 생겨났다.


이미 3차선까지 점령한 컨테이너 박스로 종로에서 서대문으로 향하는 길은 광화문 사거리에서 종로 3가까지 길게 차가 늘어섰다. ‘도대체 저게 뭐지? 이제 조금 후면 본격적인 출근시간인데, 이곳은 다른 때보다도 훨씬 심각한 교통지옥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전 8시 30분, 다음에 올라온 기사를 통해 컨테이너 박스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610항쟁에 맞춰 광우병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100만 촛불집회를 대비하여 시민들로부터 청와대를 사수하기 위해 그 거대한 가로막을 설치했다고 한다.


 더군다나 그 컨테이너 박스들은 아침에 봤을 때보다도 더 큰 위용을 자랑하며 도로를 완전히 점령해 버렸다. 사진 속의 그림이 2008년 현재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인지 믿어지지 않는다. 교통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심각한 상태였으며 그로 인해 많은 시민들이 지각하였다는 기사도 눈에 띈다.



오전 11시, 서울광장에는 이미 보수단체 회원들이 속속 집결하여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집회장소를 선점하였다. 왜 하필, 쇠고기 수입반대를 위한 대규모 촛불집회가 예고되었던 오늘, 그들은 동일한 장소에서 모임을 가진 것일까? 그들 모임의 성격이나 배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오후 4시, 사무실 밖이 얼마 전부터 시끄럽기 시작했다. 대학로에서도 보수단체 회원들의 집회가 있다고 한다. 성능 좋은 스피커가 이렇게 원망스러울 줄이야. 일도 손에 안 잡히고 마음도 어수선한 참에 진보신당의 칼라TV를 틀었다.


서울광장과 광화문 정문에는 이미 많은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고 있었다. 카메라 저 뒤편으로 보수단체 회원들의 모습도 보인다. 이러다 보수단체 회원과 시비가 붙거나 폭력사태가 발생하면 어쩌나, 누군지 모를 그들의 의도대로 오늘 행사에 대한 본질이 흐려지게 되면 어쩌나, 걱정이 앞선다.



저녁 6시 30분, 광화문으로 향하기 위해 차로로 나왔다. 성능을 과시하던 스피커의 실체도 확인하고 집회에 참석한 어르신들도 보았다. 종로에서 혜화로타리 방향의 상하행선이 모두 차단되었고, 빨강, 노랑, 파랑, 색색의 스티커를 옷에 붙인 어르신들이 찻길에 앉아계신다. 언뜻 보기에도 꽤 연로한 분들인데, 어디에서들 이렇게 많이 오시게 되었을까?



저녁 7시, 서울 지하철 1호선 시청역에서 내렸다. 개찰구를 빠져나와 밖으로 나가기 위해 출구계단을 오르려는데 나와 같이 계단을 오르는 시민들로 계단이 가득 메워졌다. 한 발 한 발, 한 계단 한 계단, 중간 중간 멈춰 섰다가 다시 오르기를 반복하면서 겨우 밖으로 나왔는데, 아! 그 자리에서 나는 한동안 얼음처럼 굳어있을 수밖에 없었다.


인도와 차도를 막론하고 모든 길을 가득 메운 인파의 위용에 압도당하고 만 것이다. 그 날 그 자리에 계시지 않았던 분들도 뉴스기사와 인터넷에 게시된 사진을 통해 그 거리에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모였었는지 이미 알고 있겠지만, 내가 지하철 출구를 막 빠져나와 맞닥뜨렸던 수많은 인파는 실로 충격적이었다.


거리에 길이 없었다. 우선은 어디로든 가야했기 때문에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많은 시민들로 인해 길이 잘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나처럼 조금 늦게 도착한 시민들이 한 줄로 움직이고 있는 행렬을 발견하고 나도 그들과 함께 연단이 조금이라도 잘 보이는 곳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녁 8시, 명박산성 앞에 자리를 잡았다. 길이 없는 거리를 어렵사리 통과해서 연단까지 도착하고 나서 보니, 저 뒤로 명박산성이 눈에 띄었다. 그 명박산성을 바로 앞에서 확인하기 위해 바로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이다. 참 답답하고 막막했다. 바로 얼마 전 대통령은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담화를 발표했다. 그런데 국민과 소통을 담을 쌓고도 할 수 있다는 것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왜 막았을까? 왜 쌓았을까? 보기도․듣기도 싫다는 것인가? 무서운 것일까? 그 앞에 앉아서 참 많은 궁금증이 생겨났다.
저녁 8시 45분, 명박산성 뒤에서 경찰의 경고방송이 들린다. 종로경찰청장이라고 신분을 밝힌 남성이 그 자리에 모여 있는 시민들에게 불법시위와 무단 점거 등의 불법행위를 하고 있음을 친절하게 설명한다. 그러자 많은 시민들이 야유를 보낸다.


어처구니가 없다. 지난 새벽부터 차가 다녀야 할 도로에 10여개의 컨테이너 박스 쌓고, 그 속에 모래까지 가득 채워 하루 종일 차도 다니지 못하게 막지 않았던가? 경찰이, 정부가 도로를 도로로써 기능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는데 누구에게 불법을 운운하는 것인지 어처구니가 없다.


밤 11시 20분, 서대문과 서울역 등을 향했던 촛불행렬은 이제 돌아오고 있고, 보수단체들이 회원들이 선점했던 서울광장에는 이제 기독교인 몇 명만 남아 기도와 노래를 부르고 있다. 늦은 밤이지만 여전히 많은 시민들이 거리에서 행진을, 노래를, 이야기를 하고 있다.


6월 11일 오전 7시, 다시 광화문 앞을 지나고 있다. 새벽까지 이어졌던 촛불집회는 평화적으로 새벽 5시경에 끝났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명박산성은 어제 그 자리에 버티고 있고, 그로 인해 아직 이른 시간임에도 종로도로에는 차가 밀리고 있다.


명박산성은 6월 11일 모두 철거되었다. 그날 이후로 대통령은 또 한 차례 대국민 기자회견을 했고, 담당자를 미국에 파견하여 재협상을 하고 돌아왔다. 그러나 그 협상역시 국민들이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을 뿐더러 또다시 일방적으로 고시를 강행하여 여전히 국민들은 서울광장에서 촛불집회를 계속하고 있다.


명박산성! 국민에게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대통령은 지금도 모르고 있는 듯하다. 그것은 국민의 소리를 철저하게 차단하고 일방적으로 국정을 이끌어 나가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이모티콘이다. 국민의견을 무시하고 강압적으로 국민을 통치하고자 하는 정부나 대통령은 국정을 올바르게 이끌어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