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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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날치기통과된 안기부법, 노동관계법은 즉각 재개정되어야 한다.

   신한국당의 안기부법․노동관계법 날치기 통과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와 허탈감이 걷잡을 수 없는 들불처럼 번져가고 있다. 우리는 신한국당의 안기부법과 노동관계법 날치기 통과는 민주주의의 기본을 부정하고 국민들의 여론을 무시한 반민주적․반국민적 행동이며, 현 정부가 문민개혁정부임을 포기하는 처사라고 규정한다.


민주주의 핵심은 절차의 정당성에 있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의견을 갖고 있는 개인과 집단들이 서로가 합의하는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를 통해 토론과 협상을 진행함으로써 가장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다.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를 전제로 결론은 존중받는 것이며,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은 옳고 그름을 떠나 정당성을 지닐 수 없다. 따라서 이번 신한국당의 날치기에 의해 통과된 안기부법과 노동관계법 개정안은 정당성을 획득하기 어렵다.

 

   노동관계법의 경우 단 한번의 심의다운 심의조차 하지 않은 채 일방적인 밀어붙이기 식으로 추진한 신한국당의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야당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노사관계 개혁에 관한 사회적 토론과정에서 공식적인 당의 입장을 단 한차례도 밝히지 않아 책임있는 정당으로서의 역할을 방기했다. 또한 합리적인 토론과 협상을 위한 노력을 외면한채 물리적으로 의사진행을 방해함으로써 국회파행과 여당의 날치기통과에 원인을 제공하였다.

 

   이러한 여․야의 모습은 당리당략만을 앞세워 민주적이고 공정한 절차를 준수하지 않은 것으로 15대 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린 것이다.

 

Ⅱ. 안기부법은 이번 개정 이전의 내용으로 재개정되어야 한다.

 

    이번 안기부법의 개악은, 지난 93년 정치개혁 차원에서 여야합의로 추진했던 안기부법의 개정을 아무런 정당한 이유없이 원점으로 되돌린 것이다. 이는 현 정부가 이룩한 개혁성과를 스스로 허물어 버림으로써 개혁정부로서의 역사적 정당성을 부정하는 것이며,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되돌리는 행위이다.


  <경실련>은 이미 수차례에 걸쳐 안기부법 개정의 부당성을 지적한 바 있다. 신한국당은 안기부법 개정이 ‘간첩을 잡기 위해’ 불가피한 것으로 역설하고 있으나, 이는 설득력이 없다. 불고지죄의 경우 반인륜적이라는 지적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이미 간첩을 잡은 후에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간첩을 잡는 데 꼭 필요한 조항이 아니다. 수사의 효율성을 들어 고무찬양․이적표현물 소지․이적단체 구성 등에 대한 수사권이 꼭 필요하다고 하나, 이는 시민들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크며, 따라서 수사의 효율을 위해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하겠다는 발상에 불과하다. 안기부의 수사권 확대는 정보기관과 수사기관의 분리라는 세계적인 추세에도 역행하는 것이다.


   우리는 고무찬양 등에 대한 수사권이 아니더라도 안기부는 이미 세계에서 손꼽을 정도의 막강한 수사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만에 하나 부족한 점이 있다면 검찰․경찰과의 공조체제 강화를 통해 수사의 효율을 높이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판단한다. 따라서 안기부법은 이번 개정 이전의 내용으로 재개정되어야 한다.

 

Ⅲ. 노동관계법도 ILO조약 등 국제적인 수준으로 재개정되어야 한다.

 

   이번에 날치기 통과된 노동관계법 또한 지난 4월, 김영삼 대통령이 밝힌 참여와 협력의 신노사관계 구상에도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으로, 현 정부 스스로 자신의 약속을 파기한 처사이다. 이번의 노동법 개정은 지난 40여년간의 개발독재과정에서 형성된 노동억압적이고 전근대적인 노동법제를 ILO조약 등 국제적인 수준으로 합리적으로 개선하는 한편 우리경제의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우리현실에 적합한 수준으로 노동시장을 유연화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어야 했다. 그러나 이번에 통과된 노동법 개정안은 전근대적인 노동법제 개혁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채 재계의 주장만을 과도하게 반영한 대단히 불합리하고 불공평한 안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노동관계법의 개악은 결과적으로 계층갈등의 심화와 근로의욕 저하 등 사회불안을 초래함으로써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다.

   

   따라서 이번에 통과된 노동관계법은 노동자의 삶의 질 향상과 국가경쟁력 제고라는 애초의 방향에서 다시금 개정되어야 한다. 이번 노동법 개정이 ‘경제를 살리기 위해’ 불가피했다고 말하고 있으나, 이는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고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이다. 현재의 경제적 어려움은 무엇보다 정경유착에 입각한 재벌위주 특혜정책의 산물인 경쟁력없는 거대 공룡기업에 기인하고 있다. 이들 재벌기업들은 기술개발 등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노력보다 문어발식 확장을 통해 단순독과점 이익의 추구에 주력하는 한편, 중소기업의 성장기반을 잠식함으로써 우리경제의 성장잠재력을 제약하여 왔다. 재벌로의 과도한 경제력집중은 국민경제적 비효율을 초래하여 왔으며, 기술집약적인 중․고부가가치형 산업으로의 구조조정을 지연시켜 왔다. 한편, 정치논리를 앞세운 정부의 지속적인 팽창정책으로 인한 인플레이션과 고지가․고금리․고유통비용․고임금 등 소위 고비용체질이 우리 경제를 어렵게 만들고 있으며, 최대 경제주체인 정부부문의 비효율도 이를 가속화하고 있다. 정경유착과 부정부패의 만연, 불합리한 정부규제는 창의와 자율에 입각한 경제활동을 위축시키는 주된 요인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러한 근본원인을 외면한채 경제적 어려움의 책임을 노동자들의 탓으로만 전가하고, 또다시 노동자들의 희생을 강요함으로써 경제를 회생시켜 보겠다는 것은 재벌들의 기득권 유지에만 급급한 반국민적 행위가 아닐 수 없다.

 

   Ⅳ. 우리는 이번 안기부법과 노동관계법의 날치기 통과가 현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냉소주의를 급격하게 확산시킬 것을 우려한다. 또한 현 정부가 이를 계기로 개혁정부로서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기득권층과 결탁하여 보수화될 것을 염려한다. 나아가 이번 사태로 인해 사회적 갈등과 혼란이 증폭되고, 민주주의가 위협받아 한국사회가 재도약의 기회를 상실하게 될 것을 걱정한다.

이에 우리는, 이번에 날치기 통과된 안기부법 및 노동관계법은 절차와 내용의 모든 측면에서 중대한 결함을 가지고 있으므로, 정부․여당 및 정치권은 즉각 재개정에 착수할 것을 촉구한다. 투명하고 공정한 심의과정을 통해 사회각계의 의견을 수렴하여 합리적인 결론을 마련하는 것만이 현재의 상황을 타개하는 유일한 길이며, 정도(正道)이다.

 

우리는 정부․여당이 우리의 충정을 받아들이기를 다시한번 촉구하며, 다음과 같은 우리의 입장을

다시한번 천명한다.

 

첫째, 안기부법은 개정 이전의 내용으로 재개정되어야 한다.


둘째, 노동관계법은 ILO 조약 등 국제적인 수준으로 재개정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상급단위 복수노조는 유예없이 즉각 인정되어야 한다.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는 우리나라의 사회복지현실을 감안할 때 조직․작업형태의 변경, 신기술도입, 업종전환 등 정리해고의 요건을 대폭 인정한 것은 노동자들의 심각한 고용불안을 가져올 것이므로 그 요건을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 외부인력의 대체근로도 노동조합 활동을 무력화시킬 수 있으므로 사내인력으로 국한되어야 한다. 교원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도 즉시 인정되어야 한다.


셋째, 우리는 안기부법과 노동관계법의 재개정을 위해 양심적인 시민사회단체 및 국민들과 함께 [안기부법, 노동관계법 재개정 촉구 범국민운동]을 전국 각지에서 전개해 나갈 것임을 밝히며, 국민들의 동참을 호소한다.

 

1997년 1월 6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전국 공동대표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