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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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김영삼 대통령 공약 이행 평가

<김영삼 대통령 공약이행 평가 총평> 1996년 12월


이필상 교수(李弼商, 경실련 정책위원장, 고려대 경영학과)


  김영삼 대통령은 출마 당시 국가발전 전반에 걸쳐 중요한 약속을 했다. 깨끗한 정치를 구현하고 지역간 계층간 갈등을 해소하여 국민 대화합을 이룩하겠다고 했다. 물가안정을 이룩하고 흑자경제시대를 열며 경제력 분산과 노사화합을 꾀하기로 했다. 더 나아가 금세기 내에 통일을 실현하고 아시아 태평양 시대의 번영을 주도하기로 했다. 한편 비리와 범죄를 추방하고 공해와 교통문제를 해결하여 살기 좋은 생활환경을 만들기로 했다. 입시지옥을 해결하고 21세기를 주도할 자주적이고 창조적인 인간 교육을 강화키로 했다. 또 자긍심 높은 민족문화를 창조하며 자유와 책임이 조화된 언론환경을 조정하겠다고 했다.


  여당 대통령 후보로서 이러한 약속들은 나라발전의 새로운 틀로서 국민들에게 큰 기대를 불러 일으켰다. 무엇보다도 과거의 어두운 군사독재에서 벗어나 국민이 직접 뽑은 문민정부 대통령이 제시한 공약이라는 점에서 국민들이 갖는 희망은 각별한 것이었다. 그러면 과연 김영삼 대통령은 이러한 약속들을 얼마나 실천에 옮겼는가? 장기간을 요하는 것들이 있다면 실천의 기본방향과 기반은 마련되었는가? 이제 임기가 1년여 남은 시점에서 이를 점검하는 것은 의미가 크다. 특히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공약이행여부를 확실히 밝힘으로써 선거공약이 정치성 구호로 끝나서는 안된다는 것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우선 김대통령은 깨끗한 정치구현을 위해 선거제도를 바꾸고 윗물 맑기 운동을 전개했다. 특히 무혈혁명이라 일컬었던 공직자재산공개를 추진하고 부정부패 관련자들에 대한 사정작업을 벌였다. 이러한 측면에서 김대통령은 공약이행에 비교적 충실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스스로 정치자금을 한푼도 안 받겠다고 선언하고 실시한 선거개혁은 정치권 부패를 상당부분 해소했다. 적어도 정경유착과 이권 흥정 등 공공연한 비리는 자취를 감추고 있다.


  그러나 관권선거와 금권선거가 여전히 만연하고 공직자 사정작업이 정치적 사정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했다. 95년 6·27 지방자치선거때 패배하자 여권은 96년 4·11총선의 승리를 위해 갖가지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는데 이 과정에서 선거부정이 심각했다. 더 나아가 공직자 재산공개가 용두사미가 되고 비리관련자 사정이 몇몇 인사에 대한 표적사정으로 끝났다. 그리고 장학로 사건, 이양호 사건 등 대통령 측근과 고위공직자비리가 연발했다. 이로써 깨끗한 정치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무너지고 말았다.


  김대통령은 우리 스스로 만든 분단선이라 할 수 있는 지역과 계층간의 격차를 해소하고 국민대화합을 이룩하겠다고 했으나 이 약속을 거의 지키지 못했다. 농어촌은 UR협상 이후 낙후가 계속 심화되고 지역감정은 선거를 치를 때마다 골이 깊어지고 있다. 부와 빈곤의 세습화가 공공연히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빈부간의 갈등이 커지고 사회해체 현상이 전개되고 있다. 권력요직에 특정지역과 특정학교 출신이 집중 배치됨으로써 국민의 배신감까지 높아지고 있다.


  과거 권력과 재벌은 정경유착을 조직화하면서 갖가지 경제이권을 차지한 것은 물론 통화를 자의적으로 발행해 사용했다. 이 과정에서 재벌기업들이 주요 산업을 독점하고 물가와 투기의 악순환이 생기면서 경제가 거품화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개혁을 통해 비리구조를 청산하고 물가안정과 함께 흑자경제시대를 연다는 약속은 실로 신선한 것이었다. 그러나 문민정부의 경제정책은 개혁으로 실적을 올린다는 정치논리에 치중했다. 따라서 금융실명제, 부동산실명제, 규제완화 등의 개혁조치들이 연이어 나왔으나 기득권 유지의 기본골격을 바꾸지 못했다. 문민정부의 최대개혁으로 실시한 금융실명제와 부동산실명제는 차명거래와 명의신탁 등으로 경제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비실명거래가 사실상 묵인되고 있는 지하경제비리는 계속 만연하고 있다. 결국 금융, 부동산실명제는 국민들에게 불편만 주고 경제불안을 가중시키는 절름발이 개혁으로 머물고 있다. 규제완화도 소리만 요란하고 실질적으로 자유로워진 것이 없다.


  문민정부는 성장논리를 통해 정치잔치를 벌린다는 차원에서 신경제계획 등 팽창위주의 정책을 펴 오히려 불균형과 거품을 확대하는 결과를 빚었다. 여기에 세계화를 국정운영목표로 내세우면서 경제정책의 초점을 재벌활성화에 맞추었다. 통화팽창, 규제완화, 공기업민영화, 노사관계법 개정 등이 대기업들에게 근본적 혜택으로 작용하고 있다. 결국 기술개발과 경쟁력의 풀뿌리로서 중소기업발전과 근로자의 힘을 다시 결집하는 노동시장 선진화 등을 사실상 포기함으로써 경제의 구조적 모순과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경제정책의 실패는 최근 경제위기를 초래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WTO가입과 함께 우리경제는 내면적 모순과 함께 국제경쟁력의 취약상이 드러났다. 이로 인해 우리 경제는 아시아의 4마리용에서 탈락한 상태에서 계속 경쟁력이 하락했다. 이 가운데 일본엔화가 급속히 절하하자 수출기반이 무너지면서 경제가 경쟁능력을 상실했다. 현재 우리 경제는 구조적 스태그플레이션을 겪으며 세계 2위의 경상수지적자국가로 전락하여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문민정부 초기 통일정책은 전향적이고 적극적이었다. 김대통령은 어떤 이념이나 사상도 민족보다 더 큰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못한다는 민족 우선 논리를 내세우고 국민적 합의, 공존 공영, 민족 복리 등의 통일정책기조를 제시했다. 우리민족의 최대염원은 평화적 남북통일이다. 따라서 이러한 통일정책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무엇보다 컸다. 그러나 김영삼대통령의 통일정책은 1년도 못 가서 북한 핵문제를 둘러싸고 보수·강경으로 선회했다. 이후 정부의 통일정책은 미국의 대북정책에 영향을 받으며 줄기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핵과 경협의 연계라는 강경한 입장을 취하다가 북·미 제네바 핵합의가 나오자 남북경협활성화라는 우호적 입장으로 바뀌었다. 그러다가 별안간 대북투자 기업인 내사를 하며 강경정책을 펴다가 다시 대북쌀지원을 하는 친화적 정책으로 돌아섰다. 최근에는 잠수함 사건이 터지면서 다시 초강경입장으로 바뀌며 대북관계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경직된 상태이다. 이로써 통일정책에 대한 선거공약은 물거품이 되고 금세기내 통일과 통일외교를 통한 아시아-태평양시대 번영주도는 허황한 꿈으로 바뀌고 있다.


  엄정한 법집행으로 민생치안을 확립하고 공해와 교통혼잡을 줄여 살기 좋은 사회로 만들겠다던 공약도 허사로 그치고 있다. 부패와 비리가 계속 만연하고 있는 가운데 돈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반인륜적 범죄가 꼬리를 잇고 있다. 또 성추행과 학교폭력 등 사회 파괴적인 범죄가 증가일로에 있어 사회불안은 더욱 심각한 양상이다. 복지예산증가율도 점차 감소하여 사회는 내면적으로 황폐화하고 있다. 여기에 공해는 숨을 쉬고 마시기 어려울 정도로 점차 악화하고 있고 교통혼잡은 정상적인 활동이 어려울 정도이다.


  문민정부의 문화정책도 실패작이다. 천민 자본주의의 만연으로 과소비와 부도덕이 판을 치고 민족문화의 흔적은 더욱 찾기 어려운 상태가 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언론은 맹목적인 시청률과 구독률경쟁에 빠져 자극적이고 퇴폐적 서구문화전달과 기득권층 비위 맞추기에 급급하다. 또 제 4부 권력이라는 막강한 힘을 가진 언론이 친권력적인 보도행태를 보임으로써 건전한 비판문화까지 잠재우고 잇다. 백년대계라는 교육개혁도 정치적 산물로 양산하며 심각한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현 교육은 여전히 막대한 사교육비를 낭비하는 입시위주의 배타적 경쟁가치가 골자를 이룬다. 따라서 인간성 회복과 자주적이고 창조적 가치창조와는 거리가 멀다. 여성부문에 대해서도 김대통령은 여성차별의 법과 제도적 장애 개선, 여성인력의 개발과 고용 등 기대되는 내용이 많았으나 아직 그 효과는 미흡하다. 결국 사회, 문화, 교육, 여성 등 삶의 질을 결정하는 실제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들은 선거공약사항들과 거꾸로 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결론적으로 김영삼 대통령은 두 전직대통령을 법정에 세워 과거를 청산하고 갖가지 개혁을 추진하는 등 나라발전의 방향을 올바르게 설정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평가를 받을 만하다. 그러나 국정운영이 정권유지와 기득권층 이익보호라는 정치논리에 왜곡되어 또 다른 차원의 역사왜곡을 가져오고 있다. 이에 따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의 공약과제가 구호에 머물면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김영삼대통령의 개혁의지에 대해 순수성을 의심하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기득권유지와 정치권이득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권력주변인사들의 방해가 개혁을 침몰시키고 나라발전을 뒤틀고 있다. 인사가 망사라는 비판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남은 임기 동안 김대통령은 과감한 인사혁명으로 소아적 정치논리를 배제하고 역사 앞에 설 수 있는 대승적 개혁논리를 회복하여 공약이행완수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세부 평가 및 평가 결과 전체 자료는 첨부파일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