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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 [특집] 텔레그램 n번방, 그 이후
2020.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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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경실련 2020년 5,6월호 – 특집. 그리고… 다시 시작(2)]

텔레그램 n번방, 그 이후

 

신성연이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활동가

 
20대 국회의 끄트머리에서 ‘n번방 방지법’이 통과되었다. 이로써 불법촬영물 시청·구입·소지를 비롯해 성적 영상물 등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하는 행위, 딥페이크 등 합성사진을 만드는 행위 등은 성폭력처벌법 아래 범죄로 처벌받는다. “찍지 말라” “보지 말라” “퍼뜨리지 말라”는 구호가 법안으로 옮겨진 게 감개무량하다. 2016년 5월,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이 일어났을 때 자신의 몸을 잃은 듯 애도하던 사람들은 분노에 머물지 않고 운동으로 연결했다. 메갈리아로 대표되는 온라인 여성운동, 〈소라넷〉폐쇄 캠페인, 30만 명이 모인 혜화역 불법촬영 규탄 시위, 웹하드 카르텔 폭로 등은 아무도 가보지 않은, 그야말로 맨땅을 맨몸으로 들이받으며 일군 역사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은 이런 과정을 거쳐 드디어 ‘사회문제’로 올라섰고, 이 가운데 거저 얻은 것은 “조개” 하나 없다.

텔레그램 성착취 현장에서 발견된 행태들은 이전부터 존재하던 것들이다. 2016년〈소라넷〉폐쇄, 2017년〈일간베스트〉몰락 시작, 2018년 웹하드 불법촬영물 단속 및 텀블러 성인물 업로드 금지 조치, 2019년 단체 채팅방 내 불법촬영물 유통 피의자 정준영 구속 등을 겪은 성착취 네트워크는 더욱 안전한 플랫폼을 찾아 텔레그램으로 이동했다. 이런 배경 때문에 텔레그램에서는 “초대남” 모의, 노무현 전 대통령 모욕, 불법촬영물 공유, 지인 능욕 등 위 플랫폼들에서 문제가 된 모든 행위가 목격됐다. 그중에서도 성착취 네트워크를 텔레그램으로 집결시킨 강력한 키워드는 “노예”였다. 무려 21세기에 “노예”라는 반인륜 메시지를 버젓이 쓰는 태도는 남성 인권이 흔들리는 이유로 “야동 볼 권리” 침해를 꼽는 이들에게 쾌감을 선사했다. 이들의 공동체적 성질은 매우 여러 곳에서 확인됐다. 예컨대 “야동 보는 것보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게 더 재밌다”는1) 말, 각 방마다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공동체규제를 만들고 자율적으로 지키는 모습, 본격적인 텔레그램 수사가 시작되자 운영자 대책회의를 연 것 등 이들은 하나의 목적 아래 뭉친 끈끈한 공동체였다.

올 3월부터 주요 운영자들이 속속 검거되면서 텔레그램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척결은 멀었다. 성착취 네트워크는 지금도 텔레그램과 딥웹과 다크웹을 떼 지어 몰려다닌다. 좀비의 가짜 배고픔이 사람을 해쳐야 채워지는 것처럼, 이들이 성욕이라고 오해하는 가짜 배고픔도 살아 있는 여성을 좇고 해쳐야만 채워진다. 성착취의 핵심 기저는 성욕이 아닌 ‘능욕’이기 때문이다.2)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에서 지배와 가학 양상이 그토록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성폭력은 성 불평등한 사회에서 남을 업신여기고 욕보일 때 젠더 위계를 이용하며 발생한다. 사이버 공간에서 실행되는 젠더 위계는 때로 오프라인보다 더욱 노골적이고 더욱 빈번하며 더욱 쉽게 범죄화된다. 그래서 n번방 방지법 시행 이후, 이것을 다룰 정부 부처의 성 인지 관점은 더욱 절실하다. 집행기관이 불법촬영물 등의 문제에서 거의 무능했던 이유는 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성폭력을 성폭력으로 바라볼 성 인지 능력이 없어서였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의 피의자들이 검거되며 그중 많은 수가 10대인 데다 핵심적인 역할까지 했다는 것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이 탄식했다. 비극적이게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물리적 세계가 기운 만큼 온라인 세계도 함께 기운다. 장자연 배우가 작성한 “성상납” 리스트로 부패한 부분을 도려냈다면, 김학의가 “성접대” 무죄를 받지 않았다면, 버닝썬에서 일어난 불법촬영과 약물강간과 “성매매” 알선이 제대로 기소되어 죗값을 치렀다면 상황은 지금과 사뭇 달랐을 것이다. “성상납” “성접대” “성매매” 모두 “성착취”다. 이처럼 성범죄에 관대한 사회는 성착취 네트워크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고, 이것은 사이버성폭력이 인터넷 놀이문화로 쉬이 전환되는 조건을 만든다. 이번 텔레그램 사건으로 한 꺼풀 더 밝혀진 것은, 기업형 성착취를 본받는 수많은 소상공업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조주빈처럼 서열을 갖춘 조직을 만들기도 하지만, 성착취물 거래로 소소하게 용돈을 벌며 커뮤니티 생활을 즐기는 계원으로 남기도 한다. 소위 26만 명은 수동형 구성원이 아니다. 소라넷에서부터 텔레그램까지 성착취 현장을 거치며 교육받은 이들은 생산자이자 소비자이자 유통망으로서 기능한다. 이 공동체의 재생산 속도는 놀랍도록 빠르다. 사이버성폭력에 맞서 온라인 시민사회를 재구성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필요한 순간이다.

2019년 기준, 만 3세 이상 인구 가운데 최근 1개월 이내 1회 이상 인터넷을 사용한 사람의 비율은 91.8퍼센트였다.3)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즉 사이버성폭력 문제에 우리 모두는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다. 주범, 공범, 방조자, 방관자 그리고 자기 자리에서 반성폭력 활동을 실천하는 개인. 이러한 개인이 많아질수록 무딘 공간을 밀어붙이는 날카로운 공간은 무럭무럭 자랄 것이다. 미투운동이 시작된 것도, 텔레그램 성착취가 사건화된 것도 “가해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라는 구호가 실현되어서가 아니다. 피해자로 남기를 거부하는 거대한 흐름, 젠더에 기반한 착취 산업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분노, 서로가 서로를 북돋는 연대의식이 여성과 소수자 사이에서 광범하게 인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우리는 결코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1) 1월 중순경 지금 구속된 잼까츄가 운영하던 방에서 나온 이야기.
2)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성욕을 “성적 행위에 대한 욕망”, 능욕을 “「1」 남을 업신여겨 욕보임, 「2」 여자를 강간하여 욕보임”이라고 정의한다.
3)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보도자료, 2020년 2월 27일.